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 산골 3
폭염 기세가 조금도 누그러질 기미가 보이질 않은 칠월 넷째 주말이다. 삼십여 년 전부터 방학이면 대학 동기들이 1박 2일로 가져오는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지난겨울엔 새마을운동 발상지 청도에서 행사를 가졌다. 그때 이번 여름 모임은 회원 주말 농장인 경주 산내 지음산방에서 갖기로 예정 되었다. 모두 여덟 회원 가운데 통영 친구가 빠지고 나를 포함 세 집은 혼자 참석했다.
나는 칠월 마지막 토요일 아침나절 경주로 갔다. 울산 친구는 아침 이른 시각 농수산물경매장에서 시장을 봐 경주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만났다. 울산 친구와 내가 앞으로 이년 간 윤번제로 우리 모임에서 회무 살림을 맡기로 되었다. 주로 펜션이나 수련시설서 만나기로 하면 오후부터 일정이 시작되었다. 대구와 창원과 함양에서 모여 들고 울산에서도 두 가족이 더 합류하기로 되었다.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울산 친구를 만나 건천을 지나 산내 지음산방으로 들어갔다. 내야 친구네 농장을 일 년 몇 차례 들어간다만 다른 회원들 발걸음은 오랜만이다. 사오 년 전 여름 그곳에서 행사를 가진 적 있었다. 친구는 우리 모임을 앞두고 이부자리와 베개 홑청도 세탁하고 방청소도 깔끔하게 해서 손님맞이를 했다. 회원들의 산방 방문이 친구에겐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아침나절부터 산방에 먼저 들어감은 여러 약재가 덜어간 백숙 국물을 달이기 위함이었다. 천궁, 당귀, 오가피, 엄나무, 도라지, 대추 등을 넣고 서너 시간 푹 달인 후 생닭이 들어갔다. 약백숙 국물이 달여지는 동안 친구가 시장을 보면서 떠 온 우럭회로 점심을 대신한 잔을 기울였다. 약초밭으로 가 김도 매고 청정지역 여름농사로 지어둔 가지와 고추도 따서 상자에 담아 놓았다.
울산의 두 가족에 이어 창원 동기가 먼저 도착했다. 창원 동기는 간밤 합천과 거창 일대에서 다른 모임을 갖고 합류했다. 대구와 함양 친구가 오기 전 산방 주인장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하나 해결했다. 뒤란에 있는 저수조 스티로폼 판넬 덮개가 내려 앉아 건져 올려 해체 하는 작업이었다. 장정 넷이 힘을 합쳐 까까스로 건져 올려 전기톱으로 잘라 다른 곳으로 치워 놓았다.
날이 저물기 전 일곱 가족이 모였다. 네 집은 부부가, 셋은 외짝으로 만났다. 불참 사유는 해외여행과 종교행사와 초등학교 동기회 참석 등이었다. 산방의 싱그러운 잔디밭에서 약백숙을 앞에 두고 간단한 회무 보고를 갖고 겨울 모임 일정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취향 따라 각기 다른 술을 들었다. 숙성시켜 침전물을 가라앉힌 곡차와 캔 맥주와 맑은 술 등인데 곡차가 인기가 많았다.
산방 주인장은 취기가 오르기 전 잔디밭에서 즉석 게임을 제안했다. 커다란 고무통을 하나 마련해 멀리감치 두고 밧줄로 금을 그었다. 각자 신고 있는 신발을 멀리 벗어 차 그 고무통에 들어가게 하는 게임이었다. 투호를 연상하게 한 경기였다. 처음엔 거리가 멀어 모두가 몇 차례 시도에도 실패하고 조금 당겼더니 울산에서 온 친구 아내가 성공 시켜 상금 오만 원 주인공이 되었다.
이어 외등이 운치 있게 켜진 잔디밭에서 삶은 고동이 더 나오고 참숯불을 피워 장어를 구워 먹었다. 마지막 남은 문어숙회가 익혀져 나왔을 때는 일부는 거실로 옮아가 심야 전투를 치르다 잠에 곪아 떨어졌다. 심심산골이라 밤공기 차가워 산방 문은 꼭꼭 닫고 잠을 잤다. 산새가 종알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 간밤에 치열했던 전투 현장을 수습하고, 끓여둔 약백숙 국물로 속을 풀었다.
회원들은 방문 기념품처럼 산방 주인장이 가꾼 가자와 오이를 챙겼다. 귀로는 산방에서 한 남짓 국도를 달려 언양에서 알려진 불고기단지로 향했다. 덩그렇게 한옥으로 지어진 고기집은 궁궐을 방불하게 했다. 안창살과 치마살 등을 숯불에 구워 식도락을 누렸다. 점심을 들고 바깥으로 나오니 여름 햇살을 식을 줄 몰랐다. 건강한 모습으로 겨울에 보자면서 각자 행선지 따라 떠났다. 18.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