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82
제9장 강주성의 불길
제35편 유배지의 송강 35-2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을 때 다락 아래서 왁자지껄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인이 뛰어 들어와서 대종에게 하소연했다.
“원장어른, 좀 내려가셔야겠습니다. 그 양반이 또 와서 야료를 부립니다.”
대종이 잠시 내려갔다가 한 사내를 데리고 올라왔다.
얼굴이 검고 눈이 부리부리하고 체격이 늠름한 사내였다.
대종이 송강에게 그를 소개시켰다.“이 사람은 제 밑에서 일하는 기주 기수현
백장촌(百丈村) 태생 흑선풍(黑旋風) 이규(李逵)입니다.
사람을 때려죽이고 피해 다니다가 강주로 굴러들어 왔는데 사면을 받고도 고향으로
안 돌아가고 여기서 삽니다.주벽이 심해서 누구나 꺼리지만 쌍 도끼를 잘 쓰고
권술과 봉술도 뛰어납니다.”이규는 아까부터 송강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대종의 긴 소개가 끝나자 대뜸 한마디 묻는다.
“형님, 이분이 누구요?”
“급시우 송공명이시네.”“진작 말씀해 주시지. 이 형님도 아시지만 제가 얼마나
형님을 뵙고 싶어 했는지 모릅니다. 자아, 아우 절을 받으십시오.”
말을 마치자 곧 엎드려 공손히 절을 한다.
송강이 황망히 답례를 한 다음에 그에게 자리를 주고 술을 권하며 물었다.
“아까는 왜 화가 났소?”“급히 쓸 돈이 있어 열 냥만 빌려달라고 했는데 경칠 놈이
안 줍디다. 그래서 이 집 기둥뿌리를 뽑아버리려고 했습니다.”
“허어, 열 냥은 내가 주겠소.”송강이 은자 열 냥을 주자 이규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쿵쾅거리며 층계를 뛰어 내려갔다.
“형님, 돈을 주는 게 아닌데 그랬습니다.”“무슨 말인가?”
“술과 노름에 빠져 있지요. 지 놈이 급하게 쓸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노름 밑천이
떨어진 겁니다.”한편 이규는 송강에게 돈을 받아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우리 송강 형님은 진짜 양반이군. 나를 언제 봤다고 선뜻 열 냥씩이나
내주는가, 오늘은 열 냥을 밑천 삼아 돈을 따보기로 하자.’이규는 성 밖 소장을
(小張乙) 네 노름판으로 달려가 은자 열 냥을 판에 내놓고 노름을 시작했다.
그러나 주사위가 구르면 구를수록 이규의 돈은 모두 물주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노름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순식간에 송강 형님이 준 돈을 몽땅 잃은 이규는
화가 치밀어 오르자 바닥에 있는 판돈을 몽땅 움켜쥐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름꾼들은 모두그 자리에 서서 소리만 지를 뿐 아무도 감히 뒤 쫓아가
이규를 붙잡으려는 자가 없었다.이규가 거리에서 마구 뛰고 있을 때 누군가
뒤쫓아 와서 그의 팔을 와락 잡아 낚아채는 사람이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남의 돈을 갖고 달아나다니?“네놈이 무슨 상관이냐?”
이규가 한마디 쏘아붙이고 고개를 돌려보자 그 사람은 대종이었다.
그 뒤에는 송강도 서 있었다.이규는 낯을 바로 들지 못했다.
이규는 말 한마디 못하고 주머니를 톡톡 털어서 대종에게 내주고 말았다.
대종은 그 돈을 노름판에 다시 돌려보냈다.“우린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 합시다.”
세 사람은 곧 비파정을 찾아갔다.정자 위로 올라가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모를 불러 채소, 과일, 생선 등 안주를 시켰다.
술은 강주에서 유명한 옥호춘(玉壺春)이었다.송강은 잔을 들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산천의 경치가 여간 비범하지 않았다.그름에 덮힌 요산(遙山)은 높푸르게 솟구쳐
있고, 멀리 흐르는 강물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은은한 모래펄로 갈매기는 떼 지어 날고 조용한 작은 포구에는 어선 두어 척이
한가롭게 떠 있었다.물결이 출렁이며 높은 하늘을 치고 바람은 수면을 휩쓸고 있었다.
자소봉은 하늘에 닿아 있고 비파정(琵琶亭)은 반이나 강 위에 떠있는 듯했다.
주위는 넓고 윤기가 밝아 옛날 시인 백낙천(白樂天)이 시를 읊었던 심양강변의
비파정이 바로 이곳이었다.송강은 그윽한 정취를 느끼며 술잔을 기울였다.
- 83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