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 외 2편
허은실
문드러진 돌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누구더라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
순식간에 돌 속으로 숨는다
돌에 표정을 새기는
마음, 그거 말야
거돈사지에서 타프롬까지
무엇을 보려고
폐허를 더듬었는지
느티 아래 벌레들
수없이 태어나 밟힌다
어떻게 나비가 될 수 있지
저렇게 생긴 벌레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나
새로 깨어난 개구리들
와글와글 웃고
비린 꽃내 속
저쪽 저쪽
봄새가 울면
말갈 여진이었으려나
한 번은 너였던 듯해
돌에 말을 넣고 돌아온
물려 입은 잠
이를 꽉 물고 사나봐요
저작근이 뭉쳐 있어요
한의사는 침을 놓으며
힘 빼세요
나는 여기가 아파요
자세가 나쁘면 중심이 틀어집니다
동서남북수금지화가 다 연결돼 있습니다
남의 옷을 물려 입어서 그래요
당신은 자신의 이 가는 소리에 깨본 적이 있나요
왜 어떤 말들은
잠의 바깥으로 도망쳐나오는지
짧은 잠을 자고 간
누군가의 머리 냄새
이제 그만 시들어도 될까
나는 너무 급하게 늙었어
누구,
누가 이토록 고단한 거야
내 것일 리 없다
새로 태어난 이 누대의 피로는
자고 나면 어깨가 아프고
손바닥에서 철봉 냄새가 나
달궈진 한낮의 바위에 눕고 싶다
태어나자마자 늙어버리는
비애와 피로를 누이고
돌 속으로
잠자러 간다
볼링핀처럼
쓰러지려고요 선생님
금이 가는 치열
앙다물고
나는 내 몸에 침을 꽂는다
새
계단참에 손바닥만한 것이 떨어져 있다
새다
날개가 있다
다가가보았다
움직이지 않는다
새가 아니다
새는 다가가면 날아가는 것이다
가만히 불러보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건드려보았다
움직임이 없다
죽었나봐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보드라워
바라보았다 그러자
작은 몸이 가만 부풀었다 가라앉는다
살아 있나봐
기다려볼까
그건 나의 숨이었는지도 몰라
손바닥 위에 놓아본다
너무 가벼워
놀란 나는 귓속말을 했다
그래, 새들은 뼛속이 비어 있거든
그렇지만 새는 인간보다 따뜻해
냄새를 맡아보았다
눈냄새 같은 것
이건 새야
그럼 묻어줄까
나무 아래 작은 구덩이를 파고
새를 뉘었다
이제 너는 새로 돋는 잎사귀가 될 거야
그러자 새는
계단참에
흰빛 한 점
누구였을까
― 허은실 시집, 『회복기』 (문학동네 / 2022)
허은실
2010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나는 잠깐 설웁다』『회복기』가 있다. 제8회 김구용시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