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웃음보웃졉] 스무살의 소원

[웃음보웃졉]

스무 살의 소원

‘차라리 둘 다 죽어버렸더라면….’

2 008年 8月  7日 일본 오사카.

“…!!!!”

이번해도 역시나 다.

“…헉, 허억.”

8월 8일, 유에의 기일이자 나의 생일이 다가올 무렵이 되면 항상 나는 같은 꿈을 꾸곤 한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가득한 병원 병실 침대에 앉아 매서운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하는 엄마의 얼굴이 항상 내 머릿속을 맴돈다. 벌써 이 꿈을 꾼 지도 여러 해. 어렸을 적에도 꾼 기억이 있긴 하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이 꿈을 꿨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아. 또 꿈이었어.”

절로 입 밖으로 나오는 안도의 한숨. 매년 이 꿈을 꾸다 깨어날 때면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꿈속에서는 내가 보이질 않지만 항상 꿈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는 엄마는, 나를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몇 년 전에는 꿈을 꾸다가 알 수 없는 비명까지 지른 적이 있었다. 그 땐 내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빠 덕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지만 나는 이맘 때 쯤만 되면 내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그러고 보니 몇 시간 뒤면 내 생일…, 아니 언니 기일이구나.”

나는 책상 위에 달력을 바라보다 이내 꿈 따위는 익숙한 일상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 * *

창문 틈새로 비추는 따스한 아침 햇살이 눈가를 비추었다. 눈부신 햇살과 함께 잠에서 깨어난 내가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달력이었다.

‘2008년 8월 8일 ★★★★★’

날짜 밑으로 빨간색 색연필로 그려진 빨간색 별 다섯 개. 차마 나의 생일이라 쓸 수 없는 슬픔을 대신하여 그린 별 다섯개. 언니의 기일이라 적어 놓는 게 맞는 거지만 내 생일날, 그 것도 나 밖에 기억해 줄 수 없는 내 생일 대신 언니의 기일이라고 적어두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성년의 날의 생일을, 나만은 기억하고 싶었다.

“…올해만큼은 받고 싶은데….”

내 스무 살의 생일 날, 나 홀로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빌었던 소원.

‘내년만큼은 꼭 축하를 받고 싶어요.’

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할 소원임을 알고 있는 나이다.

“…벌써 아홉시네.”

시간을 확인하고선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 앞에 다가서 문고리를 잡았다. 이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내 눈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작년과 같이 언니의 제사상이 놓여 있을까, 아니면 나의 생일상이 놓여 있을까. 답은 알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성인이 됨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니까 내 생일상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안고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역시나.”

알고는 있었지만 항상 거실에 버티고 있는 언니의 제사상을 볼 때면 온 몸이 부서지는 듯 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일어났니. 우리 딸?”

아빠의 아침인사를 뒤로 하고, 멍하니 언니의 제사상과, 상 위에 놓인 내 사진을 보았다. 처음에 저 사진을 보았을 때 얼마나 놀라고 화났었는지…. 당장 치우라는 내 말에, 엄마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시며 애원 하셨다. 제발 가만히 두라고.

엄마는 언니가 태어나자마자 숨을 거두었기에 사진 한 장 없음에 안타까워 하셨고, 결국 엄마가 내린 방안은 내 사진을 제사상 위에 두는 것이었다. 언니와 나는 쌍둥이로 태어난 자매였다. 이란성 쌍둥이였지만, 엄마는 언니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나처럼 곱게 컸을 거라며, 눈물을 흘리며 내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쓰게 해달라고 애원하셨다. 제사상에 내 사진이 올라가 있다는 게 너무나도 기분이 나빴지만,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며 부탁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선 차마 그런 기색을 밖으로 표출할 순 없었다.

“아빠. 엄마는?”

“네 언니 제사상에 필요한 음식이 하나 빠졌다고 급하게 나갔어. 잠은 잘 잤고?”

“응.”

“또 이상한 꿈꾸고 그러는 거 아니지?”

“아냐. 이젠 괜찮대도.”

아빠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자꾸만 힐끔, 힐끔 시선이 제사상으로 향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보다. 절대 기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해놓고, 내 생일상 대신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제사상을 보고도 한편으로는 아직 조그마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생일상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는 해주시겠지. 성년의 날이니만큼 그 한마디는 꼭 해주실 거야- 라는 기대. 이 나라에 사는 만 20세의 여성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축하 한마디가, 내게는 꿈에 그리는 한마디였다.

“나왔어요, 여보.”

제사상에서 한 참을 시선을 때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현관문이 열리며 무언가 잔뜩 사들고 오신 듯, 봉다리를 가득 들고 들어오시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 것도 잠깐. 내 시선은 곧, 엄마의 오른쪽 손에 들린 리본이 달린 예쁜 핑크색 봉투로 향했다. 절대 음식재료가 담겨 있을 거라고는 보이지 않는 봉투. 설마 내 선물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텐코.”

그 때 엄마가 방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 듯,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엄마와 시선을 마주했고, 엄마의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축하해’ 라는 그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응?”

설마…, 설마?

“오늘 아침 일찍 약속 있다면서. 그렇게 가만히 서 있어도 되는 거니?”

…하지만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고 마는 엄마다. 그래도 여전히 내 시선은 핑크색 봉투로 향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 걸까? 봉투 안에 있는 무언가가 너무나도 궁금했던 나는, 결국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입을 열려는 순간 아빠가 먼저 선수쳐버리고 말았다.

“그 봉투 안에 든 것은 뭐야?”

아빠도 내심 기대하신 듯했다. 하지만… 20년 동안 함께 살아온 엄마는 항상 내 기대를 저버리는 그런 사람이었고, 오늘도 역시나 엄마는 처절하게 내 기대를 저버렸다. 아니, 나를 배신했다.

“유에 선물이요.”

“선물?”

“여보. 설마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만약에 유에가 아직까지 살아있었더라면 오늘이 유에가 성인이 되는 날이잖아요. 성인이 되는 성년의 날 이요. 그래서 조그마한 선물을 사왔는데, 당신 모르고 있었던 거죠?!”

“아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세월 참 빨라.”

“당신도 참. 이것 좀 보실래요? 백화점 갔다가 목걸이가 너무 예쁘기에 사왔어요. 유에도 좋아하겠죠, 여보?”

저승에서 좋아할 언니의 모습을 상상하며 기뻐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순간 내가 죽은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행동은 마치 언니가 살아있단 듯이 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끝까지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로 취급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금방이라도 눈가에 고인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엄마 아빠 앞에서 이런 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내 모습을 보게 된다면 엄마는 어렸을 적 내게 말했던 것처럼,

‘텐코는 유에랑 달리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잖니.’

하고 말하실 게 뻔 하니까. 하지만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차라리 태어나서는 안 될 존재로 취급받느니 죽어서 사랑받는 편이 훨씬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죽게 된다면 엄마가 이렇게 날 사랑해줄까 라는 생각도.

“텐코, 준비하지 않고 뭐하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냐. 나 준비하고 나올게.”

방으로 들어간 나는 장롱을 열고 옷을 꺼내어 입고선 나갈 채비를 챙겼다. 사실 오늘 약속이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저 집에 있기가 싫어서 둘러댄 핑계일 뿐. 말 그대로 집에 있다가는 나 자신조차도 나를 이 세상에 필요치 않는 사람이라 인정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가방을 들고 방문을 열자 텅 빈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나는 것을 보아하니 아빠도 회사에 나갈 채비를 하고 계신 듯했고, 부엌에서는 엄마의 흥얼거림이 들려왔다. 아침을 준비하고 계신 듯했다. 나는 아침을 먹고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방문 앞에 멍하니 서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내 눈에 제사상 앞에 놓인 반짝이는 보라색 하트 목걸이가 들어왔다. 시선을 확 사로잡는 보라색 빛깔. 나도 모르게 내 손은 어느새 목걸이에 닿아있었다.

“…예쁘다.”

예쁘다. 좋겠다. 가지고 싶다. 목걸이를 만진 순간 더 이상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지고 싶다는, 예쁘다는, 언니가 부럽다는 생각뿐. 한 순간이나마 내가 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불과 몇 분 전 만해도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있던 엄마의 목소리가 내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텐코.”

뒤를 돌아보니 굳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엄마가 왜 저렇게 날 쳐다보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가졌지만 곧 내 손에 들린 목걸이를 보곤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아. 목걸이가 흐트러져 있길래.”

“밥 먹고 나가.”

제사상에 목걸이를 내려놓자, 그제야 표정이 풀린 엄마는 내게 한 마디만 남겨놓고 뒷모습을 보이셨다. 이 때 나는 여느 때처럼 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야만 했는데 어째서 엄마를 부른 걸까. 어째서…,

“엄마.”

“응?”

“오늘… 무슨 날인 줄 알아?”

어째서 나는…,

“유에 기일이잖니.”

“아니 그거 말구.”

“그럼?”

“…오늘 내 생일이잖아.”

또 내 자신에게 상처가 되는 짓을 해버리고 마는 걸까. 결과는 뻔히 알면서. 이렇게…,

“무슨 말이야, 그게. 텐코는 생일이 없잖니. 새삼스럽게. 와서 밥이나 먹으렴.”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상처를 줄 엄마를 알면서도 나는 왜 기대란 것을 저버릴 수가 없는 걸까.

“…나도 받고 싶어.”

“응?”

나도 사랑을 받고 싶어….

“아냐. 엄마 나 밥 안 먹을래. 다녀올게. 오늘 늦게 들어올 거야. 아빠랑 둘이 저녁 먼저 먹어.”

더 이상 이 자리에 있다가는 정말로 지금껏 속 안에 쌓아두었던 모든 것들이 폭발할 것 만 같았다. 나는 가벼운 인사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그런 내 마음은 그저 답답하고 서러울 뿐이었다. 곧 눈앞에 엄마도, 아빠도 보이지 않자 참고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닌 척, 태연한 척 했지만 속으로 많이 서운하고 서러웠나보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모두에게.

“…하아.”

산책이라도 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공원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잊고 싶은 지난날을 떠올렸다. 차라리 진실을 몰랐었더라면….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로 돌아갔더라면 나는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었을까.

* * *

내 이름은 나카타 텐코. 내게는 생일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날 생 生, 날 일 日.  생일은 태어난 날을 의미한다. 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태어났음을 부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내 자신이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니라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나라는 존재를 부정했다. 정확히 말하면 열 달 동안 나를 뱃속에서 키워주신 나의 모친이 말이다. 엄마가 나의 탄생을 부정하는 이유는 8월 8일, 모두 그 날에 있었다.

어렸던 나는 생일이란 것이 어떠한 날을 기념하는 날인지 몰랐었다. 내가 ‘생일’이라는 날이 어떠한 날을 기념하는 것인지 알았을 때가 아마 6살이 되던 해였을 것이다.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친구의 생일이 다가와, 유치원에서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던 그 날을 난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먹었던 케이크가 탁자위에 놓여 있고, 그 주위에는 맛있는 과자들이 올려져 있었다. 마치 파티를 준비하는 듯 한 분위기. 도대체 생일이라는 것이 뭐기에, 이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하는 거지? 하고 의문이 생겼던 난, 한창 생일파티 준비에 빠져있던 선생님께 다가가 생일이라는 것이 뭐냐고 물었었다. 선생님은 아주 잠시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셨지만 이내 내게 생일이란 것에 대해 차근차근하게 설명을 해주고서는 다시 생일파티를 준비하러 가셨었다. 홀로 남겨진 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편지를 받고 좋아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중얼거렸었다.

‘왜…. 왜 텐코는 생일이 없지?’

그렇게 문득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 날 유치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를 마중하러 나온 엄마한테 물었다. 왠지 엄마라면 그에 대한 해답을 말해 줄 것만 같았기에.

‘엄마. 왜 텐코는 생일이 없어요?’

빙그레 웃으며 내 손을 잡아주던 엄마는, 내 물음에 언제 웃었냐는 듯이 표정을 굳히며

‘텐코는 생일이 없어도 이렇게 살아 있잖아.’

하고 말하며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앞으로 생일에 대해 묻지도 꺼내지도 말라는 엄마의 말씀에 나는 그저 알겠다고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생일이 없다는 것에 대해 반박할 생각도 없었고, 생일의 의미가 내게 깊숙이 다가오지 못했었기 때문에 생일이 굳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샤워를 하던 중 왼쪽 허리에 무언가 떼어낸 수술자국을 발견했다. 왜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던 건지는 둘째 치고, 수술한 기억이 없던 나는 이 수술자국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끙끙대던 차에 나는 내게 언니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샴쌍둥이로 태어난 아이라는 것도. 이 모든 사실을 알 수 있게 된 계기는, 정확히 내가 열 살이 되던 해. 이모네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모네 집에 나와 사촌언니와 단 둘만 두고선 쇼핑을 하러 나간 이모와 엄마. 그런데 엄마와 이모가 나가고 나서 사촌언니의 행동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게 웃으며 잘 대해주던 언니가, 나와 단 둘이 남게 되자마자, 나를 괴물 보듯 하며 피하는 것이 아닌가.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고, 짜증을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그편이 더 나았다.

혼자서 놀기에는 너무나도 따분했던 나. 하는 수 없이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는 언니에게 나는 물었다.

‘언니 왜 나 피해? 나랑 놀아줘!’

당시 언니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날 쳐다보며 소리치던 그 말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싫어, 이 괴물아!!’

‘괴물? 나 괴물 아니야!’

‘샴쌍둥이가 괴물이지, 뭐야? 너 때문에 네 언니가 죽었다며. 나도 너 때문에 죽으면 어떡해? 다가오지 마! 끔찍하니까.’

나를 향해 소리치던 언니가 당최 무슨 말을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때 당시엔 풀이 죽은 채로 쇼파에 앉아있었지만, 훗 날 ‘샴쌍둥이’가 무엇인지 알게 된 나는 내 자신이 무서워졌다. 쌍둥이지만 몸이 붙어 태어난 쌍둥이. 움직일 때도 함께 움직여야 하고, 어딜 갈 때도 함께 가야 하는…. 헌데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나와 함께 태어난 쌍둥이는 어디로 간 것일까? 흘리는 말로 아빠에게 슬쩍 물어보기도 했지만, 아빠는 몰라도 된다는 말씀만 하실 뿐, 전혀 내게 무언가 가르쳐 줄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다. 나에 대해서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하는데, 어째서 내 자신이 가장 모르는 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란 사람이 이렇게 비밀이 많은 아이였나 싶었다. 게다가 자꾸만 생겨나는 의문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왜 나는 생일이 없는 것일까.

언니는 언제 죽은 것이지?

내가 샴쌍둥이로 태어났다면, 그 기억이 왜 존재하지 않는 거지?

등등…, 의문점이 가득했다. 나는 이 모든 의문점들을 풀어주고, 그 해답으로 나를 납득시켜줄 만한 이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아빠였다. 엄마 앞에서는 생일의 ‘생’ 자 조차 꺼낼 수가 없었지만 아빠는 달랐다. 언제나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던 아빠. 그렇게 알려달라고 해도 가르쳐주시지 않더니, 내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모든 진실과 해답을 털어 놓아주셨다.

‘텐코. 샴쌍둥이라는 것은 말이야….’

‘알고 있어.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두 쌍둥이의 몸이 붙어 태어난 쌍둥이지?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아. 나랑 함께 태어난 언니가 어디로 갔냐는 게 난 궁금해. 내가 쌍둥이로 태어났다면 나 이외에도 한 명이 더 있어야 하잖아.’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아빠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들을 각오가 되어있냐 물었고, 이번에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텐코, 너에겐 언니가 한 명 있었단다. 이름은 나카타 유에. 태어나자마자 죽은 네 언니지.’

‘…태어나자마자 죽어? 내가 어렸을 적에 죽은 게 아니었어?’

열다섯, 이제는 알 만큼 알고 있는 어엿한 청소년이었기에 나는 모든 것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아빠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엄마와 아빤 처음에 쌍둥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 기뻐했어. 하지만 곧 그 쌍둥이가, 우리가 아는 세상에 흔히 존재하는 쌍둥이가 아니란 것을 알고 처음에는 많이 슬퍼했단다.’

‘…나를 가진 게 슬펐어? 그럼 지금도 슬퍼?’

‘텐코…. 너는 아빠의 딸이고, 희망이야. 슬플 리가 없잖아.’

‘엄마는? 엄마는 지금도 슬픈 거지? 그런 거 맞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봐. 너희는 엄마와 아빠의 사랑으로 맺어진 자식이기에, 평범한 아이든, 아니든 낳기로 결심했었어. 남들에게 받지 못할 사랑까지, 애정까지 우리가 다 주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런데 예정일이 다가오기 전까지 아무 이상이 없던 아이가, 예정일이 다가오자 갑자기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거야. 그 때문에 너희 엄마도 목숨이 많이 위태로웠었지.’

‘…위태로워? 죽을 뻔했다는 거야? 나 때문에?’

나와 언니라는 존재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었던 나는, 어느 덧 아빠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놓칠까 긴장을 풀지 않으며 집중했다.        

‘몇 시간 동안 수술실 안에서 사경을 헤맸던 너희 엄마의 몸이 결국 버티지 못하는 상황까지 치닫고 말았어. 이 아빠는 그 이야길 전해 듣고 너무 힘들었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어. 엄마뿐만이 아니라 너희조차 위험하다는 그 소리에 말이야.’

‘설마…그 때 언니가 죽은…, 거야?’

‘엄마의 몸과 너희에 몸과 이어진 혈관에 이상이 생겼다며 한 아이만 살릴 수 있다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었지. 하지만 네 언니를 살리는 것 보단 너를 살리는 편이 네 엄마에게 덜 부담이 되고, 두 사람 다 살 확률이 크다고 하셨지. 게다가 유에는 뱃속에 있어 숨을 쉬고 있는 거지만, 밖으로 꺼냄과 동시에, 심장이 약해 숨을 거둘 확률이 컸었지. 하지만 네 엄마는 사경을 헤매는 동안에도 두 아이다 살려 달라 애원을 했어. 그래도 난 네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싶진 않았단다. 너희도 소중했지만.’

‘아빠한테는 엄마도 소중했을 테니까. 맞지?’

‘…그래. 이 아빠에겐 엄마도 너무나 소중했어. 그런데… 너희 엄마는 아니었나보더라.’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아빠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는 번쩍하고 고개를 들어 아빠와 눈을 마주쳤다.

‘엄마는… 유에를 잃은 것에 대해 심각한 우울증을 보였어. 네 엄마는 한동안 병원치료를 받아야 될 만큼 심각한 상태까지 이르렀지. 그래도 꾸준히 치료를 받은 덕에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가 있었지만 말이야.’       

‘그럼 왜 내 생일은 없는 거야? 언니가 죽은 날이 내 생일이 되는 거잖아. 8월 8일은 내 생일이 되는 거잖아. 근데 어째서 엄마는 내 생일은 없다고 하는 거야?’

대충 의문점이 다 풀린 가운데 한 가지 풀리지 못한 것이 있었다. 바로 내 생일에 관한 것이었다. 아빠의 마음도, 엄마의 마음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어떠한 아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엄마는 내 생일을 없애려고만 했던 것인지 나는 알고 싶었다.

‘텐코. 작년 8월 8일 있었던 제사를 기억하니?’

‘응. 매년 하잖아. …잠깐만. 설마 그 제사, 할머니 제사가 아니었던 거야?! 언니 제사였던 거야?!’

‘엄마는 아직도 마음에 상처가 깊어. 매 년 제사를 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하고 싶은 거야. 그 날의 모든 일들을. 네가 태어 난 것도, 유에가 죽은 것도. 모두 다.’

‘한 마디로 나를 부정하고 싶은 거네. 언니 대신 산 나를.’

‘엄마를 이해해줘. 훗날 모든 상처가 아물어지면 그 땐 네 엄마도 너를 인정 할 거야.’

훗날 나를 인정해줄 거라는 아빠. 하지만 오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마의 상처는 아물어지지 않았다.

*  *  *

오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축복도 받지 못한 나는, 언제나 언니를 원망하고 엄마를 원망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불행한 이유는 나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서 이 모든 일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니까.

“…하아.”

어느 덧 공원에 다다란 나는 빈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따라 하늘이 맑네.”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며 두 눈을 감았다. 편안한 기분. 집에 있는 동안 느낄 수 없는 기분. 차라리 혼자인 편이 훨씬 내게는 편하고 안정이 되는 듯했다. 그 때 누군가 내 옆에 앉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눈을 뜨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단아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한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그녀 역시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익숙한 느낌과 분위기. 어디선가 본 듯한 기분. 하지만 왠지 모르게 다가가기 어려운…. 마치 우리 엄마의 모습을 보는 듯 한 기분이었다. 다가가기 가장 쉬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언니만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 뭐, 대충 그런 느낌이다, 이 여자.

“산책 나오셨어요?”

“네? 아, 네. 그 쪽도 산책 나오셨나 봐요.”

“바람도 쐴 겸 나왔어요. 그 쪽은 이 좋은 날 왜 여기에 계세요. 남자친구 없어요?”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이 여자, 친숙하게 내게 다가왔다.

“없어요.”

여자의 질문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렇게 예쁘신 분이 남자친구가 없어요?”

“예쁘긴요. 그 쪽이 훨씬 더 예쁘신 걸요. 그 쪽이야 말로 남자친구 없으세요?”

“네. 아, 오늘 같은 날 같이 보낼 남자친구도 없고. 저희 둘 다 신세가 참 말이 아니네요. 그죠?”

“그러게요.”

여자는 ‘아아-’ 하고 자신을 한탄하는 듯했다. 그러다 곧 나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있잖아요.”

“네?”

“사실 저 오늘 생일이거든요.”

“…네?”

“근데 같이 보낼 남자친구도, 친구도, 가족도 없어서요. 저랑 같이 보내주시면 안될까요?”

나는 여자의 말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는 나와 같은 날 생일이라는 것에 놀랐고, 두 번째는 대뜸 생일을 같이 보내달라는 부탁에 놀랐다. 만난 지 며칠이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몇 시간이 된 것도 아니고 30분, 아니 10분도 채 되지 않은 사람에게 같이 보내달라니. 이 어디 흔한 일인가.

“…아, 그게.”

“안 돼요? 생일 날 혼자 이런 곳에서 보낸다는 게 얼마나 슬픈지 아세요? 저 지금 너무 우울하다구요.”

“…저기요.”

그 심정은 당신보다 제가 더 잘 알아요…. 항상 저는 홀로 보냈었으니까.

“저한테 여동생이 있는데, 이번 생일만큼은 저랑 함께 보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약속이 있다고 홀라당 나가버리는 거 있죠? 으으. 너무해.”

여자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말만 줄줄이 늘여 놓았다.

“보내 주실 거죠?”

게다가 환한 미소까지 짓는 여자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기란 힘들었다. 더불어…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이자면, 나 역시 내 생일 날 혼자 보내는 건 지긋지긋 했으니까. 그래서 일까? 여자에게 오늘이 내 생일이라는 것을 밝힌 건.

“사실 저도 오늘 생일이에요.”

“진짜요!?! 와! 우리 인연이다!”

여자는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무엇이 그리 기쁜 것인지 눈웃음을 짓는 모습이 너무나도 예뻐 보였다.

“그럼 우리 서로 생일 축하해줘요. 네? 혼자 지내는 것 보단 낫잖아요.…아. 설마 약속 있으신 거예요?”

방금 전까지 웃음이 가득했던 표정이, 금세 울상으로 변해버렸다. 완전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하고 있었다, 이 여자.

“아니에요. 저도 오늘 혼자 보내야 해요..”

“진짜요!? 잘됐다! 아, 아니지. 잘 된 게 아닌데….”

“하하. 아침 드셨어요? 전 아직이라 배고픈데.”

“그럼 밥부터 먹으러가요. 밥 먹고, 시내도 돌아보고. 케이크도 사고. 서로 선물도 사주고 축하도 해주고.!”

“…축하?”

“네! 서로 축하도 해줘요. 생일 날 아무한테도 축하받지 못한다는 건 너무 슬프잖아요.”

축하-. 이 여자에게 내가 축하를 받는다? 태어나서 축하한다고? … 오늘 처음만난 이 여자한테?

“자 가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서 여자는 내 손을 덥석 잡고 시내로 나를 이끌었다. 분명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고, 낯선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내가 이렇게 들떠있는 것일까. 친구들과 놀러갈 때도 이렇게 들뜬 적은 없었는데. 설마 이 여자한테 축하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기뻐서 그런 걸까? 가족도 아니고, 친구들도 아닌 오늘 처음 본 이 여자한테?

“저기 맛있는데. 우리 저기 가서 먹어요!”

처음 우리 둘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음식점이었다.

라면을 매우 좋아한다는 이 여자. 그래서인지 몰라도 우리가 택한 음식집도 라면집이다. 아침부터 라면이라니. 생각만 해도 속이 쓰리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는다. 항상 홀로 지냈던 생일날 이렇게나마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라면 맛있죠? 제가 라면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근데 제가 몸이 안 좋아서 라면을 많이 먹을 수가 없어요.”

“정말요? 어디가 안 좋으신데요?”

“온 몸이 다요. 굳이 꼽자면 심장정도? 뭐 다른 장기도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서 오늘만큼은 꼭 라면을 먹고 싶었어요.”

‘히히’하고 이가 들어나도록 밝게 웃는 여자. 뭔가 나와는 대조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비슷한 듯 한 모습. 왜일까.

“그런데 저는 여동생이 바람 맞추어서 그렇다지만 그 쪽은 왜 혼자 보내세요?”

“생일을…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요.”

정확하게 말하면 기억해주려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요.

“에. 말도 안 돼. 어떻게 기억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가족들이 있잖아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요.”

“있을 거예요. 분명. 행여 없다고 해도 내가 기억해주면 되죠. 안 그래요? 뭐, 오늘 만난 사이긴 하지만.”

이 여자 또 웃는다. 그런데 이 여자의 웃음이 왜 이렇게 편안하지. 그냥 보면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어? 젓가락 왜 내려놔요? 벌써 다 먹은 거예요? 으. 많이 남았다. 난 빈그릇인데.”

“아침은 원래 조금 먹어서요.”

“그래요? 그럼 많이 먹은 제가 돈 낼게요! 대신 디저트는 그 쪽이 쏘기!”

내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은 채 계산대로 쪼르르- 달려가 계산하고서는 밖에서 어서 나오라고 손을 흔드는 여자. 당황한 나는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 이내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하루만 즐기자. 성년의 날의 생일. 한 번만 즐기자- 언니한테는 미안하지만. 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밖으로 나갔다. 음식점에서 나온 여자와 나는 함께 아이스크림을 물고 시내를 누비기 시작했다. 라면집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보드 카페. 친구들과 자주 가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더 즐겁고 재미있었다. 생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 여자 때문에 그런 것일까.

“…에이쿠 졌다. 너무 잘해요, 그 쪽.”

게임에서 자꾸만 지는 여자는 울상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삐죽 내밀었다. 이게 다 내공이라는 겁니다.

“우리 다음은 어디 갈까요? 노래방? 노래방 갈까요?? 나 노래 잘 불러요! 부모님 닮아서.”

“…저는 노래 잘 못 부르는데. 엄마랑 아빠는 노래를 잘 부르시는데, 이상하게 저만 못 부르더라구요.”

“연습하면 되죠, 연습!”

보드 카페에서 실컷 놀다 나온 우리 둘이 다음 코스로 정한 곳은 노래방이었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나는 노래방 가는 것을 즐겨하지 않기 때문에 거부의사를 표현했지만, 노래방 가기를 너무나 원하는 여자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노래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방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모습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지켜보는 내가 절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하아. 저 이렇게 오래 놀아 본 적 처음이에요. 몸이 좋질 못해서 조금만 놀아도 픽픽 쓰러지고 그랬었는데. 오늘은 하늘이 도와주시나 봐요.”

여자가 노래를 부르다 내게 한 말이었다. 나 역시도 생일 날 이렇게 즐겁게 놀아 본 적은 처음이었다. 항상 혼자, 씁쓸하게, 먼저 세상을 떠난 언니를 떠 올리며 보냈었는데 말이다.

한 참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냈을까. 벌써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몇 시에요?”

“다섯 시 조금 넘었어요.”

“벌써요? 얼마 놀지도 못했는데! 으으. 안되겠다. 그럼 우리 한 시간만 따로 있어요! 각자 주고 싶은 선물 하나씩 사서 아까 그 벤치에서 만나기. 선물은 주고받아야 하잖아요. 정확히 한 시간 뒤에. 어때요?”

여자의 제안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는 그럼 있다 봐요- 라는 말 한마디만을 딸랑 남겨두고서는 유유히 시내 안으로 사라졌다. 나 역시 멍하니 있다가는 제대로 된 선물을 고르지 못할 것 같아, 부랴부랴 근처 악세사리 가게를 돌기 시작했다. 악세사리 가게를 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몇 시간 같이 다니면서 느낀 것이, 여자는 매우 밝고 귀여운 성격의 소유자인 듯 했기 때문이다. 그런 여자에게는 왠지 귀엽고 아기자기한 핀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 핀 얼마예요?”

핀 진열장에서 똑같이 생긴 인형 모양이 두 개 달린 핀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너무나도 앙증맞게 생긴 것이 여자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1000엔입니다, 손님.”

“여기요. 포장해서 주세요.”

“선물하실 건가요?”

“네.”

아르바이트생이 핀을 포장하는 동안, 가게 내에서 파는 카드 중 귀여운 카드 한 장을 골라, 가방에 가지고 다니는 팬 하나를 꺼내어 짧게 생일 축하 편지를 적었다. 뭐, 그래봤자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뿐이지만 말이다.

곧 포장이 끝나고 아르바이트생이 포장된 핀을 봉투에 담아 주었다. 나는 그 봉투 안에 미리 적어두었던 생일 카드를 넣고선 시계를 쳐다보았다.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약 20분이 남은 시각. 천천히 걸어가면 딱 맞추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후. 진정하자.”

공원으로 향하는 내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남에게 처음 주는 선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건지. 애써 가슴을 진정시키려 방금 전보다 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공원에 도착한 나는 벤치에 앉아있을 여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 때 저 멀리 아침에 만났던 그 벤치에 처음 본 모습 그대로 앉아있는 여자가 보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여자의 손에는 예쁜 하트무늬가 그려진 봉투가 들려있었다는 것.

“…어? 왔어요?”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확인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여자가 곧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서는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빨리 왔네요.”

“그런가요? 어? 혹시 그거 제 선물이에요?”

여자는 내 손에 들린 봉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자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봉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네. 여기 선물. …아, 그리고 생일 축하드려요.”

“고마워요! 음, 제 선물은 있다가 집에 갈 때 드릴게요. 저 없을 때 봐야하는 거라서. 전 지금 풀어 봐도 되죠?”

“네, 뭐.”

봉투를 건네받은 여자는, 봉투 안에서 선물을 꺼내어 포장지를 뜯었다. 그리곤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이내 환하게 웃는 것이 아닌가.

“…와!!! 진짜 귀여워요. 나 이런 거 정말 좋아하는데.”

선물이 마음에 든 것인지, 핀을 꼭 들고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는 여자. 괜스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고마워요.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어때요. 저 잘 어울려요?”

여자는 자신의 머리에 핀을 꽂고선 활짝 웃으며 물었다. 내가 안목이 좋은 걸까? 핀은 내 예상대로 여자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네. 너무 잘 어울려요.”

“정말 고마워요. 오늘 정말 잊지 못할 생일이 될 것 같아요. 으. 그런데 벌써 밤이네요. 이제 몇 시간 후면 생일이 끝나겠죠? 아, 아쉬워라.”

“내년이 또 있잖아요, 그 쪽은.”

“에. 그 말투는 뭐예요?”

“…제 말투가 이상했어요?”

“네. 마치 그 쪽은 내년에 생일이 없단 듯이 말하잖아요. 생일은 매년 찾아오는데, 어째서 그 쪽은 그런 말투로, 그런 표정으로 말하는 거예요.”

여자는 뾰로퉁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내게는 오늘이 아마 첫 생일이자 마지막 생일일 테니까. 내년에는 또 다시 언니의 제사상을 보며 지내야 할 테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제 얘기 밖에는 안한 것 같아요. 그 쪽 이야기도 좀 해봐요. 이제 곧 헤어질 텐데. 제가 들어 줄 테니까 어서 해봐요.”

“글쎄요. 딱히 할 말은 없는데.”

처음 본 여자에게 내 사생활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을 만큼 남에게 쉽게 정을 주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여자에게 할 말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한 가지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비밀 이야기라도 털어놔 봐요. 음. 아니다. 그냥 우리 서로 한 가지씩 털어놓기로 할래요?”

또 여자 혼자 막무가내로 결정해버린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까 한가지쯤은 괜찮겠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여자의 행동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놀란 이유는,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여자가 자신의 옷 상의를 올렸기 때문이다.

“여기 보이죠?”

“네? 아…네.

“저는 오른쪽 허리에 흉터가 있어요. 징그럽죠. 왜 생긴 지는 말 안할래요. 하지만 여자의 몸에 이만한 상처가 있다는 것을 말할 땐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해요. 자, 이제는 그 쪽도 말해 봐요.”

…흉터 하나 말해놓고 비밀을 털어놓으라니. 정말 막무가내인 여자다. 하지만 나 역시 흉터 하나 보고 쉽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내 과거를 함축 시켜놓은….

“…어?”

왼쪽 허리의 흉터를 보여주었다.

“저도 징그럽죠? 이유는 말하지 않을래요. 하지만 저 역시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만 알아주세요.”

허탈한 내 기분을 그대로 느껴봐라- 하고 보여준 거였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윽- 당했다는 표정을 지을 것만 같았던 여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내 흉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팠겠다.”

…!!!

여자는 모든 걸 안다는 듯 한 표정으로 내 흉터를 손으로 매만졌다. 아니 보듬는 것 같았다. 흉터뿐만 아니라 내 마음속의 상처까지도.

“힘들었죠. 이 상처 때문에.”

“…네…?”

“그냥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 쪽.”

여자는 내 상처를 보며 자신이 더 아프고 괴롭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여자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여자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하나 생겼다.

“저….”

“네?”

“제가 다른 비밀 하나 말해드릴까요?”

나만 알고 있었던 비밀 한 가지. 내가 스무살 생일날 빌었던 내 소원.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지만, 왠지 이 사람에게는 말해주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스무살의 생일날 빌었던 소원을 이루어지게 해준 이 여자에게.

“원래 생일날 빈 소원은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말하면 안 되는데 그 쪽에게는 말해줄게요. 작년에 제가 빌었던 소원을.”

여자는 내 소원이 궁금했던 것인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내 입술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난 잠시 머뭇머뭇 거리다가 이내 작년에 내가 빌었던 소원을 입 밖으로 꺼내었다.

“내 성년의 날 생일만큼은 축하받게 해주세요.”

“…에. 그게 소원이에요?”

“네. 그런데 저는 소원을 이루었어요. 당신 덕분에.”

“음. 그럼 우리 지금 별보면서 같이 소원 빌까요? 올해의 생일 소원.”

“그래요.”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두 눈을 감고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 처음에 두 눈을 감았을 땐 무엇을 빌까- 하고 잠시 고민했지만 곧 쉽게 결정내릴 수 있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여자를 떠올리자.

“다 빌었어요?”

“네. 그 쪽도 빌었어요?”

“음. 사실 아직요. 아직 결정을 못했어요. 그 쪽 소원 말해주시면 안돼요? 우리 같은 날 생일이니까 미리 알아도 될 것 같은데. 그 쪽 소원 참고해서 저도 빌래요!”

여자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마 아직 소원을 정하지 못해서 그런 듯했다. …뭐 말해준다고 소원이 닳는 것도 아니니까 말해줘도 상관없겠지?

“제 소원은요.”

“네!”

이 여자… 필요 이상으로 기대에 차있다. 이러면 쑥스러워지는데.

“내년에도 당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아. 그게 소원이에요?”

“네. 참고 됐어요?”

“아주 많이요. 음. 그럼 저도 가르쳐드릴게요. 소원.”

여자는 가방 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더니 펜으로 무언가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종이를 접어 나에게 건네 줄 봉투 안에 쏙 넣으며 말했다.

“내가 가면 봐요. 알았죠?”

“에. 지금 보면 안돼요?”

“안돼요. 아, 늦었다! 이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 쪽도 이제 돌아가 봐야죠. 너무 늦었잖아요.”

여자는 벤치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마도 악수를 청하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악수에 응했다. 그녀 때문에 오늘 하루가 즐거웠기 때문에.

“오늘 즐거웠어요.”

“저도요. 덕분에 처음으로 즐거운 생일이었어요.”

“…저두요. 전 이만 가볼게요. 아, 그리고 여기 선물. 꼭 제가 가면 봐야 돼요. 꼭! 꼭!”

싱긋 웃으며 내게 봉투를 건네주는 여자. 그런데 ‘꼭’을 강조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미소 짓고 있는 내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어? 제 목에 뭐 묻었어요?”

그녀의 목에…. 설마 저거. 갑작스레 초조해진 마음에 윗 이빨이 아랫입술을 나도 모르게 물었다.

“…그 목걸이.”

“아, 이 보라색 하트 목걸이요? 엄마가 주신 선물이에요. 예쁘죠? 아아, 저 진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내가 미처 뭐라 말하기도 전에 여자는 내게서 멀어져갔다.

엄마가 주신 선물?… 분명 그녀가 차고 있는 목걸이는 아침 일찍 엄마가 언니에게 줄 선물이라고 사왔던 그 목걸이였다. 그런데 그 목걸이를 어째서 저 여자가 차고 있는 거지?

“…설마.”

‘저한테 여동생이 있는데, 이번 생일만큼은 저랑 함께 보내 줄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약속이 있다고 홀라당 나가버리는 거 있죠? 으으. 너무해.’

생일 날 아침 항상 언니의 제사상을 뒤로 한 채 집 밖으로 나왔던 나.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언니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온 몸이 다요. 굳이 꼽자면 심장정도? 뭐 다른 장기도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서 오늘만큼은 꼭 라면을 먹고 싶었어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언니 대신 나를 살릴 수밖에 없었다던 아빠의 말씀….

‘저는 오른쪽 허리에 흉터가 있어요. 징그럽죠. 왜 생긴 지는 말 안할래요. 하지만 여자의 몸에 이만한 상처가 있다는 것을 말할 땐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해요. 자, 이제는 그 쪽도 말해 봐요.’

이미 숨을 거둔 언니의 몸을 내 몸에서 떼어내기 위에 한 제거 수술. 그로 인해 생긴 내 왼쪽 허리 부근의 흉터…. 만약 언니가 살아있었다면 오른쪽 허리부근에 있었을… 그러고 보니 위치조차 비슷했다. 설마. 아, 아니지? 아니겠지?

“…아. 자, 잠시만요!!!!!!!”

여자는 내 다급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행여 그녀가 가버릴까 큰 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이름!! 이름 좀 가르쳐주세요!!!!”

여자는 내 물음에 빙긋 웃으며 소리쳤다.

“그 종이에 적혀있어요!!!!!!”

…여자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는 그녀가 내게 건네준 봉투 안에 든 종이를 꺼내어 덜덜 떨려오는 손으로 종이를 조심스레 열었다. 나는 종이에 쓰인 그녀의 편지를 보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의 모습을 찾아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난 후였다.

“…언니.”

왜, 왜 몰랐을까. 아무리 이란성 쌍둥이였다지만 느낄 수 있었을 텐데. 우린 쌍둥이니까 서로를 알아 볼 수 있었을 텐데, 왜 언니는 알아봤는데 난 언니를 알아보지 못한 걸까?

“…あなたの お誕生日　おめでとう… .”                         (=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뒤늦게 깨달았을 땐 여자의 편지 위에 남겨진 내 눈물 자국만이 있을 뿐이었다.

‘음. 사실 아직요. 아직 결정을 못했어요. 그 쪽 소원 말해주시면 안돼요? 우리 같은 날 생일이니까 미리 알아도 될 것 같은데. 그 쪽 소원 참고해서 저도 빌래요!’

.

.

‘제 소원은요. 내년에도 당신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아. 그게 소원이에요? 안되는데….’

‘네?’

‘아니에요. 많이 참고 됐어요! 그럼 저도 가르쳐드릴게요. 소원.’

“제 소원은 말이에요.”

‘제 소원은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거예요.

우리 아주 먼 훗날에 만나요.

당신은 아직 이곳에 남아 할 일이 많잖아요.

.

.

.

엄마를… 잘 부탁해….

.

언니는 오늘 너무 즐거웠어.

성년의 날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텐코야.

- 동생을 너무나 사랑하는 언니 나카타 유에로부터-’

그녀가 태어나고, 그녀가 죽었던 8월 8일.

자기로 인해 지금껏 단 한번도 축하받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던 동생의

스무 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나타난 언니와,

끝내 스무 살의 소원을 이룬 동생의 이야기.

The end

30일 재생기간 만료

가사 뮤비

 

주말즐겁게 보내세요. 여전히 감기는 낫지 않고 있습니다.T^T

작가: 웃음보웃졉(-_-_-_-1991@hanmail.net)

[청아란]

아....마지막에 코끝이 확 찡해지네요ㅠ0ㅠ 잘보고갑니다!

[신거성]

아 무서운거나올줄알고 긴장타고있엇는데 ㅜㅜ ㅋㅋㅋㅋㅋ

[쇠퇴증]

.......보면서 계속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앗.다는.....아ㅏㅏㅏㅏ

[류 시은]

아ㅠㅠㅠㅠㅠㅠㅠ너무 슬퍼영ㅠㅠㅠ맨 마지막에 찡...해지는게...ㅠㅠㅠㅠ잘 보고갑니당!

[단세포몬]

아 ........짱이에요 ㅜ_ㅜ 샴쌍둥이인거랑, 그 사람이 언니였다는 건 보면서 짐작했지만, 그래도 역시 짱이네요 .......

[knightㆀ]

눈물이 찔끔 ㅠㅠ 넘 슬퍼염;ㅅ; 잘 읽고 가요~ 진짜 굳

[알콩삐]

악 전 예상도 못하고 잇엇뜸........막 뒤에 솜털이 쭈삣쭈삣 서버렷어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 소름ㅠㅠㅠㅠㅠ

[별빛에너지]

마지막에...완전슬퍼요! ㅠㅠㅠㅠ

[분홍색우산]

역시웃졉님이세요ㅠ.ㅠ완전멋있어...........

[종이비행기♥]

생각치 못한 반전... 설마설마 하고 있었는데.ㅠㅠ 마지막 편지.. 너무 감동이에요.♡

[지민아사랑해]

완전 대박반전이네요..... 눈물찔끔....ㅠㅠ잘보고갑니다

[햇살주의보]

우와진짜 대박이예요ㅠ^ㅠ 완전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