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發 위기 차단… 연초 ‘건설 구조조정’ 발표
정부, ‘PF 부실’ 대책 내놓기로
“금융위기이후 최대규모 구조조정”
태영건설, PF대출 채무 감당못해
이르면 오늘 워크아웃 신청할 듯
공사 멈춘 태영 건설현장 27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2가 공사 현장이 멈춰 서 있다. 성수동에서도 유동 인구가 많은 ‘메인 스트리트’ 격인 연무장길 인근에 위치해 개발 수요가 높은 땅으로, 태영건설은 시공사로 참여해 오피스 빌딩을 지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28일 48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만기가 다가오며 좌초 위기를 맞았다. 태영건설은 28일 시행사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PF 채무를 인수해 모두 갚아야 하는 ‘책임 준공’ 의무를 지고 있다. 이한결 기자
도급순위 16위 태영건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갚지 못해 이르면 28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PF 부실 우려와 공사비 급등으로 주요 건설사 55곳 중 17곳의 평균 부채비율이 300%를 넘는 등 건설사들이 재무구조 악화에 직면해 건설업계 위기가 경제 전반에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당국도 이르면 내년 초 건설사 구조조정 방안 등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이달까지 태영건설이 갚아야 하는 대출 규모는 3956억 원에 이른다. 당장 28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건설 현장에서 480억 원 규모 PF 대출이 만기를 맞는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엔 우발채무(미래에 발생할 채무) 3조6027억 원의 만기가 도래한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경우 협력업체와 건설업계뿐 아니라 금융업계까지 파장이 커질 전망이다.
이날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르면 연초에 건설업 구조조정 방안을 포함한 PF 관련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누적된 고금리 충격으로 내년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십수 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일부 건설사는 신속히 구조조정하고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전날 회의를 열고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건설은 이날 공시에서 “경영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현재 구체적으로 확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이달 중순까지만 해도 워크아웃 가능성을 강력히 부인하던 것에서 달라진 기류다.
건설사 재무구조 악화는 태영건설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날 동아일보가 도급순위 상위 300개 건설사 중 올해 3분기(7∼9월) 보고서를 제출한 55곳의 재무구조를 분석한 결과 부채비율 200% 이상인 기업은 17곳으로 이들 기업의 부채비율은 평균 323.3%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후방 연쇄 효과가 큰 건설업계가 흔들리면 실물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건설업계 도미노 도산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시장 정상화를 위한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했다.
‘PF 위기’ 태영건설, 오늘 480억 만기… 내년까지 3.6조 줄줄이
부동산 침체-금리인상에 치명타
부채비율 478%, 주요 건설사 최고
태영건설 장기 신용등급 전망 하향
워크아웃 채권단 동의 등 첩첩산중
27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태영건설 사옥의 모습. 태영건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어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 신청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한결 기자
시공능력평가 순위 16위 태영건설이 이르면 이번 주 주채권단에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할 것으로 보임에 따라 건설업계를 넘어 금융권 전반에 작지 않은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 시장에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손실이 커지면서 중소형 건설사나 증권사들의 재무 부담이 가중된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태영건설마저 실제 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하면 금융권을 중심으로 PF 부실 우려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 당장 28일부터 줄줄이 대출 만기
태영건설은 지난해 4분기(10∼12월)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부동산 PF 시장 경색 이후 지속적으로 위기 기업으로 꼽혔다. 태영건설이 보증을 제공한 사업장에서 PF 차입금 차환 대응 이슈가 불거졌고 이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재무 부담이 커진 것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이달 만기가 돌아오는 태영건설의 대출 규모는 3956억 원이다. 또 내년까지 총 3조6027억 원의 우발채무 만기가 돌아온다. 특히 당장 28일에 서울 성동구 성수동 오피스2 개발 사업에 480억 원 규모의 PF 대출 만기를 맞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영건설의 이번 리스크는 주택시장 호황기인 2019년 이후 공격적으로 수주한 개발사업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후 금리 인상에 따른 조달 비용 증가, 자재값 인상 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사업 불확실성이 커졌고 미착공한 개발사업이 태영건설을 옥죄기 시작했다. 이자 비용이 발생하고 있지만 공사비 증가로 착공도 어려워져 진퇴양난에 빠졌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태영건설의 3분기 말 기준 순차입금은 1조9300억 원, 부채비율은 478.7%에 이른다”며 “시공능력평가 35위 내 주요 대형·중견 건설사를 통틀어 부채 비율이 가장 높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6월 중순부터 태영건설과 관련된 동향을 꾸준히 챙겨 왔다”며 “그룹 차원에서 내년까지 버티기 어렵다고 보고 최후의 결정을 하려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27일 태영건설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하향검토 감시 대상’으로 낮춘다고 밝혔다.
● 채권단 워크아웃 동의까진 ‘첩첩산중’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따라 2주간 채무가 유예된다. 부실기업의 신속한 정상화를 지원하는 기촉법은 올해 10월 일몰됐지만 이달 8일 재입법돼 26일부터 재시행됐다. 현재 금융위원회가 워크아웃의 세부 절차를 구체화하는 시행령안을 정비 중이며, 입법예고 등을 거쳐 내년 1월 9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아직 세부 규칙을 마련하는 중이지만 상위법의 효력이 있는 만큼, 기업의 워크아웃 신청 자체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워크아웃이 채권단의 75% 이상이 동의해야 개시된다는 점이다. 금융권에서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을 채권단이 받아들일지에 대해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PF 대주단 협약이 실제로 잘 가동되지 않는 것도 이해관계자들마다 상반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태영건설과 채권단이 막판까지 기 싸움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현실화될 경우 PF 위기는 건설업계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금융권 PF 대출 잔액은 134조3000억 원으로 작년 말 대비 4조 원 증가했다.
태영건설은 차입, 지분 매각 등으로 급한 불을 끄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지주사인 TY홀딩스로부터 4000억 원을 차입했으며 본사 사옥 담보대출(1900억 원), 물류회사 태영인더스트리 매각(2400억 원), 화력발전소 포천파워 지분 보통주 전량 매각(264억6000만 원) 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초에는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경영에 복귀하기도 했다. 지주사인 TY홀딩스는 SBS미디어넷 지분 중 70%를 담보로 자금 760억 원을 차입했다. 최악의 상황에는 SBS 지분을 매각하는 시나리오도 있지만 가능성은 낮게 점쳐지고 있다.
최동수 기자, 정순구 기자, 강우석 기자, 이축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