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란 무엇인가? '다음카페'의 백과사전에서 '문화'를 검색하면 무려 3,000개의 결과가 나온다. 광주를 문화중심도시 또는 문화도시라고 할 때 난 구토를 느끼곤 한다.
난 차가 없다. 그래 걷는 걸 좋아했다. 집도 공기 좋은 증심사 계곡으로 잡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난 걷기를 두려워했다. 증심천을 따라 광주천을 따라 걷다보면 짜증이 나기 때문이다. '차' 중심의 도시. 이곳에 과연 문화란 무엇인가? 서울 종로엔 육교가 없다(아마 있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웬만하면 없애고 있다). 종로 2가엔 지하도가 있지만 횡단보도도 있다. 지하상가가 있는 금남로엔 없다(다행히 충파 앞엔 횡단보도가 만들어졌다. 지하상가 점주들과 운전사들과의 줄다리기에서 보행권을 획득한 것이다). 자전거는 삥 돌아가거나 들고 지하도를 건너야 한다. 이게 문화일까?
산책이란 '느림'의 최대 미학(?)이다. '어린 왕자'에선가 산책이란 함께(혼자서도 가능하리라) 앞을 보며,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며 노니는 것이라 했던가? 그런데 집 앞 동산마을 길 산책을 관 두고 난 방 구석에 앉아 홀로 술을 마셨다. 아마도 불교연대가 창립한 이후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민주노동당 내에 자주-평등 간의 갈등이 심각하게 부각한 이후이던가 말이다. 나는 현재 2000년부터 노동당과 녹색연합에서 활동해왔고 2년 전부터 불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건 장난이 아니다. 가족도 없는 나로서도 버거운 일이다. 차라리 비즈니스를 버려버릴까도 싶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 결과 난 '당뇨'라는 병을 얻었다. 어제 8일 만에 쏘주 두 병을 깠다. 병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점에서 마시던 쏘주병을 들고 텅 빈 집에 들어가 하얀 밤을 보냈다. "바우야! 왜 사니?" 자문하면서 말이다.
돌아가자! 과연 우리에게 '문화'란 무엇인가? 나에겐 '느림'이다. 당신에겐 무엇인가? 다음 글은 당 동지가 방장인 청년글방에서 퍼 온 글이다.
윤정현
from 광주드림 자유게시판, '다음카페 청년글방'에서 퍼옴
이 글은 지난 1월 24일 광주광역시청에서 있었던 문화중심도시조성 추진위원회의 `광주 문화중심도시 운영전략 연구용역’ 착수보고회, 그리고 뒤이어 나온 문화중심도시 조성 실무위원 4인의 성명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또한 이 성명을 접한 사람들의 생각들, 그리고 또 27일 발표되었던 시민사회단체의 지지성명을 보고 썼습니다.
얼마 전 저는 미국 개척시대에 시애틀 지역에 살았던 인디언 추장이 당시 피어스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감동깊게 읽었습니다. 그 문건은 비밀이었다가 최근의 문서공개조치로 공개되었다는데, 그 '일자무식'(?) 인디언 추장의 편지(사실은 편지도 아니고 연설문입니다)는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개척시대에 백인들에게 쫓겨 사막으로 밀려나게 된 부족들이, 강 가에 서서 연어 떼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기쁨에 충만돼 백인침략자들에게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저에게 글 잘 읽고 박식해 유명한 여느 사람들의 글보다 훨씬 더 큰 감명을 줬습니다. 그는 흔히들 우리 '먹물'들이 역사니 전통이니, 플라톤이니 데리다니를 들먹이며 따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훨씬 '초월'(최근 어느 형은 이 말을 '포월'이라고 고쳐 말하더군요)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같은 먹물, 도시 사람들, 문명인들이 감히 상상도 못할 대지적 상상력과 자연에 대한 생각, 직관, 조화와 상생,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강 가에 서서 연어떼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워싱턴의 말 탄 병사들이 총을 들고 부족을 죽이러 올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모두 형제'라고 한, 그들이 너무 멋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며칠 전 봄물이 올라오는 섬진강엘 다녀왔습니다. 그 글을 읽고는 도저히 '근질근질' 해서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광주에서 차로 한시간이면 그곳에 갈 수 있고, 곡성에서 구례, 하동, 광양... 그리고 점심을 먹고 또 한시간에 광주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엊그제 시청에서 그 착수보고회 자리에, 참여정부 출범 이래 정부나 시청에서 하는 행사 자리에 처음으로 가보았고(물론 방청객으로요), 김상윤 선배님, 김하림 선생님 그리고 두분 실무위원분들의 성명을 보았고, 언론의 보도와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았고, 그리고 어제 김재석 경실련 사무처장의 연락처가 적힌 지지성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거기 쓰인 수사들, 그리고 그분들의 생각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선 그에 대해 조목조목 내용을 따져야 한다고도 했었지만, 저는 그렇게 부분 부분들에 대해 토를 다는 일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씁니다. 다들 얼굴 보면 알 만한 사람들이고, 엊그제 시청 착수보고회 때 갔을 때도 거기 참석한 사람들, 두세다리 건너면 다 알 만한, 그래서 얼굴 보고 이런저런 얘기 하면 될 사람들이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중언부언 편지 씁니다. 벗들에게요. 부분보다 그 개략적인 얼개에 대해서요.
이에 대한 인상적인 반응 중 하나는 광주의 인터넷언론 '뉴스통'에서 아나키스트라는 필명을 쓰는 김대성씨의 글이었습니다. 그는 저보다 좀 더 후배 또래이고, 신문사 정치부 기자였다가 그만두고 전남대 행정학과 대학원에서 문화행정에 관한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 정치적 사실에 지나치게 매몰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어서 거기에 신경이 집중된 듯 합니다.
그는 최근의 성명(실무위원 사퇴)을 선거와 관련된 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봅니다. 문화는 정치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는 광주문화도시 진행과 관련해 세가지 집단을 주목합니다. 첫째 민예총, 박화강, 윤한봉 등 전통 야골 출신들의 시민문화회의 그룹과 박광태 광주시장을 정점으로 한 광주시의 지원단과 정보문화산업진흥원 등, 그리고 전남대 등 그룹들로 나누고, 두번째 세번째의 연대가능성을 주목하고, 또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합당을 주장하는 염동연 의원의 발언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분석이 너무 부분적 사실들에 매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문화도시를 만드는 일은 문화적인 행위임과 동시에 가장 정치적 행위입니다. 그러나 그 세부적 접근에는 여러 다른 층위들이 작동합니다. 전통적인 민중운동 진영 사람들의 문화에 대한 관점은 도구적 관점이 강합니다. 쉽게 말해 데모를 한판 벌어야 하는데, 마당굿 판을 벌여서 사람들을 모아놓고는, 삐라를 뿌리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지금 집권세력의 중요역할을 하는 사람들 많은 분들이 가졌던 생각입니다.
제 학교 다닐 때 그랬습니다. 시를 쓰는 저에게 한 선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향으로 가서 농민운동을 해보라'고요. 물론 저에게 그렇게 말했던 선배 말의 맥락을 세세히 따져보면 다를 수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 말했어요. 그런데, 당시 저에게 시는 운동의 수단이 아니라 곧 목적이었습니다. 마당굿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위한 도구적 장치가 아니라 굿 속에 삐라하고는 다른 방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얘기를 건너뜁니다. 저는 지금 광주비엔날레에 근무하고 있고, 지난 10년간 일해왔지만, 저는 이 일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제가 광주비엔날레를 다니고 하는 일이, 단지 월급 받아 밥을 벌어먹고 사는, 광주비엔날레 이거 하면 광주에 무슨무슨 파급효과가 생기고, 또 문화도시도 만들면 이래저래 좋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이 일 자체가 좋습니다. 물론 다른 각도에서 여러가지로 스트레스도 팍팍 받습니다만...
그런데, 김대성은 문화를 정치적 견해에 지나치게 대입합니다. 그는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들먹입니다. 그것은 일견 타당성이 있습니다. 참여정부 출범에서 광주가 노무현 후보 지정 선거에서 기폭제 역할을 했고, 참여정부가 출발했으며, 그 한 지역개발정책으로 행정수도도 아니고, 해양수도도 아니고, 새만금도 아닌 문화수도라는 것을 광주에 만든다고 했을 때, 저는 심히 의심스러운 한편으로 기대도 했습니다... 향후 지방선거, 나아가 대선에서도 문화수도 이거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또 엇나갑니다. 문화는 여러가지의 정의가 있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문화중심도시 계획은 '포괄적인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거기엔 정치도 경제도 다 포함됩니다. 그런데, 김대성은 정치에 주목하고, 또 어떤 분들은 경제에 촛점을 맞춥니다.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김영주 원장님 글들을 보니 그렇더군요.
또 어떤 분들은 지역분권에 촛점을 맞추기도 하고 언론사나 대학, 특히 전남대는 전남대가 중심이 되어 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문화도시를 만드는 데 정치적 사실이나 지형에 지나치게 민감하거나(물론 중요합니다만 종속변수라는 것입니다) 경제 등 특정 측면에 치우치는 것이 옳다고 보지 않습니다.
문화도시 조성사업을 광주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이견이 있습니다. 성명은 추진사업이 광주 중심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추진기획단 사무실도 광주로 와야 하고, 조성위원회도 문광부 차원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하고, 내용도 광주 중심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주장은 상당한 문제를 안고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런 이야기 하려면 너무 범위가 넓어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광주 이외 지역 사람들은 문화중심도시 사업이 지나치게 광주 중심적으로 진행된다고 말합니다. 엊그제 광주에 오셨던 어느 분은 그렇더군요. 미학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맥락 추출이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만, '구상'과 '추상'을 이야기 하시면서 "추상은 구상을 포괄하기 쉽지만, 구상은 추상을 포괄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시더라구요. 광주 사람으로서, 참 듣기 서운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중언부언 길어집니다. 끝을 맺지요. 섬진강 이야기로요.
저는 광주에 살면서 드라이브를 자주 하는 편인데, 섬진강의 봄풍경을 정말 좋아합니다. 지리산에 눈이 녹으면 높은 산골짜기에서부터 강물이 흘러내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곡성, 구례를 지나,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흘러갑니다. 햇살에 비추는 강물, 압록에서 보성강을 따라 올라가는 길, 구례읍... 다들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멀리 남해 광양, 진상, 다압에서부터 하동, 구례로 올라옵니다.
이 강 가 산, 백운산에서 곧 고로쇠 수액이 채취됩니다. 고로쇠물은 지금은 구례, 화순, 장성까지 뻗쳤지만, 원산지는 백운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환경이니 건강이니 웰빙이니 해서 인기지만, 사실 오래 전 백운산 고로쇠물은 '물' 자체가 아니라, '고로쇠 물을 먹으러 가는 것' 자체가 고로쇠물인 듯 했습니다. 겨울 내내 집안에 틀어박혀 움추리고 있었던 시골 아낙네들이 봄에 새로 힘든 일을 하려면, 기운을 차려야 하는데, 뼈에 좋다는 이유로 시어머니에게 그것을 먹으로 간다고 하고, 동네 아줌마들이 모두 떼를 지어 쌀을 이고 그곳 백운산 자락 마을에 들어가 사랑방 하나를 얻어 하룻밤 자며 물을 마시며, 한겨울 고된 몸과 시집살이의 애달픔을 수다로 풀었던 것이라더군요. 그러니까 고로쇠물은 뼈에 좋니, 성분이 어떻니 해서와 또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식 카니발이요.
이제 곧 있으면 백운산 자락에 있는 도선국사가 입적했다는 옥룡사에 동백꽃이 활짝 필거고, 그 꽃은 툭툭 떨어져 검은 그늘 속에 깔립니다. 그때가 고로쇠 물 먹는 때입니다.
그 고로쇠물, 벗들에게 권합니다. 그리고 백운산에 올라 그 남쪽 산허리에 올라오는 봄기운을 느껴보십시오. 산길을 걷다가 고개를 숙여 올라오는 잎새들을 보십시오.
또 조금 더 있다가는 또 차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산벚꽃 필 무렵, 섬진강을 따라가며 강 가 산능선에 핀 산벚꽃을 보십시오. 벗들, 이것은 도시에 사는 우리들에게 아주 새로운 영감을 줍니다. (벗들, 나는 지난 2002년 여름, 병고에서 돌아와 내가 광주에 왔을 때, 우리가 갔던 그 섬진강가의 낚시를 잊지 못한다.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그 입감 없는 낚시... 윤기 형이랑, 호균이랑, 지원이랑, 고필이랑... 그 닭죽도...)
저는 얼마 전 후배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광주 문화도시라고 광주만 중심적으로 생각하지 말자고요. 지금은 광주와 전남이 행정구역상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실제 사람들의 생활은 그런 행정단위를 뛰어넘습니다. 저는 전남에서 태어나 광주에 살고 있고, 실제 이런 인구가 광주 토박이들보다 더 많습니다.
그래서 광주를 생각할 때는 광주라는 고정적인 도시를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광주를 중심으로 해서 산(구례)-들(나주)-바다(목포)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저는 여기에서 참 많은 가능성들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몇해 전 저는 섬진강 살리기 시민모임이 주최한 섬진강 연어방류행사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오수성 선생님, 지금 정보문화산업진흥원 기획실장이신 김선출 님도 참여하셨고, 무등산공유화재단의 박원균, 또 지금 문화중심도시조성 추진기획단 연구실장으로 계시는 조경만(목포대 인류학과) 선생님의 영상물상연이 생각납니다.
그때 휴식년제를 맞아 캐나다 허드슨강 인근 인디언들의 연어를 둘러싼 생활을 연구하고 돌아오신 조경만 선생님의 영상물이었습니다. 그곳 인디언들의 주식이 연어더군요. 그것을 잡아 구워도 먹고, 쪄도 먹고, 말려도 먹구요.
그리고 우리도 섬진강에 연어를 살려줬습니다. 당시 강원도 남대천인가 내수면연구소에서 가져온 것 같은데, 어린 연어새끼들을 강가에서 방류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로부터 4-5년이 흘렀군요. 신문에 의하면 이제 그 연어가 멀리 태평양, 베링해를 돌아 섬진강으로 올라온답니다. 아직 많은 수는 아닐지라도 섬진강 어부들의 그물에 연어가 잡힌다더군요. 그때 그 연어방류행사에 가 연어를 살려줬던 제 딸애가 지금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텔레비젼에서 섬진강 연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 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제가 살려준 연어 이야길 합니다.
그 섬진강에 지금 봄이 오고 있습니다. 벗들, 그 봄풍경을 벗들에게 권합니다. 그 산 칡넝쿨이 얽혀지듯, 지리산의 작은 개울들이 마침내 강물을 이뤄 바다로 가듯, 작고 소소한 강물들을 서로 위해주고 존중해주고, 우리가 말로만 많이 하는 조화와 상생의 마당을 열어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상윤 선배님, 제가 일하는 광주비엔날레에서 상임 사무처장으로 일하셨고, 그건 사실 불과 몇해 되지 않지만, 제겐 아득한 일처럼 너무 오래 됐고, 생각나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선배님의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에 가서 순안비행장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거기 붉은 꽃을 흔들던 군중들을 보고 하는 선배님의 말요. '당골네 자손들'이라는 그 말요.
그 당골네들을 주목하십시오. 월드컵 때 미쳐 날뛰던 그 당골네들이요. 미선이 효선이 촛불시위를 하던... 인터넷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노사모와 같은 사람들... 그 사람들을 주목하십시오.
광주문화연대 대표인 김하림 선생님, 사무국장 김지원씨... 이번에 지지성명을 내고 거기 연락처를 적어놓으셨던 광주경실련 김재석 처장님, 북구문화의집을 운영하는 전고필씨, 영상미디어센터를 하다 지금은 목포대에서 무슨 연구팀에 합류해 있다는 고광연씨...
섬진강에 봄이 옵니다. 그 봄을 함께 느끼시게요. 제가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생각하면 하릴없는 짓입니다. 김상윤 선배님, 김하림 선생님, 김지원씨, 김재석씨, 우리 그동안 오래 살아왔고, 지금도 전화 한통화만 하면 언제든지 만날 사이 아닙니까?
만나서 격의없는 이야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차이들이 무어 그리 대단합니까? 못할 말로 문화도시 그거 안만드면 어떻습니까? 그거 안만든다고 우리가, 광주가 굶어 죽습니까? 그거 문화중심도시면 어떻고 수도면 어떻고, 도시면 어떻습니까?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생각의 차이들을 서로 존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실 제 몸도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물며... 정말 우리 오래 만나지 못했습니다. 만나서 두서없는 소리 중얼중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518자유공원에 들불기념사업회가 '들불7열사상'을 세울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비석'을 세울 땐 그 물리적인 돌덩어리를 세우는 게 아니라고요. 시골 문중에서 비석을 세울 때는 문중의 사람들이 몇년 전부터 궁리를 하고 밥을 같이 먹고, 돈을 거둬 글씨를 새긴 돌을 세우는데, 그것은 제가 보기에 물리적인 그 돌을 세우는 게 아닙니다. 그 돌에 함께 하는, 후손들의 마음을 새겨 세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광주 문화도시는 정부기구가, 예산이 있어서 그걸을 많이 끌어다 쓰는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건물, 큰 구조물이 아닙니다. 이러이러한 전문가들이 설계를 잘 해서 사람들이 그 프로그램대로 하면 되는 문화도시가 아닙니다. 아시아문화의전당 그거 아무리 폼나게 지어놔봤자, 사람들이 그곳을 별 거 없는 곳으로 생각해버리면 말짱 꽝입니다. 광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광주를 찾는 건 금남로와 망월동 같은 물리적인 광주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80년 광주의 그 마음이 광주입니다. 군부독재를 물리치겠다는 그 마음, 도시의 행정력이 빠져나갔어도 범죄가 없었던 그 놀라운 자치능력, 죽음을 너머 시대의 어둠을 너머, 주먹밥을 나눠먹으며 온갖 사로운 것들을 물리치고 대동세상을 열었던 그 광주가 사람들이 기억하는 광주 아닐까요?
그러니까 광주는, 문화도시는 국가예산이나 정부정책, 기구에 있지 않고,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광주를 광주답게, 문화도시를 문화적으로 여기고 행동하는 그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광주의 문화도시는 대통령이나 정부관료, 시나 정관계, 경제, 언론, 학계 등 높고 권력있는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지리도 못나고 짜잔한 촌놈들이 못나고 부족하기 이를 데 없지만, 우리네 탈춤판에 온갖 잡색들이 다 한마디씩 끼어들듯이, 그거 만드는데 한축을 거들었다고 하는 그런 참여(참여정부 아닙니까?), 그런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우리 무슨무슨 위원이니 무슨무슨 토론회니 세미나니 포럼이니 하는 폼 잡는 딱딱한 방식 말고, 홀가분하게 자주 만나요. 만나서 정책담당자들에게 문화도시 어떻게 해달라고 말하기 전에 우리끼리 얘기해요.
일개 무명자가 말 많았습니다. 그래도 말 할 기회가 없어서 이런 방식으로 쏟아놓습니다. 제 이 말은 횡성수설이고, 인제 차분히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하시게요.
제 시 한편 덧붙입니다. 제목은 '별'입니다. 이 시는 대학 때인 1988년엔가 쓴 것 같습니다. 오래된 제 대학노트에서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별이란 말을 생각할 때, 윤동주의 별... 그리고 이학영 형의 별이란 말도 생각납니다. 김남주 시인은 이학영 형과 같은 남민전 전사였는데, '강도미수'란 죄명을 받아 얼마 전 청와대 인사수석 후보였다가 낙마했다고 들었습니다. 2000광주비엔날레 당시 광주비엔날레 앞에는 김남주 시인의 시비를 세웠는데, 그 제막식을 할 때, 사회를 보던 이학영 형이 이런 멘트를 하더군요.
"남주 형, 정말 반짝이는 별입니다만, 여기 오신 모든 분들도 다 하나씩의 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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