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작은 연구실에서 열린 새로운 세계>
그 후 등줄쥐의 폐조직에서 발견된 이 항원은 계속된 연구를 통해 바이러스의 항원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한탄강 유역 초지에서 채집된 등줄쥐에서 처음 확인된 바이러스였기에, 우리는 그것을 ‘한탄바이러스(Hantaan virus)’라 명명하였다. 이 이름은 곧 세계 의학계에 새로운 바이러스의 탄생을 알리는 이름이 되었다.
당시 확인시험과 차단시험에 사용된 폐조직 가운데 하나의 코드번호는 ‘76-118’이었다. 이는 1976년에 채집된 118번째 들쥐를 뜻했으며, 그 개체는 등줄쥐였다. 이후 이 쥐의 폐조직 부유액을 정상 등줄쥐에 접종한 결과, 동일한 항원이 폐조직 내에서 다시 증식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어 그 실체가 바이러스임이 최종 입증되면서, 이 바이러스는 ‘한탄바이러스 76-118 strain’으로 명명되었고 훗날 한탄바이러스의 원형(Prototype strain)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 뒤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은 우리 연구실에서 확립한 실험기법을 바탕으로 한탄바이러스와 유사한 수많은 바이러스들을 잇달아 발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들은 하나의 거대한 바이러스 군(群), 즉 ‘한타바이러스科(Hantaviridae)’라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내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화려한 국제학회장의 박수갈채도 아니고, 유명 학술지에 논문이 실렸을 때의 성취감도 아니다.
겨울 냄새가 짙게 배어 있던 명륜동의 작은 연구실.
희미한 열기를 내뿜던 석유난로.
새벽까지 홀로 현미경을 들여다보던 젊은 날의 긴장감.
그리고 마침내 어둠 속에서 녹황색 형광이 떠오르던 바로 그 순간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특별히 천재적인 연구자는 아니었다. 다만 맡겨진 일을 끝까지 놓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어쩌면 자연은, 그런 사람에게만 아주 잠깐씩 자신의 비밀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에필로그:
한탄바이러스의 발견은 결코 한 사람만의 업적이 아니었다.
스승과 동료들, 이름 없이 들쥐를 채집하던 사람들, 그리고 묵묵히 연구를 지켜봐 준 수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도 믿는다.
위대한 발견은 특별한 천재의 번뜩임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성실함과 집념 속에서 더 자주 태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믿음은,
1976년 겨울 명륜동의 작은 연구실에서 시작되었다.
P.S. 졸문의 연제를 마치며, 내게 학문의 길을 열어 주시고 또 그 낯선 길을 바르게 더듬어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와 편달을 아끼지 않으셨던, 나의 존경하는 은사, 고(故) 이호왕 교수님, 그리고 언제나 든든한 선배이자 길잡이로 곁을 지켜주셨던 고(故) 이연태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깊이 고개 숙여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모든 나의 학문적 성취가 두 분께서 밝혀주신 등불을 따라 걸어온 시간의 결실이었습니다.
<사진 설명>
1976년, 한탄바이러스 발견 당시의 동아, 조선일보의 보도자료 및 세겨적 전염병 국제잡지,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에 소개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