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월12일)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은 통곡의 눈물바다였다.
1, 집에서 2km쯤 떨어진 야산에 가서 아침 산보를 하고 집에 돌아와 9시 쯤 늦은 아침을 먹고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보니 인혁당희생자의 아드님 한분을 모 신문에서 인터뷰한 기사가 실렸는데 프레스센터에서 오전11:00에 기자회견을 한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급히 컴퓨터를 눌러 끄고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무작정 전철을 타고 시청뒤편에 있는 프레스센터로 가서 드넓은 1층 홀로 들어섰다.
아직 시간은 30분 이상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통 아는 얼굴이 눈에 띄질 않았다.
그런 행사가 있으면 이름은 몰라도 익히 아는 얼굴이 여럿 눈에 뜨여야 하는데 통 모르는 사람뿐이었다.
행사내용을 게시한 안내판을 보니 “인혁당재건위사건 유가족 기자회견 취소”라는 공지가 붙고 그 밑에 핸드폰 전화번호 하나만 달랑 기재되어 있었다.
한참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그 핸드폰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4-50대 정도로 여겨지는 남성이 전화를 받았다.
“왜 기자회견을 취소 하셨습니까?”
“아- 갑자기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14:00에 하기로 변경을 하였습니다.”
“어디서 압력이 들어와서 장소를 변경한 것입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유가족들과 사전에 충분한 협의가 안 되었고, 새누리당사 앞이 더 적절할 것 같아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압력 때문에 그런 건 절대 아니지요?”
“예-에!”
“그러면 취소를 공지하는 안내문 밑에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14:00에 한다는 내용을 써 넣지 그러셨습니까?”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프레스센터 측에서 그건 안 되고, 그냥 취소된 내용만 공지할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뭔 뜻인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들려오는 음성으로 보아 뉘 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새누리당사 앞 기자회견장으로 와 주십시오! 하는 억양이었다.
2. 12:00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
주변 길에는 천하일미의 점심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싼 값으로 먹을 수 있다는 전단지를 나누어주는 아주머니들 수십 명이 늘어서서 오가는 젊은이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봉급쟁이들이 우글거리는 여의도이고 보니 그 일대는 언제고 그랬다.
나 같이 나이도 들어 봉급쟁이에서 쫓겨 난지 오래되고 차림새가 돈도 없어 보이는 사람은 일부러 그 앞으로 가서 전단지를 들여다봐도 전단지를 주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 것을 바란 내가 좀 모자라는지도 모르겠다.
새누리당이 둥지를 틀고 있는 빌딩의 앞에는 전경버스 3대가 앞과 뒤를 붙이고 일렬로 늘어서서 건물 전면을 막고 서 있고 양측의 출입문 앞은 꼭 을지문덕장군같이 갑옷을 차려입은 경찰들이 몇 겹으로 진을 치고 출입하는 사람을 일일이 통제하고 있다.
떼로 몰려있는 을지문덕 장군들을 보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가장연장자일 것 같고 그중에서는 지휘자일 것 같은 경찰 앞으로 가서
서울과 여의도를 처음 와보는 사람처럼 하고 작은 눈을 일부러 크게 떠서 겁먹은 표정을 짓고 새누리당 당사를 가리키며 “이 건물로 두둑 놈이 도망쳐 들어갔습니까?”하고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그 경찰 간부가 아직은 눈치를 못 챘는지 순진해서 그런지 정색을 하며 “아니요!”하고 대답을 한다.
“그러면 왜 이렇게 경찰이 이 건물을 겹겹이 포위를 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그 때 까지도 이 경찰양반은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그 경찰간부가 한다는 대답이 “이 건물이 국가의 중요 건물이어서 그럽니다.”하고 묻는 의도를 파악했는지 모르는지 또 그렇게 대답을 했다.
그때서야 내가 웃으며 “중요건물은 개뿔 무슨 중요건물이요?, 이 건물 안에 도둑년놈들이 우글거린다고 하더니 그래서 겹겹이 포위를 한 것 아니요?” 하고 물으니 그때서야 그 순진한 경찰간부 양반도 박장대소를 하더니 역시 웃으면서 “그렇기도 하네요!”하더니 부하경찰들이 보는 앞이어서 그러는지 더는 말은 잇지 않고 자기와 나만 아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한참 끄덕였다.
갑옷입고 몰려있는 경찰들을 보면 그런 골탕질문을 자주하곤 하는데 성질이 전두환을 닮은 경찰은 잡아먹기라도 할 듯 도끼눈을 뜨고 째려본다.
그러면 “시민이 의심나는 것을 물어보는데 지팡이가 어디다 째려봐!”하고 호통을 치면 그냥 고개를 돌리고 만다.
그런 정도 가지고 경찰이 시민을 엮어 넣을 수는 없다.
의심이 나는 것은 경찰한테 얼마든지 물어봐도 되는 것이다.
아직 시간은 두 시간 가까이 남았고 여의도 광장 쪽에서 왕왕거리는 확성기 소리가 들려와 발걸음을 거기로 옮겼다.
광장으로 가는 길에 역시 갑옷을 입은 경찰들이 떼를 지어 광장 쪽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서울시내에서 매일같이 경찰들이 수 백 명, 많을 때는 수 천 명이 떼로 모여 을지문덕장군의 살수대첩 훈련만 하고 있느니 전국적으로 성폭행과 도둑놈이 마음 놓고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범죄가 안 일어나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광장에서는 한우 값 폭락에 항의하는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축산농민 1만여 명이 모여 항의집회가 14:00부터 열릴 예정으로 깃발을 앞세운 축산농민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8도 사투리가 다 섞여 있었다.
그 자리도 머리통 하나라도 더 채워 힘을 보태줘야 하겠지만 인혁당 사건 유족의 기자회견이 훨씬 더 중요하고 절박한 문제여서 광장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3. 14:00 다시 새누리당사 앞 4거리
인혁당사건 희생자 유족 10여분, 뜻을 같이 하는 시민 50여 명, 각 언론사의 카메라 기자 200여명
이명박 정권 들어와서 수많은 집회와 기자회견 장에 참석을 해 보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로 범벅이 된 기자회견은 처음이었다.
양봉이 직업이어서 벌꿀 따던 아버지가 웬 낯선 사람에게 팔짱 끼워 끌려갈 때 중학생이었던 아들은 1년 만에 아버지가 한 줌 재가 되어 돌아오셔서 아버지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고, 새파랗던 새댁이나 초중학생 자녀를 둔 중년의 부인이었던 희생자의 미망인들은 어느덧 80을 넘긴 등 굽은 할머님이 되어 있었고, 총각으로 박정희 손에 목이 비틀려 요절을 한 희생자는 처나 자식이 없으니 젖먹이였던 조카가 중년부인이 되어 참석을 했고,
유가족들은 심장이 떨리고 원한과 설움이 복 받쳐 말을 제대로 잇지를 못 했고, 또 가장 큰 피해자인 미망인들은 말을 조리 있게 제대로 할 수 있는 연세가 아니었고, 기자회견이 아니라 오열과 통곡의 장소였다.
뜻을 같이 해 참석한 50여명도 눈시울을 붉히고 더러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고, 그 통한의 모습과 목소리를 카메라에 담는 기자들도 눈시울을 붉혔고 제대로 된 기자회견을 할 수가 없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기자회견이 끝나고 당시 유가족들이 외쳤던 구호인 “내 남편을 살려내라!”, “우리 아버지를 살려내라!”라는 구호를 다 함께 외치고 4거리에서 한나라당사 정문 앞까지 20여 미터를 행진해서 정문을 향하여 또 다시 그 구호를 외치고 “박근혜는 사죄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공식기자회견은 마무리 되었다.
박정희는 제 종신독재의 밑거름으로 써 먹기 위해 우국지사 8명의 목을 비틀어 생떼 같은 생명을 빼앗았고, 38년이 지난 지금 그 딸은 차마 인간으로서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될 망언을 하여 유가족들의 가슴을 난도질하며 희생자들의 아내와 자식들을 죽이고 있다.
새누리당사 정문 앞에서 “박근혜는 사죄하라!”는 구호를 외칠 때 박근혜만 보면(TV에서) 내 마음은 칼도 되고, 도끼도 되고, 총도 된다던 우홍선지사의 미망인 80할머님께서 몸을 비척하셨다.
얼른 뒤로 가서 몸을 부축해 드리며 "할머님 저 안에 박근혜가 있으니 가슴속에 있는 칼과 도끼를 저리 던지시고, 총을 쏴 버리십시오!”하고 위로랄 수가 없는 위로를 해 드렸다.
할머님께서는 “그럴 수만 있다면 내 가슴을 여기서 째고 죽어도 좋겠어요!” 하시는 것 같았으나 주변의 소음에 실려 잘 들을 수는 없었다.
이미 연세들이 있으셔서 말씀이 원활하질 못하고, 잘 듣지도 못하시는 것 같았다.
박근혜에게는 이미 38년 전에 지나간 옛날 얘기이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다 생각게 하는 슬픈 일이었었고, 유가족들에게는 38년 전의 그날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죽는다 한들 어찌 그것을 잊을 수가 있겠나?
다 마무리 되고 할머님들께서 의자에 힘없이 앉아 계실 때 옆에 쌍용자동차농성자들의 구호를 적은 스티로폼 판을 하나 얻어 뒷면에 이렇게 써서 보여드리며 위로 아닌 박근헤의 사죄를 대신했다.
<인혁당 재건위사건 희생자 유족 여러분!>
“피눈물로 사죄를 드립니다.(이 글은 1차로 게시를 하고 생각해보니 누락을 시켰어서 추가로 삽입)
그 시절 박정희가 무서워 당신들의 비극을 외면했던 우리 모두는 박정희살인의 공범입니다.
용서해 달랄 염치조차 없습니다.
그 모진 세월을 어찌 살아 오셨습니까?”
조금은 더 써서 글을 제대로 완결을 지었어야 하는데 스티로폼 판에 매직잉크로 쓰는 글씨여서 더 이상 길게 쓸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2시간 동안 이 방송 저 방송 채널에 불이 나도록 돌리면서 살펴봐도 그 통곡의 뉴스를 전하는 방송은 없었다.
200여명 가까운 기자들은 뭣 하러 와서 사진 찍고 수첩에 메모하고 했는
지 통 이해가 안 된다.
이러니 언론이 승패를 좌우하는 대선도 힘들 것 같다.
이명박은 어쩌다 보니 그럭저럭 다 겪었다.
우리가 또다시 박근혜를 청와대로 들여보낸 다면 내 죽어서 하느님께서 왜놈나라의 개로 태어날래? 한국의 사람으로 태어날래? 하고 물으신다면 기꺼이 왜놈의 개를 선택해서 태어날 것이다.
에이- 18!
조선일보의 맨 앞 글자 같은 나라!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이분들이 얼마나 아픈 세월을 살아오셨을지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가슴아픕니다
그분들의 심정을 어찌 알며
어떤말로도 위로가 될수없음이 개탄스럽습니다
아픈글 잘읽었습니다
ㅂㄱㅎ 정말 용서할 수 없습니다.
기자회견하면 뮈하나 이런 기자회견했다는 뉴스를 공중파나 인터넷에서 보지도 못하니 제길 도대체 이나라에 양심있는 언론인이 있기나 한걸까?
그 모진 세월을 어찌 견디셨을려나요........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래도 에스비에스에서만 보여줬어요~~ 살다살다 에스비에스 뉴스를 보구있네요~~
올려주신글 잘봤습니다
제대로 몰랐던것만으로도 죄를 짓고 있었네요
주진우현대사와 자료들을 이제야 봤습니다
그동안 무심했음에 용서를 구함니다
제가 할수있는게 투표뿐이라는게 부끄럽습니다
박그네가 여러사람 다시 죽이네요.' 봉하마을 방문이 그랬고 전태일재단방문이 그랬고 또 이번 인혁당 발언이 그랬고 장준하 사건이 그랬고. 뭐... 별로 기대도 안 했지만 그네할매가 대통령이 되면 정말 안 될 거 같아요.... 아... 생각하기도 싫으네요. 이 글을 읽으니 마음이 아프고 무겁네요.
ㅜㅜ 글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분통이 터집니다. 애 많이 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ㅠㅠ
가슴이 먹먹합니다.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
먹고사는거에 급급해서 또 민주정부때는 신경안쓰고 지내다보니 우리사회는 과거사 역사 문제가 정리가 덜되있다는걸 느낌니다 전쟁후에 너무살기바빠서 다제쳐두었던거 아닌가싶기도하구 박통시대때는 두려워서이기도하구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아픈과거사가 제정립정비되길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붓님의 생생하고 소상한 글이 기록으로 남을겁니다. 참여하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