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애인은 돌봐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동료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49호(2023.12.15
유수진 (윤리교육18입) 재학생
고교생 때부터 꾸준히 봉사활동 샤눔 리더스클럽 블랙레벨 올라
“봉사활동을 계속하면서 거듭 느끼게 되는 것 중 하나가 같이 살아간다는 느낌이에요. 저 혼자 잘먹고 잘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삶은 큰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학과 특성일 수도 있는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에 빠질 때가 많았죠.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산다는 평범한 깨달음이 되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봉사활동은 제게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23년 10월 27일 열린 ‘샤눔리더스클럽 시상식’에서 윤리교육과 18학번 유수진 학생이 새롭게 ‘블랙레벨’로 승급했다. 샤눔리더스클럽은 모교 글로벌사회공헌단이 2019년부터 운영하는 사회 공헌 멤버십제도로, 단계별 인증을 통해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독려하는 사업이다. △SNU공헌단 △학생사회 공헌단 △샤눔다문화공헌단 등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해 실버레벨, 골드레벨을 거쳐 누적 포인트 1000점 이상을 받으면 블랙레벨이 된다. 11월 28일 사범대 파 스쿠치에서 유수진 학생을 만났다.
“고등학교 때 사범대 진학을 마음먹으면서 교육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도와주는 건 쉬웠는데 도와달라고 하는 건 잘 못했거든요. 그냥 알아서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죠. 동생들은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뭔가 가르쳐 주는 것을 좋아해 어렸을 때부터 꿈이 선생님이기도 했고요.”
수진 학생의 봉사활동은 모교의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만나면서, 물만난 물고기처럼, 풍성하게 가지를 쳐나갔다. 신입생 때부터 매년 ‘SNU멘토링’에 참여해 청소년 멘티와 편지를 주 고 받으며 학습 및 생활 상담을 해줬고, 2019년엔 울산에 가서 교육 소외지역 청소년들에게 다각적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했다. 2020년엔 울릉도에서 현지 중학생들과 함께 울릉도 소개 영상을 만들며 디지털 기기의 활용법을, 지난여름엔 울진 죽변중학교 학생들에게 재난 대응법 및 화재경보기 제작법을 가르쳤다. 관악구와 연계한 ‘SAM멘토링’, 시흥시와 연계한 ‘스누로’ 등에도 참여했다.
“SNU멘토링은 일종의 펜팔이었어요. 시공간적으로 제약이 뚜렷해 어떻게 하면 멘티에게 제 뜻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까 궁리했죠. 이모티콘도 넣고 학교 풍경을 담은 사진이나 동영상도 찍어 보냈어요. 8~9월에 딱 한 번 관악캠퍼스 투어 올 때 얼굴보는데 온라인상에선 까불거렸던 친구가 막상 만났을 땐 쭈뼛거리기도 하고, 어떨 땐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서 재밌었죠. 확실히 현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만났을 때 더 빨리 친해지긴 해요. 하지만 비교적 길게 교류를 이어가는 쪽은 온라인이기도 해서 상호보완해주는 것 같습니다.”
봉사의 경험은 또 다른 봉사활동으로 이어졌다. 울진에서 재난 대응법을 교육하던 중 다문화 가정 학생을 만났던 것. 우리말을 거의 못하니 아마도 교육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긴 힘들었을 테 고, 그 배경엔 역시 우리말에 능숙지 않은 외국인 엄마가 있을 터였다. 자국에서 치르기에도 큰일이 아닐 수 없는 임신∙출산을 낯선 나라에서 감당하는 그들에게 마음이 가닿았다. 다문화 가정 산모들에게 임신∙출산에 대한 정보와 정부 지원정책을 소개하는 봉사활동을 병행했다.
“초등학교 4학년 멘티를 만났을 때였어요. 공부하는 걸 안 좋아하는 여학생이었죠. 자기는 어차피 해도 안 되는, 원래 그런 애라고 스스로 규정짓는 거예요. 반년 동안 지켜보면서 부모님을 비 롯한 주변 사람들한테서 이렇다 할 기대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 열심히 안 하는 애로 낙인 찍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한 사람의 일생이 주위의 시선이나 편견에 따라 좌우된다는 데 거부감이 솟구치더군요. 다문화가정 산모들한테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어요. 혜택 정보를 열심히 챙겨다 주면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거든요. 짐작하건대 이방인이 내국인과 동등한 혜택을 누려선 안 된다는, 그런 시선 때문이겠죠. 그러한 불평등 내지는 부조리 함을 깨고 싶어서 더 열심히 봉사활동에 매달린 것 같아요.”
수진 학생에게 봉사활동은 남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응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님, 수업이 끝나도 더 가르쳐주는 선생님, 졸릴 때 깨워주고 서로의 꿈을 이야기하는 친구 들…, 같은 것들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고. 봉사활동으로 세상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운 셈이다. 현재 참여 중인 ‘꿈꾸는 그림책’ 봉사활동은 장애인을 그저 돌봐 줘야 할 대상에서 함께 성장하는 협업의 동료로 끌어올린다.
“고등학교 2학년 발달장애인 학생과 함께 동화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비장애인 멘티와 같이 다닐 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이 친구와 함께 다니면 옆에서 다른 어르신들이 수고한다는 말씀 을 심심치 않게 하세요. 장애인과의 동행은 그 자체로 짐이란 인식이 전제된 거죠. 직접 대하고 겪어보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건데, 매체를 통해서만 접하다 보니 쉽게 편견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물론 다른 점이 있죠. 하지만 사람은 원래 다 다르잖아요. 차이를 보는 데 매몰돼 남과 나를 지나치게 구분짓는 것 같아요. 장애인의 시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무척 많은데도요.”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