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본기 내물이사금
42년 가을 7월, 북쪽 변방 하슬라에 가뭄이 들고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 흉년이 들고 백성들이 굶주렸다. 그 지방의 죄수를 특사하고, 1년간의 세금을 면제하여 주었다.
신라본기 눌지마립간
34년 가을 7월, 고구려의 변방 장수가 실직 벌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는데, 하슬라성주 삼직이 군사를 보내 그를 습격하여 죽였다. 고구려왕이 이를 듣고 분노하여 사신을 보내 "내가 대왕과 더불어 우호 관계를 맺어 매우 기뻐하였는데, 이제 군사를 보내 우리 변경의 장수를 죽였으니, 이는 무슨 도리인가?"라고 말하고, 즉시 군대를 동원하여 우리 나라의 서쪽 변경을 침범하였다. 왕이 겸손한 말로 사과하자 그들이 돌아갔다.
신라본기 자비마립간
11년 봄,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북쪽 변경의 실직성을 습격하였다.
가을 9월, 하슬라 사람으로서 15세 이상되는 자를 징발하여 니하[니하를 니천이라고도 한다.]에 성을 쌓았다.
신라본기 지증마립간(혹은 지증왕)
13년 여름 6월, 우산국이 귀순하여, 매년 토산물을 공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국은 명주의 정동쪽 바다에 있는 섬인데, 울릉도라고도 한다. 그 섬은 사방 1백 리인데, 그들은 지세가 험한 것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었다. 이찬 이사부가 하슬라주의 군주가 되었을 때, 우산 사람들이 우둔하고도 사나우므로, 위세로 다루기는 어려우며, 계략으로 항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곧 나무로 허수아비 사자를 만들어 병선에 나누어 싣고, 우산국의 해안에 도착하였다. 그는 거짓말로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이 맹수를 풀어 너희들을 밟아 죽이도록 하겠다"고 말하였다. 우산국의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곧 항복하였다.
신라본기 선덕왕
8년 봄 2월, 하슬라주를 북소경으로 만들었다. 사찬 진주로 하여금 이 성을 수비하게 하였다.
가을 7월, 동해의 물이 붉게 변하고 더워져서 고기가 죽었다.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5년 봄 정월, 중시 문충의 벼슬을 이찬으로 바꾸고, 문왕을 중시로 임명하였다.
3월, 왕이, 하슬라는 지역적으로 말갈과 연이어 있으므로 백성들이 편안히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따라 경을 폐지하여 주로 만들고, 도독을 두어 그 곳을 수비하게 하였다. 또한 실직을 북진으로 만들었다.
6년 여름 4월, 백제가 자주 국경을 침범하므로, 왕이 백제를 공격하기 위하여 당 나라에 사신을 보내 군사를 요청하였다.
가을 8월, 아찬 진주를 병부령에 임명하였다.
9월, 하슬라주에서 흰 새를 진상하였다. 공주 기군강에서 큰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와 죽었다. 그 고기의 길이가 1백 자였는데, 이를 먹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겨울 10월, 왕이 조정에 앉아서, 당 나라에 파병을 요청한 데 대한 회보가 없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한 사람이 왕 앞에 나타났다. 그는 선대의 신하 장춘과 파랑 같아 보였다. 그는 "제가 비록 몸은 백골로 변하였으나 나라에 보답할 마음이 있기에, 어제 당 나라에 갔었습니다. 그 곳에서 당 황제가 대장군 소정방 등에게 내년 5월에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백제를 치도록 명령한 것을 알았습니다. 대왕께서 이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므로 미리 말씀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말을 마치자 사라졌다. 왕이 크게 놀라고 이상히 여겨, 두 집안 자손들에게 후하게 상을 주고, 곧 해당 관청으로 하여금 한산주에 장의사를 지어 그들의 명복을 빌게 하였다.
첫댓글 고구려 동부 말갈 쪽과 ' 접하고 ' 있다는 뜻이지 고구려의 영토라는 개념으로 굳이 끌어들여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요? 다만 저 당시 하슬라 쪽은 신라 북방, 고구려와의 경계를 이룰 변방 같아 보이긴 하네요
삼국사기 지리지의 본문입니다.
遂置九州 本國界內 置三州 王城東北 當唐恩浦路曰尙州 王城南曰良州 西曰康州 於故百濟國界 置三州 百濟故城北熊津口曰熊州 次西南曰全州 次南曰武州 於故高句麗南界 置三州 從西第一曰漢州 次東曰朔州 又次東曰溟州
(중략) 마침내 9주를 설치하였다.
본국(本國, 신라) 경계 내에 3주(三州)를 설치하였다. 왕성 동북쪽의 당은포(唐恩浦) 방면을 상주(尙州), 왕성 남쪽을 양주(良州), 서쪽을 강주(康州)라 하였다. 이전의 백제 경내에 3주를 설치하였다. 백제의 옛성 웅진 북쪽의 어구를 웅주(熊州), 그 다음 서남쪽을 전주(全州), 그 다음 남쪽을 무주(武州)라고 하였다. 이전의 고구려 남쪽 지역에 3주를 설치하였다. 서쪽으로부터 첫 번째를 한주(漢州), 그 다음 동쪽을 삭주(朔州), 그 다음 동쪽을 명주(溟州)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지리지의 본문입니다.
溟州 本高句麗河西良<一作何瑟羅> 後屬新羅 <賈耽 古今郡國志云 今新羅北界溟州 蓋濊之古國 前史以扶餘爲濊地 蓋誤〉 善德王時爲小京 置仕臣 太宗王五年 唐顯慶三年 以何瑟羅地 連靺鞨 罷京爲州 置軍主以鎭之 景德王十六年改爲溟州 今因之
원문은 역사광복운동본부에서 퍼온것입니다.
삼국사기 지리지의 원문을 살펴 잘못이 있는지 살펴보고, 잘못이 있다면 다시 올리겠습니다.
신라본기에 나오는 명주(하슬라, 아슬라)는 분명히 내물이사금때부터는 신라의 영토이며, 혹은 남해차차웅때부터 신라에 속한 땅입니다.
그렇다면 신라가 300년을 지배한 땅을 고구려의 영토라 말할 근거라도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