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4041] 김삿갓 이야기 4
천하를 주유하던 김삿갓이 어느날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룻배를 타게 되었다.
배에 오르고나서 보니 노를 젓는 뱃사공이 젊은 처자였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김삿갓이 처녀뱃사공을 향해 갑자기 큰소리로 불렀다.
"여보, 마누라~"
열심히 노를 젓던 처녀 뱃사공이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서 하는 말
"어째서 내가 댁의 마누라란 말이요?"
그러자 김삿갓이 능청스럽게 하는 말
"내가 지금 자네 배에 올라 탔으니 자네가 내 마누라 아닌가?"
이윽고 강을 다 건너게 되어 김삿갓은 배에서 내려 다시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처녀뱃사공이 김삿갓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얘야, 아들아! 잠깐 나 좀 보자"
깜짝 놀란 김삿갓이 처녀뱃사공을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어찌 자네같은 처녀의 아들이란 말인가?
그러자 처녀뱃사공이 태연스럽게 하는 말
"당신이 내 뱃속에서 나갔으니 내 아들이 아니고 뭐람~"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바로 피장파장이요 용호상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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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金炳淵)이 삿갓을 쓰고 방랑시인이 된 내력
조선 순조 11년(1811년) 신미년에 홍경래(1780-1812)는 서북인(西北人)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에 대한 반감과 탐관오리들의 행악에
분개가 폭발하여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홍경래는 교묘한 수단으로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민심의 불평 불만을 잘 선동해서
조직한 그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가산, 박천, 곽산, 태천, 정주 등지를 파죽지세로
휩쓸어 버리고 군사적 요새지인 선천으로 쳐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가산 군수 정시(鄭蓍)는 일개 문관의 신분이었지만 최후까지 싸워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편 김병연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관직이 높은 선천 방어사였다. 그는 군비가 부족하고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낙심하다가, 날씨가 추워서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자고 있던 중에
습격한 반란군에게 잡혀서 항복을 하게 된다.
김익순에게는 물론 그 가문에도 큰 치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국법의 심판은 냉혹하여서 이듬해 2월에 반란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3월 9일에 사형을 당하였다.
그 난리 때 형 병하(炳夏)는 여덟 살, 병연은 여섯 살
, 아우 병호(炳湖)는 젖먹이였다.
마침 김익순이 데리고 있던 종복(從僕)에 김성수(金聖秀)라는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황해도 곡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병하, 병연 형제를 피신시키고 글공부도 시켜 주었다.
그 뒤에 조정의 벌은 김익순 한 사람에게만 한하고, 두려워하던 멸족(滅族)에는
이르지 않고 폐족에 그쳤으므로 병하, 병연 형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김병연의 가족은 서울을 떠나 여주, 가평으로 이사하는 등 폐족의 고단한 삶을 살다가
부친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어머니 함평 이씨가 형제를 데리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로 이주하였다.
김병연이 스무 살이 되던 1826년(순조 32년), 영월 읍내의 동헌 뜰에서
백일장 대회 시제(詩題)인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을 받아 본 그는 시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는 그의 젊은 피는 충절의 죽음에 대한 동정과
찬양을 아끼지 않았고, 김익순의 불충의 죄에 대하여는
망군(忘君), 망친(忘親)의 벌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추상같은 탄핵을 하였다.
김병연이 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날,
어머니가 그동안 숨겨왔던 집안의 내력을 들려 주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명문거족이었다. 너는 안동 김씨의 후손이다.
안동 김씨 중에서도 장동(壯洞)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세도가 당당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들을 장동 김씨라고 불렀는데 너는 바로 장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네가 오늘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세워 욕을 퍼부은, 익자(益字) 순자(淳字)를 쓰셨던
선천 방어사는 네 할아버지였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셨고
너희들에게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사 때 신주를 모시기는커녕
지방과 축문에 관직이 없었던 것처럼 처사(處士)로 써서 너희들을 속여 왔다."
병연은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고 스스로 단죄하고,
뛰어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 집문당 발행 [방랑시인 김삿갓 시집] 참조.
[출처] [고전 해학] 김삿갓 이야기 4|작성자 오국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