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 9단, 日바둑 사상 최다 1600승 ‘우뚝’
1967년 프로 입단후 56년만에 달성
고바야시 1461승… 韓조훈현 1955승
“내 바둑 초라해 꾹 참으며 여기까지
대국 긴장감 사라지면 그만둘 것”
25일 통산 1600승 달성 후 환하게 웃고 있는 조치훈 9단. 아사히신문 제공
일본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 조치훈 9단(67)이 일본 프로바둑 사상 최다승인 통산 1600승을 달성했다고 일본기원이 26일 발표했다. 1967년 프로 입단 후 56년 만이다. 일본 역대 2위인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의 1461승을 크게 앞선 기록이어서 바둑계의 전인미답 경지에 올랐다는 평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조훈현 9단(70)이 통산 1955승을 기록하고 있다.
조 9단은 전날 도쿄에서 열린 제50회 명인전 예선전에서 구보 히데오 7단에게 불계승하며 1600번째 승리를 거뒀다. 승리 직후 기자들과 만나 “내 바둑이 초라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꾹 참으며 여기까지 왔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1600승이) 자랑스럽다는 생각은 없다. ‘제대로 바둑을 두고 싶다’는 마음과 ‘이젠 안 되겠다’는 마음이 항상 교차한다”고 말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대국에 임하는 긴장감을 갖고 있는 한 (현역 생활을) 계속하고 싶다. 대국 전날이면 잠을 못 이뤄 괴롭지만, 그게(긴장감이) 사라지면 그만둘 때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조 9단은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6세 때인 1962년 삼촌 조남철 9단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났다. 당시 일본 바둑계 거목으로 숱한 인재를 길러낸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도장에 들어가 11세 때 일본기원 사상 최연소 프로 기사가 됐다.
이후 일본 첫 7대 기전 전관왕, 대삼관(大三冠·한 해에 기세이, 메이진, 혼인보 등 3대 타이틀 모두 우승) 달성 등 일본 바둑 역사를 새로 썼다. 1986년 최고 권위 기세이 타이틀 방어전 때는 교통사고로 전치 3개월의 중상을 입었지만 휠체어에 앉아 끝까지 대국을 벌였다. 당시 언급한 “목숨을 걸고 둔다”는 말은 아직도 회자된다.
그는 올해도 24승 10패로 승률 7할 이상을 기록했다. 특히 데이케이배 레전드전 우승으로 76회째 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각종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조 9단은 최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지금도 매일 바둑 공부를 한다. 대국에서 비참하게 패배하는 건 괴롭다”면서도 “고통스러운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야말로 고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며 승부사의 소회를 털어놨다.
도쿄=이상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