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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10. 큐티
여호수아 16:1 ~ 10
에브라임과 서쪽 므낫세 자손의 기업
관찰 :
1)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
- 1절.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샘 동쪽 곧 여리고 곁 요단으로부터 광야로 들어가 여리고로부터 벧엘 산지로 올라가고” => 야곱의 아들들 중 요셉을 제외한 11아들들의 자손들은 하나의 지파를 이루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으로부터 두 아들을 각 하나의 지파로 인정받아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지파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업 분배시에는 한 자손으로 취급되어 제비를 하나만 뽑게 되었습니다. 제비를 뽑는 과정에서 유다 지파가 제일 먼저 뽑게 되고 가장 좋은 땅을 분배받은 것을 보면 유다 지파가 장자로서의 역할을 해 왔고, 그에 대해서 다른 지파들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셉 지파는 유다 지파와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에브라임 지파는 자신들이 장자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그렇게 여겼고, 그 중 에브라임 지파가 장자권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실제로 애굽에서의 생활에서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애굽 총리의 아들들이었고, 그들이 누린 권세와 영광은 다른 지파와 같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배경이 시간이 흘러 같은 노예 생활을 했을지라도 갈등이 사라지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장자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언제나 자신들의 기득권에 관심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땅의 배분의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2지파인데 하나의 제비만 뽑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고 더 넓은 땅을 달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a. “여리고 샘” - 구약 시대의 ‘여리고’는 침식된 알 모양의 언덕을 가진 성읍입니다. 이 언덕은 사해의 하구에서 북서쪽으로 16km 떨어져 있으며, 지반 위로 15m 솟아오른 언덕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 언덕 옆에 있는 샘이 여리고 샘입니다. 오늘날도 이 샘에서는 풍부한 물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b. “벧엘” - 예루살렘 북쪽 19.2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벧엘’은 팔레스틴의 남북 대로의 경계를 이루었습니다. 벧엘 정상 가까이에 아주 좋은 샘물이 있었기 때문에 거주하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벧엘은 여리고를 지나 요단 건너편 서쪽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동서 교차로의 요충지이며, 아얄론 골짜기와 고브라를 지나 샤론 평야와 지중해에 이르는 요단 동편 동서 도로상의 요충지이기도 했습니다. 벧엘은 이렇듯 지정학적 요충지였습니다.
- 2절. “벧엘에서부터 루스로 나아가 아렉 족속의 경계를 지나 아다롯에 이르고” =>
a. “벧엘에서부터 루스” - 야곱은 형 에서의 복수의 손길을 피하여 외삼촌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하던 도중 한 곳에서 밤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이름이 '루스'였습니다. 여기서 밤을 지새우던 야곱은 꿈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을 본 후에 이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이란 뜻의 '벧엘'로 고쳤습니다(창 28:19). 즉 루스는 가나안사람들이 불렀던 본래 이름이고, 벧엘은 야곱이 명명한 이름이기에 벧엘과 루스는 동일합니다. 여기서 벧엘과 루스를 다른 곳으로 표현하는 것은 벧엘을 성읍 이름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벧엘 성읍 남쪽에 위치해 있는 산악 지대를 의미한 것입니다. 그리고 루스는 벧엘 성읍 자체를 가리킨 것입니다. 18:13에서 베냐민 지경의 경계를 묘사할 때 벧엘과 루스는 동일한 곳으로 간주됩니다. 이 성읍은 사사 시대까지 가나안 거민들에게 루스로 계속 알려져 있었습니다.
b. “아렉 사람” - 다윗의 친구이자 후에 압살롬의 조언자가 되었던 후새가 이 가문 출신의 사람이었습니다(삼하 15:32; 16:16; 대상 27:33). 이 아렉 사람들은 베냐민의 북쪽 변경인 아다롯 앗달에 거주했습니다.
c. “아다롯” - 18:13에는 '아다롯 앗달'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위치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요셉 자손의 남쪽 경계선과 베냐민지파의 북쪽 경계선 상에 있었습니다.
- 3절. “서쪽으로 내려가서 야블렛 족속의 경계와 아래 벧호론과 게셀에까지 이르고 그 끝은 바다라” =>
a. “야블렛 사람” - '야블렛'이란 조상의 이름을 딴 종족인 것 같은데, 어떤 종족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요셉 자손에게 할당된 가나안 영토에 살았던 한 종족이라고만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벧 호론에 가까운 에브라임의 경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b. “벧 호론”은 상, 하 두 벧 호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루살렘 서북쪽 약 16km와 19km 지점에 각각 위치해 있었습니다. 또한 이들 상, 하 벧호론 성읍들은 베냐민 지파 지경과 에브라임 지파 지경의 경계선 상에 위치하여 있었습니다. 후일 통일 왕국이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이 두 성읍은 북왕국 에브라임 지파에 속하게 됩니다.
c. “게셀” - 여호수아가 북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동안에 게셀 왕 호람은 라기스를 지원하기 위하여 원정왔다가 이스라엘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습니다(10:33). 게셀은 스블라의 북쪽 변방에 위치해 있는데, 벧 호론을 통해 산간 지방으로 들어가는 측면 대로는 지중해의 해안으로 가는 길과 만나기 전에 바로 게셀로 이어집니다.
- 4절. “요셉의 자손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들의 기업을 받았더라” => 요셉 자손 중 므낫세 지파가 분배받은 기업은 17:7 ~ 13에 기록되어 있고,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기업은 16:5 ~ 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 요셉 자손의 두 지파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요단 서편 가나안 땅의 중앙 지대로, 비옥했을 뿐만 아니라 광활했습니다. 이것은 일찍이 야곱을 통해 예언된 축복의 성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창 48:15, 16;49:22-26).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제비를 한 번 뽑았다고 불평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유다 지파는 자신들의 분배된 땅이 너무 넓다해서 시므온 지파에게 양도하는 모습과 대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 지파가 분배받은 지역은 자신들이 모두 점령하기만 하면 충분하고도 남는 땅이었음이 이 땅들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여하튼 이들 지파의 지역은 동쪽으로는 요단강을 경계하며, 서쪽으로는 지중해를, 남쪽으로는 단과 베냐민 지파를, 그리고 북쪽으로는 아셀, 스불론, 잇사갈 지파와 각각 경계했습니다.
2) 에브라임 자손의 기업
- 5절. “에브라임 자손이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지역은 이러하니라 그들의 기업의 경계는 동쪽으로 아다롯 앗달에서 윗 벧호론에 이르고” => 에브라임은 야곱의 예언대로 형 므낫세를 넘어서서 요셉의 장자권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유다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 유다와 에브라임 지파가 각각 남과 북의 우두머리 지파가 되었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여실히 입증됩니다. 이미 이처럼 이 두 지파로 인해서 이스라엘 안에서는 분열의 기미가 상존하고 있었습니다.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이스라엘 12지파 중 주도적인 지파가 된 것은 각각 야곱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축복에 근거합니다. 즉 유다지파는 창 49:8 ~ 12에, 에브라임 지파는 창 48:8 ~ 20; 49:22 ~ 26에 그 주도적인 위치가 예언되어 있습니다.
- 6절. “또 서쪽으로 나아가 북쪽 믹므다에 이르고 동쪽으로 돌아 다아낫 실로에 이르러 야노아 동쪽을 지나고” =>
a. “믹므다”는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경계선에 위치한 성읍으로 나타나 있는데, 세겜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b. “다아낫 실로”는 에브라임 지파 내의 동북쪽에 위치합니다. 이 성읍은 믹므다와 야노아 사이에 있었습니다. 세겜 동남쪽 11.2km 지점에 있는 이 성읍에서는 고대의 언덕 요새가 축성 되었었다는 증거가 발굴되었습니다.
c. “야노아” - 성경에는 '야노아'란 동일 지명을 가진 두 곳이 있는데(7절; 왕
하 15:29), 본절의 성읍은 에브라임 지파의 동쪽 경계선에 위치해 있는 성읍입니다.
- 7절. “야노아에서부터 아다롯과 나아라로 내려가 여리고를 만나서 요단으로 나아가고” =>
a. “아다롯” - 2절에 언급되어 있는 '아다롯'이나 5절에 언급되어 있는 '아다롯 앗달'과는 구별되는 성읍으로, 에브라임 지파의 북동쪽 국경 도시였습니다.
b. “나아라’ - 대상 7:28에 언급되어 있는 '나아란'과 동일한 성읍으로 추정됩니다. 여리고에서 북서쪽으로 약 2시간 가량 떨어진 유대 언덕 기슭에 위치해 있습니다.
- 8절. “또 답부아에서부터 서쪽으로 지나서 가나 시내에 이르나니 그 끝은 바다라 에브라임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받은 기업이 이러하였고” =>
a. “답부아” - 세겜 서쪽 에브라임 지파의 북쪽 경계선, 므낫세 지파의 남쪽 경계선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b. “가나 시내” - '갈대 시내'란 뜻으로, 이는 그곳에서 많이 자라는 갈대로 인해 유래된 명칭입니다.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경계를 지어주는 시내입니다(17:9).
- 9절. “그 외에 므낫세 자손의 기업 중에서 에브라임 자손을 위하여 구분한 모든 성읍과 그 마을들도 있었더라” => 에브라임 지파는 므낫세 지파의 기업 가운데 흩어져 있는 일부 성읍들을 분배받았는데, 17:8에 의하면 답부아 성읍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므낫세 지파의 기업이 인구에 비해 너무 넓었기 때문에 일부 성읍을 에브라임 지파에게 주었다고 봅니다. 즉 므낫세 지파의 성읍이 필요 이상으로 많았으므로, 경계선이 재조정되어 에브라임 지파의 경계선이 상향됐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가 장자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가운데 시므온 지파에 자신의 땅을 나눠준 것과 에브라임이 장자권을 주장하는 가운데 므낫세 지파의 땅을 가지게 된 것과는 분명히 대조적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 10절. “그들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오늘까지 에브라임 가운데에 거주하며 노역하는 종이 되니라” =>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않은 것은 가나안 족속을 철저히 멸절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신 7:2)을 명백히 위반하는 범죄 행위였습니다. 게셀 왕 호람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남부 지역을 정복할 당시 라기스 왕을 원조하기 위해 멀리 원병을 파견한 적이 있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습니다. 이러한 게셀을 강력한 에브라임 지파가 정복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큰 잘못이었습니다. 심각한 문제는 게셀에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족속들을 노역하는 종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즉 에브라임 지파는 자시들의 힘으로 게셀의 가나안 족속을 충분히 몰아낼 수 있는 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지파의 이익을 위해 그냥 방치해 두면서 이용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5:63에서 유다 지파가 예루살렘에 거하는 가나안 족속(여부스 사람)을 성심껏 쫓아내지 못한 것보다 더 악한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장자권을 주장하는 유다와 에브라임 모두, 특별히 에브라임의 이러한 행태는 향후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하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보다 급격히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진 것의 이유가 단순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인 것입니다.
가르침 :
1) 에브라임 지파는 유다 지파 다음으로 그 배분받은 땅을 설명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지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기고 실리를 얻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분배 받은 넓고 비옥한 땅도 부족하다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므낫세가 분배받은 땅도 빼앗듯이 얻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의 거민들을 모두 몰아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게셀의 가나안 거민들을 잡아서 자신들의 종으로 노역을 하는데 부려먹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복종하는 것의 중요성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애굽에서 최상위층의 안락을 누렸던 에브라임과 므낫세이기에 그 자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바르게 전수하지 못한데서 원인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었지만 요셉의 아내는 애굽 제사장의 딸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자녀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온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바일 것입니다.
2) 에브라임이 바른 장자권을 행사하지 못하기에, 그들의 불신앙적 행태로 인하여 가나안을 정복하고 땅을 배분하면서 이미 분열의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안타까운 모습이고,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함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게까지 되는지를 역사를 통해서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역사를 기록하신 성령님의 의도에 따라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됩니다.
3) 분명히 에브라임이 분배받은 땅은 유다 지파가 분배받은 땅과 견주어서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비옥하고 넓은 지역이었습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그 땅을 배분받자마자 에브라임은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게셀 땅의 가나안 거민들을 자신들을 위하여 노동하는 종으로 삼아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까지 나온 기브온 거민들에 대한 여호수아의 실수나 유다 지파의 게으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영적 구원과 유익은 모두 다 챙기면서 이 세상에서 누리는 것도 모두 취하고자 하는 이기적이고 그릇된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러한 바벨론 신앙적 행태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라야 하지,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도 섬기며,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영적 유익도 챙기고, 세상에서 얻는 짭짤한 유익도 챙기는 것은 불신앙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집중력입니다.
2) 이 시대에 동일하게 말씀대로 살 것인가, 현실에 타협하고 자신의 유익에 신앙을 동원할 것인가의 갈등이 존재합니다. 그 때 손해 보더라도 말씀에 순종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다짐합니다. 지금 당장은 유익을 얻고 편리한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상은 그것이 망하는 길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 외에 이 땅에서의 삶의 방식은 결코 온전한 길이 없음을 다시금 되뇌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