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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지점장:장순용
세운지점 : 그때 그시절 편(1부-4부 합본편)
Writer:제갈종한
작성시간:2019.06.19 View:8,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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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세운지점
근무당시 1편
그 당시 세운상가 내,
아래 일층에 있는 세운지점의 점포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즉 한마디로 빈 성냥갑을 납작하게 펴서 세워 놓아둔 것 같은 정말 답답한 일층만의 점포였고
점포는 내부기계와 외부 자동차소음의 공해 소리때문에 머리가 늘 지근지근 아팟고,
더욱이 남녀직원들은 출퇴근은 아래층 점장실을 바로, 통과해야 했기에
매우 전 직원들은 윗분들 눈치를 보면서 출퇴근 하곤 했었다!
장지점님의 인정넘치고 항상 밝은 얼굴이여서
그래도 직원들은 생기있게 근무했으며,
나는 일반 보통계 예금 및 환 단말기를 맡은 대리 5호봉이였다.
내 소속환계 여직원이 야간대학을 다닌다고 자주 일찍 자주 퇴근해서 환계정 잔고를 익일에 맞추기에,
좀 늘 그녀의 업무잔무에 신경이 항상 조바심으로
신경쓰였다!
더우기,
창구 결혼한 여직원은
퇴근후 남편
저녁준비를 한다고
눈치없게
일찍 자리를 비워
퇴근을 해버려서,
나도 담당책임자로서
윗분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고
긴장하며
근무에 임했었다.
노동조합이
일방적으로 조합원들을
편애하는
일방통행으로
아랫 남녀행원
직원들의 근무상태도는
정말 말이 아닌
가관 수준이었고
통솔하기가
정말 힘들었다고
기억한다.
더우기,
옆 제예금계(?) 주임은
1고시를 준비하기에
내놓고
근무시간중에
자리를 비우고
어디론가 사라져서
샷타문이 닫히기전에
들어와서
잔무를 정리하고
또 곧바로
퇴근하곤 한 것도
지켜보았다.
나는
한달밖에 남지 않은
진급 2고시를 위하여
풍전호텔 맞은편
기와집에
한달간 하숙을 하면서
첫 마음으로 책을 잡고,
(영어,논문,경제)
씨름해야만 했었다!
나는 늦게 시작해서
이왕에 버린 몸!
근무나 착실히
근무나 잘 하자면서
정상적으로
자리를 지키면서
윗분들의 퇴근을 확인후
같이 하숙집을 향해서
피곤한 발길을
돌리곤 했었다
한달간,
여유를 두고 공부하기엔
준비생들과의 정보도
역부족했고
광희동 외환계에서
율맥실업 부도처리와
사후관리에
영육신이 녹초가 되었고,
더우기,
기초가 부족했던
경제과목은
나에겐 무리했던
과목이었다.
그러나
영어와 논문은
준비가 없더라도 함~ 해볼 만한 과목이었다.
영어는
평소 실력으로 보고,
논문은
백지위에 다가
내 주장을
서론,본론,결론을
나열하는 방식이기에
백지는
내 놓지 않겠지 하면서
응시했었다!
결국 경제는
백지를 내놓았고
영어와,논문은
내 나름데로
써놓았지만,
영어 한 과목만 건지고
나머지 2과목은
낙방이었다!
(예상대로였다)
실패후,
처음으로 나는
잃었던 내 자신을
발견했었다.
그래서,
몇일후에
장순용지점님께
내 인사상담을
의뢰해서 면담을 가졌고,
몇일후에는
본점8층
인사부 별실에 있는
고령 /인사상담역을
찾아서 나와 관련된
인사에
상담을 신청해서
나누었다!
주로,
나와 관련된
해외점포 발령에 관해서
공개적으로
이유를 달았었다!
잠시,
내 개인적인 공정하지
못한 행내
인사에 대해서
열거해 보기로 하겠다.
과거,
입행시험에서
나는 영어를
동기생113명 중에서
톱(95)점으로
과목 수석을 했고
(첫동기생 인사부
근무했던 김명씨가
확인해줌)
79년에
해외연수를
미RNB Texas
3개월 다녀왔고,
1고시,2고시에
영어선택해서
모두 합격했으며,
세운근무당시는
외환 실무경력이
5년에 육박했으며,
항상
근무중 창구에서
외국인 손님이 내점하면
나는 창구로 나가서
영어로서
서로 막힘없이
대화함으로써
직원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더욱이
세운지점 근무당시에는
연수다녀온 대리로서
해외점포 서열 1번을
근 5년간
지키지 않았든가!
(고참들은 다 차장진급 했거나,이미 해외점포로 발령들을 받아서)
그래서,
나는 5년동안
연수후배들이
외부압력이나.
현찰 돈거래를 통해서
서열을 무시한채
오이꼬시 만
당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나는
매년 나의 인사고충을 인사상담카드에 일일이 기록해서
인사부에 보냈지만 어떤 조치도 받지 못한 이야기등 모든 사항들을 열거/
토를 달면서,
장지잠님,
그리고
본점 인사상담역에
인사고충을 털어 놓고
항의성 /상담했었다..
당시 장지점장님은
말없이 듣고만 계신것으로 기억한다.
낼 모래면
정년이 도래한,
본부 힘없는 이고문
논내 인사상당 역시
읽고 있던 일간지 신문만 들척거리고 있었다!
나는 2고시 실패하고
인사에 대한 원한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왜?
나는 내 밥그릇을
못찾아 먹고 있나?
인사부출신 ,비서실 출신 ,그리고 노조출신 후배들
두다 잘들 미소지으면서
발령을 자랑스러면서 인사하러 다니는 그 모습들에
항상,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도 적금 통장 해약해서 이천만원 현찰박스를
맹그러서 중역진에
쳐발라져!
하면서
나는 한탄 하면서
분노했다!!!!!
힘없는 인사상담실을
그후 3차례나 찾아서
상담하면서
어깨쳐지며
빠져 나와야 했었다!
남들이 힘없는
인사상당실을
노크했던 날
속없다고 비웃겠지만,
나의 자존과 소신은
비밀리에
현찰박스 담아서
인사담당
중역사택을 찾거나,
정부요직자에게
인사청탁을 해서
해외점포로 나가는
직원들은
자기들 목적은
달성했다
치더라고,
종국엔
은행인사가
부정으로 흐르면
인적인 부패로 인해
상업은행이 망하고
만다는 나의 인사소신이
였기에/
정도의 길
인사상담실을
철저하게
노크했다!!!!!!!
그래서,
정상적인 코스를
택해서
인사부 옆에
마련된 쪽방
상담실을
자주(년2회)
찾았었다.,
해외파견 점포에
근무한 금융기관
직원들은
거의 모두가
인사청탁과 더블어
부정한 현찰거래를
했다고 믿으면
틀림이 없다고
확실찬 내 믿음을
강조한다!!!
항상, 그시절에 박봉에 쪼달리며 살았고,
3딸들을 키우면서
남의 집에서
어린애들 헌옷을
얻어서 입히고 사는
우리 사랑하는 부인
카타리나가
늘 안스러워서
79년도에
미국 연수시절에 보았던
서구사회를
해외지점에 발령을
받아서 가족과 함께
보여주고 귀국해 돌아와서
다시
생활의 활력소가 되어서
조국에 돌아와
봉사하며,
다시 살기를
그리도 갈망했고,
원해서
그리도,
나는 해외점포를
갈망했었다!
인사부 상담역의
결과는 오리무중이었고,
또
다시
한참 후배들이
누구 중역에게
부정한 거액 뇌물로
만박을 쳤는지...
여러곳의
해외점포로 발령을 받고
떠나가는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철저하게
"상업은행 썩은 인사행정"
에 피를 토하고
말았었다!
또한,
그당시 후발은행인
한미은행, 신한은행이
생겨났고
주위의 많은동창들/
동기들과 직원들이
이탈 이적해 갔으며/
일대 한국금융계의 혁명적이동이/ 요동치며
도래되기 시작했다..
그후,
몇달후에
나는 외환계로 점내 계이동에 도장을 찍고 세운지점에 근무하던중,
어느날 아침
(오전 9시 10분경)
에 낯선 건장하고,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2명이 나에게
다가와서
살짝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조용히 귓속말로
"남에게 이야기 하지 말고 조용히 따라오라!" 하면서 나를 이끌고
풍전호텔 앞에 대기시켜 놓은 검은색 승용차 뒷편 중간에 나를 밀쳐놓고,
말하자면/ 사전 체포영장도 없이 임의동행 시켜서 납치 해갔었다!!!!
세운지점 직원들은
본인을 누가? 어디로? 무엇때문에 납치해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다음편에 2편이 나갑니다!!
■ 세운지점 2편°°°
풍전호텔 앞에 주차해 놓은 검정색 새단 뒷편 중간에 날 쳐박아 놓고서 양쪽에
수사관들이 앉고서는 어딘엔가 무전기로 무언가 암호로 연락하면서 앞좌석
운전수에게 상업은행 재동지점으로가자고 명령했었다.
나의 성격은 ㅇ형으로 매우 다혈질적인 성격이지만/
초등학교때/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형 밑에서 자라면서
내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해버렸고,
나는 매우 위급한 순간에 처하면/
천성적으로
기막히게 침착해지며/°°°
위기관리 능력이
매우 뛰어난 ㅇ형/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수사관 차안에서
나는 매우 침착해졌으며,
무언가 대수롭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재동지점이면 광희동지점의 외환 이차장이 새로부임한/ 점포임을 순간적으로 인지해서,
무언가/ 광희동 외환계 시절에 일어난 사건일거라고 추측만했다.
그리고, 차속에서는 모두 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재동지점에 거의 가까이 도착했을 때 나는 수사관에게 불뜩 말하기를,
“외환계 인증사건이면 이차장은 관련이 없습니다.
인증건은 대리 전결 결제사항입니다”
하면서 나는 먼저 선수를 치면서, 나즈막하게 모기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그래?”
하면서 수사관은 다시 운전수에게
” 마지막으로 상업은행 국제영업부로 갑시다” 하면서 재촉을 했었다.
국제영업부면 옛날 광희동지점 인증계 강주임이 근무한 곳이였다!!!
대검수사관차는 본점 국제영업부 현관 앞에 차를 정차시키고,
운전수는 나를 감시하고 있었고,
다른 2명의 수사관은 강주임을 임의동행/체포하러 떠났다.
대기중에 운전수는 나에게 “어디 사느냐? 가족은 몇 명이냐? “ 물으면서
우리 공무원은 공적사고를 치면 퇴직금 한푼도 못받고 면직인데…은행원은 어떤가?” 하면서,
비아냥조로/ 나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는 적당히 어물거리면서
마치 죄인이 된 입장에서 그의 질문에 대답했었다.
곧 이어 수사관들은,
강주임을 납치해오면서/
새단 대검/검정색차는 시청 앞에 있는 대검찰청 지하실을 통과해서,
우리 일행은 엘리베이터
태우고,
13층 독방에 따로 강주임과 나를 분리해서 집어 넣고,
그들은 몇분간 우리를 대기시켜 놓았다.
곰곰히 생각해도 광희동 외환계 시절에
내가 부정으로 상공부 위임사항인 인증업무를 은행장 도장을 도용하거나
사용해서 결제한 적이 결코 없었는데/
왠일로, 대검찰청 경제범 특별수사취조방에 내가 왔단 말인가~!!!
분명이/ 이곳 취조실로 불러온 것은 무언가 사건이 발행해서 왔는데..
도무지 난 잘못 처리한 기억이 없는데..
만약에/ 창구강주임이 업자와 결탁해서
수입인증을 봐주고 결제 올려서
내가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결제하지도 안했을까? 하면서
불안하고, 초조해 시작했다.
취조실은 약 10평 정도의 작은 방에
싱글 침대 한 개와 자그만 책상 한 개와 의자 2개
그리고 화장실이 달린 작은 방이였다.
십여분 후에
한 명의 수사관이 종이와 볼펜을 들고와서
나를 의자에 앉치고서는 조서를 꾸미기 시작하면서,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을 물으면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다시 질문하기를
“은행원들은 안됀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면 한건당 얼마씩 받어 챙기면서
도장을 찍어준다고 하는데..귀하는 얼마씩 받어 쳐먹었냐?" 고 하면서
나를 째려보면서 대답해보라고 욱박질렀다!!!!!
나는 “예?” 하면서 대답하니…” 얼마씩 받어쳐먹냐 말이다!” 하면서
책상을 치면서, 눈을 부라렸다! 나는 겁에 질렸지만
대담하게 말했다.”
사실은, 근무중에 업자들이 안됀 것을 결재해 달라고 가끔씩 요구한다..
그럴때 마다
"나는
내 퇴직금이
현재 3천만원이다!
현찰 3천만원 당장 가져와바! 그럼 한번 생각해 보겠다."
이렇게 나는 항상 말한다..그러면 그 업자는 망서리다 그냥 포기하고 돌아간다!”
이렇게 나는 당당하게 수사관한테 정중히 대답을 올렸다.
내 말을 듣고는 그 수사관은 침대 위에 벌렁 누우면서 말하기를
“어찌..성이 제갈/희귀성이드니..오늘 골패는 놈 만났네 ..
오늘도 집에 못 들어가고 야근한다고 집에 마누라한테 전화해야겠네!” 하면서
나에게 “이 방이 어떤 방인줄 알아?” 하면서 다시 묻기에 나는“모릅니다!” 대답하니..
"대한민국경제범들 다루는 최특급 호텔방이다"..
그간, 이 방에 수뢰한 은행행장들도 많이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하면서
계속적으로 내게 얼마쳐 먹고 안됀 행장/수입인증도장 찍어주었냐고? 계속적으로 다구치니,
참말로 이건 악몽이였다!
나도 계속적으로
같은 대답을 하니 반복하니,
정말 답답하고
귀신 환장된 노릇이였다!!
무슨 건으로 내가 소환되어 왔는지…
본건을 말하지 않코
유도심문을 계속하면서
본건이 아니면
내가 다른 구속 당할
다른건수을
스스로 자백하게끔
만들어서
수감시키려고하는
수사관의 의도임을
눈치채지 않을수 없었다!
어느덧, 정오가 되어,
점심시간이 되어서
그 수사관은 깍뚜기 김치와 설렁탕을 시켜서
취조실로, 배달이 왔는데…
나는 입이 타고,
식욕도 없었고
국 한모금 입에 대고
한숫깔 입어 넣었으나..
구토할려고 해서
숫가락을 놓고
물 한컵으로
점심을 때웠는데...
그 수사관은
옆자리에서 정말 맛있게
잘
설렁탕을 점심으로
즐기며
먹고 있었다.
■ 세운지점 3부°°°°°
점심시간이 끝나고,
두번째 수사관으로부터
다시
심문을 받기시작했다!
젊은 수사관은 은행일반재 수입업무에 대해서
약간씩 질문을 던졌으며,
주로 s통상에 대해서
주로 질문을 했었다.
아!
s통상의 인증에 문제가
붙었구나!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 쉬었다.
중구 북창동에서 수입대행을 하는 업체로서
주거래 조흥은행과
상은 광희동과는
복수거래를
하면서
항상 인증에 은행에서
약간 까다롭게
샘플이나 카타로그를 요구
하면 그 익일날은
거래를 조흥으로
옮겨 버려서
점장및 차장이 다시
업체 방문해서
머리 숙이고,
통사정해서
다시 거래를 유치했던
악명 높았던
수입대행업체였던
성우통상!!!
근무중에
늘
수입실적이 절실하지만,
그래도,
인증 주임에게 항상 그래도 “안됀것은 안된다! "
목에 칼이들와도
상공부 위임인증에는
원칙적/이여야하고,
변칙적인
불법결제는 안됀다"
하면서
소신껏 적법처리후
결제 올리라
힘주어
업무지시를
하곤 했었다.
인증업무는 대리전결사항업무로서 차장이나,
점장은 아무/
권한과 책임이 없어서
소신껏 결제를 하지 않으면 안된 최고 고된 업무였다!
광희동지점의 외환수입실적의 거의 80%는 s통상의 일반재 수입에,
의존해서
정말 실적때문에
수입인증업무가
그당시
어렵게 진행됐었다!
나는
2차수사관에게 솔직하게,
인증업무는
어떤 변칙이나
수입기별공고를
자유자재로
유권해서
결제를
절대 하지 않았고,
원칙을 사수하면서
결제 했다”고
힘주어서 말했다.
경제통 수사관은
나의 애처러운
말을 듣고는
쓴 웃을을 지으면서
3장의 인증서 사본을
책상위에 올려 놓으면서
“ 그래!
귀하는 항상 소신소신하면서
정상적인 업무처리를
잘 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왜?
결제도장을 찍었는가?”
하면서 힐난하며
소리질러, 비난을 했었다.
us$ 2백만불상당의 일반재 동물(백여우) 수입을
카나다로 부터
3차례 광희동에서 일반재 수입인증을 받아서
수입통관이 완료된 인증서 사본이었다.
수사관이 가져온
기별공고를 확인하니..
도지사 허가를
미리 받고 첨부해서
인증을 해주어야 하는데
3건 다 모두
도시사 허가서가 없이
은행에서
인증을 해주어
결제해 버렸던 것이었다.
수사관은
뇌물을 얼마나 먹고 이런 짓을 했냐고 다시 돼 물었고..
나는
정말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현기증이 일어나서
어지러워 지기시작다!
내일 조간신문에
내 이름이 분명이
나올 것이고
바로
내일 구속되겠지?
그럼 내 인생 은
어찌 될 것인가!
무척 그순간이
아직도
나는 잊을수가 없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바로 수사관께
“ 이건 분명히
잘못된 결제입니다.
도지사 허가서를
먼저 받아서
인증서에 첨부해서
수입 인증을
은행에서 해
주었어야 합니다."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사죄하면서 말하길,
"그런데,
저는 절대 뇌물먹고 이런 결제를
양심을 선언하고 하지 않았습니다! “
하고 대답해도,
대검 수사관은 나를 믿어주지 않했다!!!
두번째 경제통수사관은,
나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인도했는데..
다른 취조방에는 성우통상의 수입부장, 실수요자,
그리고 은행강주임이 이미
대기 있었으면서
그수사관은,
밖으로 나가면서
“ 조용히 말하지 말고
잠시 대기해라!"
하면서,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그가 나가자마자..
나는 큰소리로 이부장에게
“이봐요! 이부장! 이것이 먼꼴입니까?
2년전 수입건을 가지고
내가 멀 잘못해서 이곳에 와서 곤욕을 당해야 합니까?
광희동 그 시절에 내가 항상 당신에게 정확이 인증을 낼려고
샘플이나 카타로그를요구하면 듣는척도 하지 않고
협조를 해주지 않더니…
이런꼴을 만들려고 했나요?” 하면서
소리를 크게
고함을 질러 버렸다!
왜냐면,
분명히 도청장치가
실내에 설치 되었다고
나는 믿었었다!
몇초후,
수사관이 방으로
입장하더니..
누가말하지 말라닌깐
소리를 질렀냐면서
신경질을 부렀었다!
나는 다시 독방으로
끌려가서,
3번째 수사관으로부터 책상에 앉아서
마지막으로 조서를 꾸밀려고 하는데
정말 기가 막히고
눈물이 앞을 가리고
이제 은행생활도 마지막
될 거고 가족과 떨어져
수감생활에 식은땀이
범벅이 됐다!
일생동안/ 파출소 내부구경 한번 안하고 살았는데..
구속당해서
감옥을 갈 생각을 하니
정말 미칠지경이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면서
그래도 침착히..마음의 안정을 유지시키면서,
마지막으로,
수사관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했었다.
“수사관님 아시다시피..
본사본 카피 인증서는 3장 모두다 은행장 도장만
찍혀있습니다..
지점보관용 인증서
사본을 보며는
책임사 사인이
찍혀있습니다.
은행지점의 보관용사본을
가져와서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서를 쓰기전에
그것을 좀 보여주십시요"
하면서
통사정하면서
애걸했었다.
3째 수사관의 협조로
그가 광희동지점에
바로 전화해서
광희동에 20분이내로
은행보관용 인증서가
바로/ 배달도착되었다!
결제 사인도장을
확인해보니
아~!!!
모두 내 도장이아니고
옆자석 J대리 결제 도장이 아닌가~!!!!
아니 이럴수가~
오!하느님
감사하나이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당시
담당인증책임자였던
J대리를첨부터
소환했어야 했는데…
나를~!!!
모든 상황을 알게된
수사관을 미안하다고
연발하면서
나를 데리고
잠시 강주임을
만나보게 해놓고
바로 대검찰청/일층으로
데리고 내려가
대검특별수사본부
총책검사
앞으로
데리고 갔는데
해당 검사는
일어나서
날 향해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면서
“매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윗쪽에서(청와대)에서 특별명령이 떨어져서
부득이하게 영장없이
엉뚱한 사람을 심문해서
무어라 사죄의
말을 올려야
할지모르겠습니다..”
하면서
연발 사과인사를
정중히 했었다!
구속 일보전에
자유를 찾아서
나는
시청앞에서
지하철철을 타고
세운지점에 도착하니
시간은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즉시,
도착하자마자
장점장께
사실 보고를 올리고
책상위에
올라온 밀린
서류결제를
시작했었다!
사건 개요는
실수요자회사의 사장과
전무가 짜고
도지사 허가없이
백여우를 내수해서
거액의 이익이 생겼는데
서로 자기들의 많은 몫을 요구하다가 싸움이 붙어서
전무가 청와대에 진정하면서 투서를 놓고서
사건의 발단이 되었고
대검에 불러간 J대리는
단순히 업무착오로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조서를 써주고
수뢰받았던 증거가 없고
업무착오로 밝혀져,
장대리도
구속없이
한시간후에
대검을 빠져나왔던
악몽의 사건이었다!!!
그날 저녁에,
나는 직원들로부터
행장들이 들락거리는
초호화호텔을 구경해서
내가 부럽다고
진한, 농담을 던져서
난 한바탕
크게 대소했다!
■ 세운지점 마지막편
장지점장님의 적극적인 섭외에 힘 입어서
외환환전(시티은행 여행자수표판매) 목표액 초과달성으로
외환대리 2명중 한명이 동남아 포상?보내라고 국제부 기획계의 공문에
나는 지점장님의 배려로
행장명의 표창장 수여 및 여행 행운을 얻어냈었다.
입행후 14년만에 처음 받아보는 상장과 동남아지역 여행에
장지점님께 마음속 깊이 감사를 드렸으며...
아마...내가 몇달전에 인사상담 고충을 말없이 듣고만 계셨는데
장점장님께서 부하직원의 고충을 해결 해주지 못했던
보상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통상적으로,
점포장들은 부하직원의 상담고충을 형식적이고 사무적으로 처리했으나,
장지점님은 부하직원들을 통솔하시고 사랑하시는 애정이
평소 남 달랐고,
내가 상담 당시에도 친형님처럼 애석해 하시는 눈빛이 역력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인품에 늘 존경을 표했으며,
상업은행을 향후 분부에서
리드 하시는 경영진이 분명이 될수 있다고
마음 속으로 빌어 주기도 했었었다!
우리 4명 대리들(이름을 기억을 못해서 죄송함)은
대만 타이페이를 향해서 김포공항을 이룩 했으며,
타이페이공항 도착하자 마자 입국수속중에
너무나 찐한 향기냄새가 나서 질식할 뻔했으며
일행중 한명의 친구가 타이페이대학에 유학중 이여서
공항에 마중도 나와서 몇일간의 여행중에 도움도 많이 받았고
그 집에 초대받아서 야산에서 덧으로 잡은 맷돼지 고기도
저녁식사로 진수성찬으로 맛있게 먹었던 대접도 받았었다.
대만야시장 견학,이발청에서 머리도 세탁하고,
타이페이 중심부 방문, 장개석 방문관 견학,
그리고 변두리 해변 등에서 많은 사진도 찍고 했었다.
타이페이를 떠나는 날 ..
나는 기념품상에서 울 카타리나 산호목거리를 하나 구입해서
가방에 넣고 함께 같이 여행 오지 못함을 아쉬워했었다.
밤비행기로 저녁 9시경에 홍콩에 도착하여,
예약된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넘 다들 피곤 해서 잠도 오지 않코 해서,
옆방 2분께 홍콩 야경 길거리를 걷자고 하고서 밤11시경에
호텔을 나오면서.."서로 길을 잃을지 모르니.. 잘 기억하자"고
하면서 밤거리를 걷던중 어는 지하 Pub 를 발견하고
한잔 마시러 들어갔으나,,너무 손님들이 없어서 불안해서,
곧 나와서 다른 곳을 찾아서 걷기시작했다.
마침내
좀 손님이 붐비는 지하술집을 찾아서 들어가서
의자에 앉자 마자 여종원4명이 우리 곁으로 기냥 앉더니
요구도 하지 하지 않은 양주를 주문해서
4잔을 자기들 앞 잔에 따르더니..기냥 연거퍼 마셔 버렸다!
우리는 캔 맥주를 4개 주문하면서
나는 "너희들이 계산 허지? 너그들이 마신것?" 하면서 말했다!
좀..분위기가 쳐지더니..
그 녀자들은 옷을 벗기 시작해서
우리는 "그만하라" 하면서 분위기가 이상해서..
계산서를 가져오라고 했드니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
맥주 4갠에...이런???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나로서는
침착성을 유지하면서..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
중국사람은 대국성 기질! 한국사람은 성질이 급한 기질!"
고로,
우리가 급하고 조급 해지면,,,당한다!!!
더...대국적으로 대처해야 이곳을 빠져 나간다!
당황한 일행들을 나는 다둑 거리면서...
근 한시간 그곳에 대기하면서 위협당하고 협박 당하면서...
견디면서..다행이 내가 강하게 경찰을 요구해서
운좋게 자기 담당경찰(돈먹고 봐준)이 그날 비번 이여서
우리는 몇푼의 술값을 주고 빠져나왔었다!
우리는 바가지 쓰지 않고 운좋게 빠져나왔었다!
우리는 홍콩의 밤거리 술집을 정보도 넘 모르고 덤볐었다!
다음날 오우션파크견학,,시내관광..쇼핑을 즐기면서
유한공사 상업은행 사장이신 나사장을 낮에 뵈옵고
나사장이 저녁에 사택으로 초대해서 다과를 마시면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
"당신은 왜? 그래? 능력도 있으면서 가족과 함께 해외근무 할 만도 한데??"
하시면서 나를 바라 보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대꾸하지 안했었다! "
이먼 외국에 와서 까지 내속을 심히 극는구나!"
하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다음 여행지 태국 방콕!! 방콕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공항에서
태국남자 가이드를 만나서 4박5일간의 가이드 금액을 흥정하고
그를 채용하고 늘 태국태생 가이드와 여행을 함께 했다.
(여행중에 우리는 단지 비행기표,호텔 만 한국서 부핑했지..
다른 사항들은 현지에서 해결 해야만 했었다)
방콕호텔에 체크인하고 웨이터가 가방을 들고 방에 입장후
젊은여자가
붉은색 장미꽃 한송이를 눈처럼 하얀 침대 시트위에 놓고 나갔는데...
정말!
그순간 백설 눈위에서 요염스럽게 솟아난 붉은색 장미를 보니...
순간적으로 생화장미가 날 유혹한 감정에 나는 빠지고!!
정말!
방꼭은 환락의 도시란 것을 나중에 알았었다!
다음날,..
프로팅 마켓,로우즈가든,실버탬플,시내쇼핑몰,
저녁때는 라이브쇼도 단체관광객들하고 정말 대단한 구경을 마치고.
다음날 우리는 방콕에서 멀리 떨어진
"파타이어"에서 일박하면서
파타이어 해변의 저녁노을에 매우 심취하면서
나는
그간 외환계의 율실업과 대검찰청 사건에 당해던
피로를 씻고, 순간들을 잃으면서 정신과 육체적인 휴식을 취했었다!
다음 도착지 싱가폴~
공항택시로 호텔까지 오면서
질서정연하고 깨끗한 거리모습에 감탄을 연발했으며,
"거리에 침이나 오물을 버리면 벌금"이 과하다는 표말에 눈길이 갔으며,
화창한 기온으로 인해서 곳곳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솟아난 나무와 식물,꽃들은 과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같이 동숙한 이대리에게 이틀간의 싱가폴 방문을 포기하고
대신 일정에 없는 필리핀 마닐라로 대신 가는것이 어떠냐고 넌지시 물으니
그도 매우 흥미가 있어서 옆방에 가서 2분께 의견을 묻으니..
자기들은 일정대로 여행한다고 하기에
그들 의사를 존중하고 나와 이대리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서 마닐라행 내일 표를 현찰주고 구입하고
바로 호텔로 돌아왔었다.
저녁 마친후에,
호텔 옆에 있는 쇼핑몰에서 나는 테니스 라켓을 구입하고
미화 백불을 지불했으나 거름돈을 안주기에
여종업원에게 물었으나 미화오십불을 받았다고 우기기에..
넘 황당하고 어쩌구니가 없기에..
매니져를 불러서 그 녀자의 현금출납기를 전부 뒤지고 해도
어디에다가 감추었는지...
30여분 승강이를 해도 해결 기미가 보이질 않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었다!
나의 실책은 현금으로 물건값 지불할 때는
면전에서 지폐를 보이면서
"One hundred dollar note!" 하면서 지폐를 펴면서
말하며 주는 행위를 하지 않은 실책으로 여기면서...
새로산 라켓을 들고 상점을 허탈하게 나왔었다!
어서 싱가폴을 떠나고 싶은 심경이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찍 일어나서,
남은 일행들하고 일본토코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우리는 공항택시에 몸을 실고
캐디 퍼시픽 국제선을 타고 필리핀 마닐라시에 도착했다.
3박4일간의 마닐라시내 관광! 5 star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
그날이 일요일날 이기에 일요미사를 보기위해서
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 운전수에게 가장 가까운 성당을 물어서 가는 중간에
기사왈" 여행객인가 본데..
저녁에..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는 크럽에서 한잔 하지 않겠느냐" 고 유혹해서
나는 즉석에 "No" 라고 거절했다.
필리핀은 동양에서 유일하게 가톨릭국가 기에...
같은 형제국가로서 나는 이곳을 택했었다!
그러나..먹고 살기위해서
남루한 신자 기사가 이런직을 하다니!!!
그때 마르코스정부 말기였기에 마닐라 시내는
대모 등으로 혼잡했고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던
"아키노"씨가 공항에서 살해후 얼마 되지 않아서
거리는 군중들에 의해서
불타버린 흔적들이 여기 저기에서 보였다!
서민들 사는 동네는 배수가 전혀 되지 않는
시궁창 냄새와 파리때들이 우굴거렸고,
거리에는 남루한 다 떨어진 샷스를 입은 어린해들이
꽃을 팔기위해서 우리들의 가이드차가 멈추면
어디에서 나온지 몇명씩 손을 벌리고 있었다.
가이드기사가 우리를 데리고 갔던 곳은 서민동네와 또..
죽은자 들이 묻어있는 부유층 동네의 사당(묘)였다..
죽은 자는 죽어서도 십여평의 호화스런 집에서 거쳐하는데
무덤) 살아있는 서민들은 저리도 몸서리치게 더러운 집에서
생존하는 것을 보니...정말...하느님께서 살아계실까?
하면서 나는 매우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던 현장이었다!
더우기 호털에서 아침,점심,저녁 식사중에 창너머로
식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배고픔에 절망하는 어린애들을 보니..
정말...밥이 넘어가지도 않했었다!
3박4일간 좋은 음식에 저녁시간에 11시간 넘도록
호텔나이트 크럽에서 마시며,
실내 풀장이용하고 체크아웃하면서 놀랬던 것은
얼마나 가격이 저렴했던가!
이대리와 나는 서로 나누어 계산 하면서
" 그저 거저네" 하면서 소리쳤다.
마지막 코스였던, 일본 동경에 도착하니
싱가폴에서 헤어졌던 일행은
우리보다하루 먼저 도착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동경점장은 우리를 보더니걱정스런 눈빛으로,
하마트면 본부에 미귀로 보고할려 했다고 나무랐다!
매우 죄송스럽다고 나는 말하고..
바로..동경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던 민선배께서
점심을 대접한다고 일식집으로 데리고 가서 식사중에~
"너는 왜? 남들은 잘 들 나오는데 무엇을 부족해서 못 나와?"
하면서 묻기에..씹던 음식을 넘기고 물을 한 모금 마신후에
"선배님! 다 아시겠지만,
저는 이곳직원들처럼 비정상적으로 해외점포에 나오기도 싫고
정상적인 방법으로나오고 싶어서 기둘리고 있습니다.
누가 돈 천만원이 없어서 그런줄 아세여?
누가 빽이 없어서 그런줄 아세여?"
하면서 쑈아붙였다.
민선배는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채
점심을 다 끝내시더니"가자!" 하기에 나도 따라 나섰다..
아!
내 아픈 심정을 두번째 극는구나!
나사장도 그러더니..
또..
민선배까지!
오후에 토쿄에서 밤 신강열차를 타고
우리 4명은 마지막 코스인 쿄토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자 마자
나는 내 미국 텍사스에서 연수를 3개월 같이 받았던
일본 신용은행과장 "이나카끼"에게 바로 집에 전화를 해서 방가움을 표시했다.
그는 통화중에 내일 아침에 내가 있는 호텔로 아침에 들려서
하루 결근하고우리를 쿄토관광을 시켜준다고 하기에 넘 고맙다고 말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마치고
9시에 약속한 시간에 로비에서 일행들하고대기하고 있는데
5분 10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는가!
이미 호텔관광차는 떠나 버렸고,...
참 !
이를 어째! 일행들은 여행잡쳤다고 야단들이고!!!
음...
나는 일행들보고 꼭! 그는 올 것이다!
그는 올것이다!하고 했지만
속으로 은근히 걱정은 헤어진지 5년째고 ..
서로의 우정을 3개월간미국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사귀었지만...
혹시? 하면서 나도 불안해 지기시작했다..
15분이 넘어 가고 있을 때..
그는.."미소 지으면서 나타났다"
아침 러쉬아워여서 차가 밀려서 매우 미안하다고 하면서!!!
나는 방가워서 그와 악수를 나누면서 등어리를 두를면서
" 기안해! 이나까끼!"하면서 달랬다..
그는 쿄토태생이여서...
구석 구석을 그의 차로 우리를 태우고 다니면서
구경도 시켜주고...점심도 사주고...
또...마지막으로쿄토에서 오사카까지
근 편도3시간 거리를 직접 자기 차로 몰아서
우리를 오사카공항까지 태워주고 해서
다시 교토로 돌아갔던 님!..
나는..넘...그에게 신세를 많이 졌었다..
그와는 90년도 뉴질랜드 이민 와서도서로 서신왕래가 있었지만...
근 10년전부터는 소식이 불통이 되고 말았었다!
세운지점에서 귀국 보고를 하면서
간단한 선물을 장지점님께 전해 드리고
다시 나는 외환계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광희동의 신규업체를 유치했던율실업에게 당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절대로
신규업체 유치에는 건의 올리지않았으며,
기존업체 관리에 만 열심했었다!
그간 기달렸던,
신한은행의 철절한 외부압력 인사청탁 거절로 인하여
나는 근 6개월 기달리다가
신한은행 창립맴버의 인사부차장 학교동기의 우정어린 충고도 있고 해서
이력서를 반류받고 근무중 하던중 다시...
나는....
거미줄에 걸린 한마리 파리가 되어서...
거미가 물어서 옮겨놓은 광화문지점 씹급(?)으로 부임해야 만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여서 안갈수도 없고!!
발령부임처는 자꾸만 강동구 풍납동에서 멀어지기만 하고!!
인사부여!
왜?
날 끝까지 버리나이까?
첫댓글 장순용 행우님!
현직때
인간적인 정을
베풀어주신
은혜를 아직 잊지 않고
가슴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자손 번영을 이국에서
빌겠습니다/건강하십시요!
그시절을
회상하면
아직도
이 가슴
메이는
답답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