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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고난을 넘어서세요!
참고말씀: 민9:23; 욥1:14-19; 시50:15; 90:10; 119:67,71; 잠27:12; 전7:14; 고전10:13; 고후1:8,9; 3:18; 약1:2-4; 5:13
읽을말씀: 시119:50
주제말씀: 시119: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첫째, 고난이 없거나 안 오는 게 아닙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119:50)
말씀의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갑니까? ‘고난이 없는 삶’입니까? 흔히 ‘문제가 없는 삶’을 복 받는 삶으로 착각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경은 이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오히려 인생은 고난의 연속으로써 고난과 더불어서 살아간다고 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5:13)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말씀의 사람들에게 고난을 두시는 것입니까? 고난이 지닌 많은 유익함들 때문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71 상) 어떤 점들이 유익합니까? 고난을 통해 주의 말씀들을 더 잘 배울 수 있고,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하) 고난을 통해 우리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또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 찾게 되고,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고난을 통해 믿음의 연단을 받게 되며,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고난을 통해 예수님의 형상을 점점 더 닮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그러니 우리는 항상 무엇을 각오해야 합니까?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고난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어떤 것도 대비해야 합니까? 고난의 연속, 즉 연이은 고난들이나 힘에 겹도록 다가오는 고난들입니다.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가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욥1:14-19) /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고후1:8,9)
혹 우리는 말씀과 기도의 사람입니까? 그런데도 고난이 우리를 찾아왔으며, 반복해서 우리를 마구 흔들어대고 있습니까?
둘째, 말씀으로 고난의 파도를 넘어서야 합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119:50)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으로 고난의 파고(波高)를 넘어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서프보드(surfing board)와도 같기 때문입니다. 서프보드란 무엇입니까? 서핑(surfing, 파도타기)에서 사용하는 부력(浮力)이 있는 판으로써, 일반적으로 나무 또는 폴리우레탄 폼으로 만들어지며, 길이는 1.5~2.7m, 너비는 50~60cm, 두께는 7~10cm입니다.
파도(波濤)는 해안가로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인생의 문제들도 파도처럼 반복해서 우리의 일상을 습격합니다. 어떤 파도들은 방파제(防波堤)에 부딪혀서 산산이 부서지지만, 어떤 파도들은 우리에게로 곧장 달려옵니다.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크고 높은 파도들은 하나님의 크신 팔 앞에서 모두 부서지지만, 작은 파도들은 어김없이 우리에게까지 밀려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이런 세상의 파도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매번 피해 다녀야 합니까? 물론 어떤 때는 피하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잠27:12) 하지만 어떤 것은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말씀으로 그것을 타고 넘어섬으로써입니다. 즉 비록 우리가 밀려오는 파도들을 막을 수는 없어도, 대신 말씀을 의지하여 그것들을 능히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고난의 파도를 넘어서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합니까?
① 우리를 말씀에 단단히 연결해야 합니다.
서핑을 하는 사람들은 ‘리쉬’(rishi)라는 끈으로 반드시 자신의 신체를 서프보드와 연결해야 하는데, 이는 보드에서 균형을 잃고 떨어지거나 파도에 휘말리게 되더라도 익사하지 않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서프보드를 분실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본격적인 파도타기에 앞서서 우리를 말씀에 단단히 붙들어 매었습니까? 한 주를 출발하면서 다시 한번 우리가 말씀에 단단히 매여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② 말씀의 균형감각과 타이밍을 계속 익혀야 합니다.
서핑(surfing)은 서프보드(surfboard)를 타고서 파도의 경사진 면을 오르내리며 높이와 속도, 기술을 겨루는 스포츠이므로 당연히 무엇이 요구됩니까? 고도의 평형감각과 정확한 타이밍입니다. 그러나 이는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끊임없는 인내와 훈련을 통해 길러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생활도 주일마다, 그리고 매일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적용함으로써 비로소 그 균형감각(均衡感覺)이 길러질 수 있으며, 말씀을 적용하는 타이밍(timing) 역시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즉 언제 가야 하고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민9:23)
한편, 말씀으로 문제의 파도를 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 앞에 닥친 고난은 그대로이지만, 말씀을 통해 놀랍게도 그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시119:50 상)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고난 가운데서 건지시며, 고난으로 말미암아 다 죽어가던 우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119:50 하)
혹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말씀으로 고난의 파도를 넘어설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습니까? 즉 말씀에 우리를 단단히 붙들어 매고 있으며, 또한 꾸준한 말씀생활을 통해서 균형감각과 타이밍을 계속 익혀 가고 있습니까? 원하건대 비록 고난 중일지라도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얻으며 말씀을 통해 다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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