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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8: 11 죄를 범하지 말라 - 요 8: 12 세상의 빛
요 8: 11 죄를 범하지 말라 -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죽음에서 건져주셨고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예수님은 죄인을 심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 요 3: 17 -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죄인을 회개시키고 구원하고 살리러 오셨다. 장차 그가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 의인과 악인, 산 자와 죽은 자를 다 심판하실 것이다.
* 살후 1: 7-9 -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불의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전통본문). 7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러나 지금 그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단지 회개하라고 부르신다. 지금은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다.
* 고후 6: 2 -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두려움에 떨던 여자는 자기 주위에서 벌 떼처럼 죽이려던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 한 사람도 남김없이 사라져버린 주위를 살펴보며 주님께 대답하였다.
주여 없나이다. 여기서 없다는 말은 그들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예수님은, 회개자에게는 사죄를 선고하시는 사명을 가지셨다. 그러니 만큼, 그가 그 여자에게 회개를 권고하실 뿐이고 정죄하지 않으셨다.
3]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은 죄에서 돌이키고 죄를 청산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참된 회개이다. 회개한 자는 이제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로마서 6장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하였다(롬 6: 17-18, 22).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사람, 부르신 모든 사람은 모든 죄를 다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대로 의와 거룩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그는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
그래야 그는 지옥의 영원한 불에 던져지지 않고 의와 평화의 세계인 천국에서 영원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4]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한복음 8: 1-11)
어느 여인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잡힌 그 여인은 그들에게 끌려 예수님께 오게 되었다.
그들은 이 여인이 저지른 간음죄에 대하여 예수님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에 대하여 흥미를 가지고 예수님을 소송하는 고소 거리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1) 주님을 시험하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간계
그들은 이 여인을 처벌하는 율법적인 조항을 몰라서 예수님께 찾아 나온 것이 아니다.
① 간음에 대한 예수님의 율법적인 해석을 듣고 고소할 조건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간음이란 율법에서 가장 엄하게 다스리는 죄중의 하나이다. 특히 여자의 경우 이 죄에 대한 자비나 용서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면 예수는 이 여인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② 간음이 죄가 된다면 마땅히 율법적인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
그렇다고 주님이 그 여자를 모세의 명한 대로 돌로 치라고 한다면 그 여인이 그들의 손에 의하여 죽게 된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에도 분명히 위배되는 일이다.
* 마 9: 13 -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께서 이 가련한 죄인을 돌로 치라고 하신다면 이 일이야말로 그곳에 있었던 많은 군중들에게 크나큰 실망을 주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여인의 죄를 용서한다면 간음죄를 인정하지 않는 일이 되어 주님은 그들에게 무 율법주의자란 누명을 쓰고 재판받아야 하셨다.
(2)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끈질겼다.
① 이들의 질문을 받으신 예수님은 아무 말씀도 아니하시고 몸을 굽히시고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억지로라도 대답을 들으려고 강압적인 자세로 공격을 취해오기 때문에 주님은 무엇이라고 하시던 그의 견해를 밝혀주지 않으실 수 없는 처지였다.
예수님은 몸을 일으키시고 그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던지셨다.
②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주님의 이 말씀은 그들의 질문에 대해 대답으로 하신 말씀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질문에 율법적인 도전을 시도하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의 취지는 너희들이 율법으로 이 여인을 정죄하여 돌로 쳐 죽이기를 원한다면 그러면 너희 중에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 앞에 맹세할 수 있는 자가 있느냐?
있다면 먼저 이 여인에게 돌을 들어 치라고 하신 말씀이다.
③ 예수님의 말씀은 모인 군중들에게 놀라운 반응을 일으켰다.
간음한 여인을 고소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듯했다.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이처럼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분명하게 죄인으로 인정하셨다. 돌로 치라고 하신 말씀은 그 여인은 마땅히 돌로 쳐서 죽임을 당할 죄인임을 인정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여인을 고소한 서기관과 바리새인까지도 양심상으로 자기들에게는 죄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율법의 정죄는 비록 간음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약 2: 10-11).
(3) 나도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간음 중에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어온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 권위 있는 말씀에 그들의 양심에 가책을 받고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물러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서 있는 여자만 남았더라고 했다.
예수님은 이 가련한 여인을 측은히 바라보시면서 사랑에 넘치는 말씀을 들려주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님은 이 여인의 마음의 깊은 뉘우침을 보시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은 곧 용서를 의미한다. 그리고 주님은 앞으로 그 여인이 행해야할 바 그의 생활 태도를 밝혀 주셨다.
‘다시’란 말은 ‘아포투툰’이란 말로 지금부터란 뜻이다.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그 시간부터 그 죄를 버려야 하고 그 죄에서 떠나야 하며 그 죄를 다시는 짓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처럼 죄인을 정죄해 버리려는 잘못에 빠져서는 안 된다. 나도 죄인이었으며 나도 그들과 같은 죄를 범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죄인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이 세상에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한 명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간음 중에 잡힌 이 여인의 경우도 예외일 수 없다.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할 때 그 죄를 용서하신다.
우리도 죄에서 떠나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해야 한다.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모든 사람은 죽을 죄인이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주의 말씀은 모든 사람이 다 죽을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든지, 그를 붙잡아 와서 예수 앞에 두고 예수를 정죄할 명분을 찾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이든지, 방황하는 일반 대중이든지, 모든 사람은 다 영원한 지옥불에 던지울 죄인들이다.
둘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셨다.
그는 죄인들을 심판하기 위해 오지 않으셨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다. 그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도 정죄하지 않으셨다. 그는 우리 같은 죄인도 정죄치 않으시고 구원하셨다.
복음은 죄인들을 죄와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하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그에게로 나아와 그를 믿으면 죄 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을 것이다.
셋째, 예수께로 나온 자들은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는 그 여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구원과 거룩함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오지 않으셨고 그들을 죄에서 건져내어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거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한 삶이다. 우리는 이미 법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거룩해졌다. 우리는 이미 법적으로 의인이 되었고 성도(聖徒, saints)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그 의와 거룩 안에서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2. 세상의 빛 ( 8: 12 – 20 )
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3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16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17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18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19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 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12-20절은 예수의 중요한 선언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7: 37절은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으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그런데 8: 12절은 내가 세상의 빛이라.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않고 생명의 빛을 가졌다. 이와 같은 중요한 선언으로 시작이 된다.
“예수가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9장에서 자세히 설명이 될 것이다. 이 부분은 서론격으로 예수가 스스로에 대해서 증언했는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자기주장을 거부한다. 예수는 여기서 답변하면서 자기의 증언은 자기 혼자의 증거가 아니다. 자기는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을 믿는 분이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자기의 증언은 하나님의 증언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자기의 증언은 받아들일 수 있는 확실한 증거다. 예수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자기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 증언할 수 있다. 그는 아버지와 연합해 있는 자이기 때문에 그의 증언은 아버지가 증언하는 것과 같다.
요 8: 12 세상의 빛 -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성전 뜰에 앉아서 무리를 가르치시던 주께서는,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어와 그를 시험하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때문에 잠시 방해를 받으셨으나 다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 여자를 정죄하던 자들은 다 떠나갔으나 그의 가르침을 듣던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성경에서 빛은 지식과 의와 기쁨을 상징하고, 어두움은 무지와 죄와 슬픔을 상징한다.
이사야는 이방의 빛이 될 메시아에 대해 예언하였다.
* 사 42: 6 -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 사 49: 6 -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놀라운 선언이다. 세상의 누구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비취고 있다.
(1) 세상
성경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을 가르치고 있다.
* 마 12: 32 -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 엡 1: 21 -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① 이 세상
세상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 요 1: 1-3 –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다(요 3: 16). 그렇지만 세상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여(3: 19) 생명수(4: 10)와 생명의 떡(6: 35)을 물리쳤다.
곧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세상은 '이 세상', 곧 사탄이 임금 노릇을 하는 어두운 세상과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세상이 되었다.
* 요 12: 31 -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 요 3: 19 -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따라서 '이 세상'이 악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은 신약 성경의 다른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 갈 1: 4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 엡 6: 12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 죄에서 해방되고 새롭게 창조된 사람은 이미 악의 세력에서 벗어났고 아직 '이 세상'에 살더라도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지는 않는다.
이 사실은 그는 변화된 행동으로 드러내지만, 또한 그는 선이 유일한 세력인 새 세상을 기다린다.
* 롬 12: 2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고전 5: 9-11 –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 벧후 3: 13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② 오는 세상
신약의 기자들은 "이 세상" 또는 "이 세대"와 "저 세상" 또는 "오는 세대"를 구별하고 있다.
* 막 10: 30 -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 눅 18: 30 -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 눅 20: 34-36 –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 엡 3: 9-11 –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 골 1: 26 -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 유 1: 25 -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있을지어다. 아멘.
요 8: 23, 18: 36, 고전 7: 31등에서는 "이 세상"으로 번역하고 있고, 히 2: 5에서는 "장차 올 세상"으로 번역하고 있다.
* 요 8: 2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요 18: 36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 고전 7: 31 -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 히 2: 5 -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 히 6: 5-6 –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세상" 또는 "이 세대"는 악의 권세 아래에 있으나(갈 1: 4. 엡 6: 12),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미 새 세대 혹은 새 세상의 건설을 시작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할" 그 때를 기대하고 있다.
* 계 21: 5 -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 골 3: 10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2) 빛
"빛"은 영적으로 세 가지 작용을 의미한다. 곧, 밝혀주어 알게 함 (계시를 의미함)과 구원하여 줌과 깨끗하게 함(성결을 의미함)이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빛"이라고 하신 동기는, 메시야를 빛과 같다고 한 구약을 생각하신데 있었을 것이다.
* 사 9: 2 -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 사 42: 6 -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 사 49: 6 -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 말 4: 2 -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 눅 2: 32 -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 이다. 하니
3]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1) 따르는 자
"따르는 자"란 말은, 어두움 가운데서 빛만을 따르는 것과 같은 태도를 생각하게 한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 밖에 다른 데는 어두움만 가득한 줄 확신하고 전적으로 그 분만을 의지하고 따라간다.
그러므로 여기 "따른다."는 말은, 신앙의 동향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2) 어둠
"어둠"은 무지와 죄와 불행을 모두 가리키는 비유이다.
(3) 생명의 빛
"생명의 빛"이란 것은, 생명에서 나는 빛, 곧, 하나님과 사귄 생명에서 나는 빛으로서 우리의 지능을 밝게 하여 주는 것이라고, 고데이(F, Godet)는 말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을 주는 빛이라고 해석되어야 한다.
6: 35의 "생명의 떡"이란 말, 6: 68의 "영생의 말씀"이란 말, 계 21: 6의 "생명수"란 말이, 모두 다 같은 성격 있는 문구로서 생명을 주는 떡, 말씀, 물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바이스(B. Weiss)는, 이것을 "생명 중개(仲介)의 빛"이라고 해석하였다(das zum Leben gehorige Licht, welches dieses vermittelt).
그러면, 생명을 얻음이, 그리스도의 선물인 빛을 소유함에 달렸다.
폰 슈렝크(Von Schrenk)와 푸리브노우(Prinbnow)등도 이 말을 그런 뜻으로 해석하여 말하기를, "빛은 진리를 아는데 인도하고, 진리는 생명으로 인도한다."라고 하였다(Das Licht fuhrt zum Erkennen der Wahrheit und dieses zum Leben. a. w. S. 72).
그 빛은 영원한 생명의 빛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그 빛을 받아 영원한 생명의 복을 얻는다. 구원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고후 4: 6 -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 엡 5: 8 -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벧전 2: 9 -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크로솨이데(Grosheide)는 여기 이른 바 "나는 세상의 빛"이란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만물 창조의 근본을 이룬 첫째 날의 빛을 연상케 한다고 하며, 그 빛이 없을 때에는 피조물이 하나의 혼돈체였으나, 그 빛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질서 있는 우주가 되었다고 하였다(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I,P.10).
(4)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이야기는 초막절과 관련이 있다. 초막절은 출애굽 당시 시내에서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심, 이스라엘에게 계시하시고 토라 율법을 계시하시고 물과 떡(만나)으로 생명을 보존해주심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그래서 초막절에 물 긷는 행사가 벌어졌다.
실로암 못에서 성전으로 물 긷는 행사가 있었다. 시내광야에서 헤맬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물을 공급해서 그들의 생명을 지탱하고 생명을 소생하게 한 것을 기념하고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로 스가랴서나 에스겔서나 이사야서 등에 나오는 종말에 하나님께서 물을 주시리라는 예언과 더불어서 종말에 구원을 상징하는 물을 비는 행사였다.
스가랴서 13장에 보면 종말에 예루살렘으로부터 생수가 넘쳐흐르고 여호와가 온 세상의 주로 군림하게 되고 그러면 온 민족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보고 시온으로 그들의 보화를 가지고 순례 와서 여호와를 예배하게 되어 종말에 샬롬이 이루어진다.
스가랴서 13장이 전통적으로 초막절에 읽도록 정해진 성경 본문이었다. 그런데 랍비들은 스가랴 13장을 겔 47: 1절 이하 사 12: 3절 이하 등과 더불어서 해석하면서 하나님 나라, 메시야 시대가 초막절과 더불어 올 것으로 보고 그 때에 우리의 생명을 새롭게 하는 물이라는 상징어를 써서 그 때에 이루어질 메시야 시대의 축복 또는 구원을 그렸다. 이를 배경으로 했다.
* 슥 13: 1 -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 겔 47: 1-12 – 1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2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3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 사 12: 3-6 –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또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헤맬 때 하나님께서 율법을 계시한 것을 기념하고 또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 동행하시면서 불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면서 스스로를 계시하신 것을 기념해서 초막절에는 성전에 여인들의 마당에 불을 밝히는 행사를 했다.
곧 하나님의 계시의 빛을 기념하는 불을 밝히는 행사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이 물도 출애굽 당시의 광야에서의 물 마심을 종말에 그와 같은 축복 물마심이 이루어진다. 이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현재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셔서 동시에 초막절과 더불어 일어날 메시야 시대의 축복을 기대하는 행사였다.
이 빛도 초막절의 행사인데 여인의 마루에서 밝히는 제등행렬, 촛불을 밝힘도 광야에서의 계시 하나님의 임재함, 하나님의 토라의 계시의 빛을 밝힘을 기념하는 한편 동시에 종말에 일어날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 하나님의 영광이 시온에 드러나서 그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충만할 것을 기대하셨다.
종말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구원사에 첫 구원의 사건인 출애굽의 후형으로서 그것의 완성을 두고 말한다. 초막절이 이와 같은 첫 구원을 기념하며 종말의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인데 그 곳에서 예수가 바로 자기가 초막절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분이심을 선언하는 것이다.
자기가 초막절이 기념하며 기대하는 종말에 있을 생명의 물을 가져오는 자이다. 물은 생명을 가져오는 것이고 생명을 주는 것이다. 또 초막절이 기대했던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빛을 가져오는 분이다. 하나님의 빛 하나님의 계시를 가져온다. 이것은 빛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져오는 자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과 연합함이 생명이다. 결국 세상의 빛이라는 소리로 예수의 생명의 매개체 생명의 전달자임을 나타낸다. 요한복음 서문에서도 빛은 세상의 생명이다고 했다.
로고스가 빛인데 빛이 세상에 생명을 가져온다고 말한다. 예수가 초막절이 기념했던 출애굽과 기대했던 제 2의 출애굽의 구원을 이루는 분이다고 예수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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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새롭고 좋은 일만 가득 하시길 소망 합니다.
밝은 미소와 기쁨이 가득 담은 행복에 문을 살포시 열어 봅니다.
향기에 예쁜 하루 행복하게 보내세요.💖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