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 외 2편
권수진
진실은 늘 불편하기 마련입니다
‘좋아요’와 ‘구독하기’를 열심히 누르지만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몇 개의 얼굴을 숨기고 있습니까
직접 대면하고 싶은 모습들과
피하고 싶은 현실 사이 괴리감
오늘도 어김없이 태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 태양은 과거의 허상에 불과한데
당신은 믿습니다, 조금 전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는 해를
몇억 광년을 지나 빛의 속도로 달려온
지구가 자전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단지 눈으로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을 감으면 적막한 어둠이 찾아옵니다
당신은 밤하늘의 별들이 명멸하는 이유를 알고 있나요?
캄캄한 하늘 위로 미리내가 떨어지면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생을 마감한 생명체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당신은 어디서 들은 적 있습니다
사실 운석은 무생물이라서 죽고 사는 문제가 없는 것인데
행성은 늘 같은 방향으로만 윤회를 떠돕니다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이나 당신을 만납니까
그동안 진실을 고백한 경우는 몇 번입니까
진실을 고백할 만한 상대는 있습니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맑은 날에는 항상 우산을 준비해 두세요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천 길 낭떠러지 앞에서
사랑하는 이가 나를 떠밀 때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나의 확신은
그 사람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고
설령 내가 떨어져서 추락할지라도
시야에서 멀어지는 그 사람을 바라보며
웃을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줄 것이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일보 직전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그게 바로 사랑이라고
데자뷔
내가 말한 창조가 사실은 모방에 불과함을 고백합니다
남들의 언사를 지금까지 우려먹고 살았습니다
가난할수록 겉모습만 화려하게 포장하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서로 속고 속이는 과정의 연속이니까
과장된 불신이 믿음으로 성장하려면
제법 그럴법한 논리가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진실은 불편하고 진리는 불변하는 습성을 믿습니다
거리를 활보하는 다양한 사람들
어제의 당신과 오늘의 당신이 다른 모습일지라도
내 안의 당신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눈가의 잔주름이 깊어져 고민하는 당신은
당신이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더군요
그동안 당신은 무얼 먹고 살았나요?
저는 매운 음식이라면 무조건 다 잘 먹습니다
― 권수진 시집,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시인동네 / 2022)
권수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2011년 〈최치원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작》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철학적인 하루』와 합동시집 『시골시인―K』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