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동문 유튜버
작은 동네 병원이 구독자 11만, ‘양심 산부인과’의 일상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49호(2023.12.15
마포구 동교동 진오비산부인과
휴일에도 병원서 1시간 거리에
마포구 동교동 진오비산부인과는 ‘양심 산부인과’로 불린다. 과잉진료가 없다는 이유지만 유일한 의사인 심상덕 원장의 소신과 철학 덕택이기도 하다. 집 없이 분만실 한쪽에 숙식하며 분만을 돕고, 큰 빚을 지고 경영난에 시달리는데도 수가 높은 제왕절개 대신되도록 자연분만을 권하는 병원. 어려운 병원 살림에 홍보를 위해 시작한 유튜브조차 어딘가 좀 다르다. 임신·출산정보와 함께 무덤덤한 듯 은은한 재치가 밴 병원 식구들의 일상이 나란히 흐르는 채널. 그 묘한 매력에 빠져, 험난한 길 걷는 그를 달리 응원할 길 없어 사람들은 ‘구독’과 ‘좋아요’를 누른다. 작은 동네 병원이 그렇게 11만 구독자를 모았다. 심 동문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채널의 매력은.
“특별히 매력이 따로 있는 것 같진 않다. 의학정보 채널도, 브이로그도 아니고, 그렇다고 먹방도 아니고. 채널을 만들고 유지하던 중 공중파 방송에서 저희 병원과 제가 소개되고, 응원 차원에서 구독해 주신 덕분이다.”
-직원들과 함께하는 콘텐츠가 많은데, 부담스러워하진 않나?
“개인이 아닌 병원 채널이니 소속된 직원 모두 참여해서 함께 가꿔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겠지만, 콘텐츠를 풍부하게 하는 차원에서 참여시키고 있다. 원장의 갑질도 없지 않다ㅎㅎ”
-최근 출산 후 인터뷰가 올라오던데.
“임신과 출산은 임신하지 않고, 출산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매우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내 목소리보다 실제 출산하신 분들이 그 생각을 들려준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새롭게 기획했다.”
-임신·출산에 부정적인 일부 인식이 좀 바뀔까?
“내 개똥철학 중 하나가 ‘세상은 자신이 보는 대로 보인다’는 거다. 여럿이 함께 사는 세상보다 혼자 사는 세상이 좋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보이고, 반대로 생각하면 또 정말 그렇게 보인다. 졸저 ‘낙태와 낙태’에 썼던 말이 있다. ‘상자 안에 깨지기 쉬운 전구가 들어있다 생각하고 망치로 상자를 깨서 확인하면 정말 그런 위험한 물건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그랗고 예쁜 것이 있 어 세상을 밝힌다 생각하고 소중하게 개봉하면 정말 그런 걸 보게 될 것이다’. 결혼과 출산이 삶의 모범 답안이라는 건 아니다. 그저 어느 것을 원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런 세상을 만나게 된 다는 것뿐이다.”
-신생아 10명 중 6명이 제왕절개로 태어난다는데, 진오비산부인과는 아직 자연 분만을 최우선으로 권한다고 들었다.
“산부인과 전공과 개업을 택하면서 추측했던 두 가지가 모두 틀렸다. 첫 번째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산부인과의는 늘 필요할 것이란 생각이다. 틀린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초저출산을 미처 예상 못했다. 두 번째는 자연적인 게 인간이 만들어낸 것보다 좋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자연분만을 돕는다면 비록 큰 병원이 아니라도 경쟁력있을 거란 생각이다. 자연분만은 산모분들께 그리 중요한 게 아니고, 개업가에선 결국 규모가 제일 중요했다. 그렇더라도 내 철학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하는 날까지는 지금처럼 해보는 수밖에 없다.”
-옛 산모들이 개원기념일을 챙기는 병원은 처음 봤다. 좋아해주는 이유가 뭘까?
“산모 혹은 환자분들이 의료인에게 가지는 기본적인 호의와 감사의 마음 덕이다. 다만 출산만 하고 다시 방문하지 않는 곳으로 끝나기보다, 출산하고 나서도 놀러오고 싶은 병원이면 좋겠 다는 희망은 있었다.”
-‘양심 산부인과’란 말에 대한 생각은. “감사한 일이지만, 어떻게 하는 게 양심이고 비양심인진 모르겠다.
-의료란 특수성이 있어 어디까지 과잉이고 적정이며, 부족인지 명확하지 않다. 대부분의 의사는 자신이 생각한 양심에 따라 진료를 한다. 검사 범위, 치료 방법에 대해 의사 간에 호불호가 있을 뿐이다.”
-분만 연락이 올까 봐 쉴 때도 병원과 1시간 거리 이상 외출을 하지 않는다고.
“의사 혼자 출산 산부인과를 운영하다 보니 운신의 범위가 좁다. 멀리 가긴 부담스럽고 두어 달에 한 번 부모님 댁, 처가댁 가는 게 사회생활의 전부다. 원래도 불효자인데, 병원 하면서 좋은 구실까지 생겨 ‘찐 불효자’로 산다. 나쁜 남편, 도움 안 되는 아빠의 삶은 덤이다.”
그래도 채널에는 병원 근처에서 했던 아내와의 주말 데이트, 가족 나들이 영상이 종종 올라온다. 여가 시간에는 직접 산모수첩을 만든다. 손 제본한 책자에 초음파 사진과 설명을 붙여 산모에게 건넨다.
“유튜브는 병원 홍보에도 도움이 되지만, 개인 취미로도 손색없다”고 했다. -유튜브 수익이 병원에 보탬이 되나?
“병원 운영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경제적인 점보다도, 다들 어려우실 텐데 십시일반 도와주려 애쓰시는 분들이 있다는 점이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된다.”
-많이 듣는 말이겠지만, 힘들지 않은가.
“힘들다. 왜 이렇게 힘든 길을 택했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말해줄 것이다. ‘나도 몰랐다’. 거의 다 온 길이고 이제 돌아갈 시간도 힘도 없다. 그러니 남은 길도 그냥 가는 수밖에.”
-은퇴 후엔 다른 삶을 살고 싶을 것 같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여행 유튜버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 내가 해보지 못한 것이니까. 앞으로도 가능성이 매우 낮기도 하니, 그런 상상을 가끔 해 본다.”
심 동문은 매주 수요일 저녁 라이브 의료상담을 연다. 채널 멤버십에 가입해 그를 응원할 수 있다. 서브 채널 ‘까칠 의’에는 지극히 사적인 영상을 올리고 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