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해병대 전역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래서 '동기밴드'에 작은 이벤트 하나를 제안했다.
"수도권 18산, 130K를 함께 가자"고.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이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몇몇 동기생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들의 적극성에 감사했다.
연일 폭염으로 대지가 이글거렸던 지난 주말.
수서역에서 오전 10시에 집결했다.
오전 10시에 모인 이유는 멀리서 오는 동기들 때문이었다.
한 명은 경북 포항에서, 한 명은 전남 광양에서 왔다.
나머지는 수도권에서 모여들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었다.
그 열정에 나도 감복했다.
대모산을 시작으로-구룡산-청계산 매봉-석기봉-이수봉-국사봉-하우현 성당-인덕원까지
순차적으로 힘찬 트레킹을 이어갔다.
기온이 36-7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날씨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전국 도처에서 여러 동기들이 내게 문자와 전화를 보내주었다.
"현해병, 지독한 폭염이니 '탈진'과 '심장병'에 각별히 주의하소"
대부분 그런 당부였다.
그때마다 대오를 이끌고 있던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많은 경험과 적절한 대처방안이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트레일런' 대회도 아니고 고지점령을 위한 돌격부대의 행군도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일렀다.
시종일관 재미있고 유쾌한 트레킹이 될 수 있도록 강약조정과 시간안배에 신경을 썼다.
30년만에 처음으로 만난 동기도 있었으니 '만남'과 '대화'에 방점을 두었다.
그러나 아무리 냉온을 조정한다 해도 비오듯 흐르는 땀은 어쩔 수 없었다.
쉬는 시간만다 수건을 짜면 수돗물이 터진 듯 땀이 줄줄 흘렀다.
대단한 가마솥 더위였다.
전진하면서 해병대 시절의 다양한 추억들과 현재의 삶의 모습들에 대해 진솔한 얘기들을 나눴다.
뜻깊었다.
간혹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1985년 8월 7일.
포항 신병 훈련소로 한 날 한 시에 입대했던 사람들.
그 날 그 순간 이후로 우리는 '해병대 529기'가 되었다.
298명의 새로운 인연들.
그것은 '운명'이었다.
구룡산을 넘고 청계산 입구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밤 10시 이전에 1구간을 끝내긴 불가능하겠다"고.
식사를 마치고 청계산 입구로 이동하여 1인당 하나씩, 밝은 랜턴을 준비했다.
물과 간식도 보충하며 본격적인 '야간산행'에 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석기봉'을 지나 '이수봉'으로 향할 즈음 해가 지고 마침내 어둠이 찾아왔다.
가뜩이나 저녁무렵부터 산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는데 밤이 되자 온전하게 우리들 뿐이었다.
일견 외톨이 같았지만 오히려 기분은 업되기 시작했다.
홀가분해서 좋았다.
숲 속은 더 어두웠다.
짙푸른 숲과 발 아래 저 멀리에서 명멸하는 도시의 불빛들만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었다.
목청껏 군가도 불렀다.
여러 곡 열창했다.
산 속에 아무도 없으니 이런 자유로움이 또 있을까 싶었다.
50대의 중년 사내들은 '해병대 군가'를 신명나게 불러가며 산 속을 거침없이 휘저었다.
우리의 군가는, 중간중간에 EDPS도 들어가는, 액센트 강한 스타카토 비트였다.
해병 출신이 아니면 해독해 낼 수 없는 독특한 가락이자 가사였다.
나는 평상시에도 "무덤 속의 침묵 보다는 시끄러운 소통과 수다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시끄럽다는 건 살아있다는 것이므로.
우리는 군가를 부르면서 연방 키들거렸다.
머리로만 살려하는 얄팍한 디지털 시대에 땀과 몸뚱아리로 부대끼며 살아보자는,
우리들 나름대로의 갈망과 기대가 그 군가들 속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동기들은 어땠는지 모르겠다.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날 밤 야간 트레킹 중에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걸었다.
정말 색다른 맛이었다.
생경했지만 삼삼했다.
폭염과 어둠 속에서 '낙오자'나 '부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트레킹 속도와 시간을 조율했다.
그렇게 출발한지 14시간만에 1구간 목적지인 '인덕원' 사거리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보니 막 '자정'을 지나고 있었다.
2명의 동기가 집에도 가지 않은 채 트레킹 팀 '독수리 6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기 한 명은 무더위에 고생한다고, 식사하라며 봉투를 맡기고 갔다.
무식하고 단순하지만 마음만은 늘 한결같은 숫컷들의 우정과 의리가 진하게 느껴졌다.
허허, 이럴 수가.
가슴이 뭉클했다.
한참이나 늦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시원한 대포로 힘차게 건배했다.
한 잔의 막걸리는 찬상의 감로주였다.
어느 동기가 그랬다.
전역 후 30년 동안 이렇게 진한 땀을 흘려본 건 처음이라고.
골수와 오장육부에 있는 모든 육수까지 이번에 다 쏟았노라고.
그 말에 모두가 머리를 끄덕였다.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징그런 날씨였으니까.
하지만 언제나처럼 웃는 얼굴로 즐겁게 동행해 준 멋진 동기들이 있어 고마웠다.
그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자정을 넘겨 맛 본 한 잔의 막걸리와 따뜻한 저녁식사는 단연 최고의 축복이었다.
행복한 밤이었다.
24시 식당을 나와 여관으로 향했다.
샤워를 끝내고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하루의 여정들과 수많은 대화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그리고 이내 나만의 사유에 잠겼다.
내가 글을 쓸때면 가끔씩 인용하는 말이지만, 열대우림의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는 추위와 혹독한 시련을 겪어내야만 생기는 것이니까.
가장 어려웠던 순간들을 이겨내고, 눈물 겨웠던 피와 땀을 삶의 열정으로 승화시켜야만
자신의 인생에도 선명한 나이테가 하나 더 늘어나는 법이다.
그것을 연륜이라 한다.
한 사람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경험과 도전은 그 사람의 매력과 품격으로 연결된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건강할 때 무엇이든 도전하고 경험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생이 다채로워질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매력과 인격에도 미더운 땀방울이 고스란히 스며들 테니까.
내가 걸은 만큼만, 내가 경험한 만큼만, 바로 그 만큼만이 내 진짜 인생 이니던가?
짬이 날 때마다 나머지 구간도 옹골지게 이어 가려한다.
그리고 3년 후,
세상의 지붕인 '히말라야 원정'까지
'해병대 529기'의 이름으로 중단없이 '렛츠고'다.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태주고 소중한 추억을 함께 엮어준 사랑하는 내 동기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고맙다.
필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