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 호박 / 김용옥
두 팔을 활개치며 쿵쾅쿵쾅 달려나가 무대 한복판에 힘차게 두 발을 꽂듯이 시작할까? 아니면 더엉더엉 들릴 듯 말 듯 아득한 북소리로 시작하여 점점 빠르게 달려드는 울림으로 써야 할까?
이 고심거리는, 새 글을 쓸 때 오나가나 앉으나 서나 머릿속에 맴도는 문제다. 발상(發想)이 오래된, 절친한, 뼛속 깊이 각인된 것일수록 쉬이 가닥이 모아지지 않는다. 그 발상에 연관된 기억들과 지식의 낱말과 느낌들을 시지프의 바위 덩어리처럼 끙끙 끌어안고서 그걸 잘 버릴 속을 찾아 헤맨다. 시작이 반인데, 시작만 잘하면 절반은 쓴 셈인데, 그 첫마디 첫 줄이 걸려들지 않는다.
물길 육십 리 길 옥정호(玉井湖) 호숫가에 한 점처럼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서, 햇빛과 물너울의 장난질 속에서 손가락 끝마디만 한 찌의 끝을 응시하며 하염없이 물고기의 입질을 기다리는 것과 흡사하다. 저 넓고 깊고 막막한 물속의 어느 물고기가 나의 미끼에 환장하고 달려들 것인가. 용케 입질이 있다 해도 피라미나 잔챙이가 간죽거리면 헛일이요, 어느 경우엔 나의 요령보다 한 수 더 뜨는 물고기도 있어 미끼만 잽싸게 떼이고 만다. 때로는 낚싯대를 채어드는 힘이 그럴싸하여 대어라도 걸린 양 땅바닥에 팽개치는 부르길이나 베쓰인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러면서도 참붕어가 몰려드니 낚시꾼은 낚시질을 계속한다. 지금의 나는 장대를 들어 휘이잉 포물선을 그으며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물길 깊이 낚싯대를 담그고 있다. 수집한 미끼를 달아서.
한 편의 글을 짜장 알맞게 잘 쓰기 어렵다. 연주회나 산행(山行), 일상생활에 다른 입성이어야 하듯이 글의 옷도 다양하게, 글의 표정도 여러 가지로 입히고 싶다. 문상 가는 얼굴을 헤헤낙낙거리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천편일률적으로 부처님 안면이라면 지루하기 짝 없으렷다.
젊은 여성시인이 말한다. 지적(知的)으로 보이고 싶은 날엔 일자형 눈썹에 레드브라운 립스틱을 또렷하게 바른다고. 바람들 듯 연애라도 하고 싶은 날엔 기러기 날개 같은 눈썹을, 그리고 보라색 아이섀도를 안개처럼 덮고 입술은 레드와인 루즈를 육감적으로 크게 화장한다고, 글 모양새도 이렇게 변화해야 한다.
그런데 이론으로 알면 뭘 하나, 똑똑하게 말하면 뭘 하나, 아는 만큼 표현하지 못하니 그게 불행이다. 불행은 쓰고 떫고 지겹고 더럽다. 그러나 그 불행의 맛이 행복의 맛을 제대로 알게 한다. 행복 맛이 달콤하다 한들 다른 맛을 알지 못하면 달콤함의 달콤함을 제대로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나저나 행복 맛을 맛보고 싶다.
손을 씻는다.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질하고선 손을 오래 바라다본다. 내 정신과 마음을, 냉철한 지식과 물 같은 감정을 저 손이 말해야 한다 and 흐르듯이, 손이 아직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니콜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는다. 화려한 음색과 드라마틱한 음역과 애끓는 고통이 사무쳐 온다. 현(絃) 하나가 끊어지면 남은 현만으로도 완벽한 연주를 한 악마의 제금가 파가니니, 죽음까지도 삶만큼 곡절많고 파란만장했던, 전무후무한 예술적 명기(名技)는 죽음 직전까지도 미래를 향해 살고 있었다. 현상에서 사라진 현의 절망이 그의 영혼에 도전의 불을 지피는 것일까. 잃어버린 현에 절망하는 대신 남아 있는 현의 숨겨진 힘을 발굴하여 신기(神技)의 아름다움을 창작한 니콜로 파가니니. 그의 육체가 지옥 상태일 때도 그의 정신은 천국으로 승천하곤 했다.
파가니니의 제금소리처럼 비가 내린다. 빨랫줄과 베란다 난간 사이에 매어 놓은 낚싯줄을 타고 너펄너펄 무성한 호박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까슬한 잎삭끼리 몸을 비비는 소리가 천상 음악이다. 동그란 야구공만한 애기호박의 살결이 뽀사시하다. 분홍 나팔꽃 몇 송이도 현을 켜는 듯하다.
퇴비 같은 친구가 우리 꽃밭의 영양제로 가져다준 퇴비 속에 숨어와 얇은 땅 베란다 꽃밭에 저절로 돋아난 호박 싹 하나, 어인 인연이람! 차마 뽑아내지 못했다. 저희들끼리 잘 어울려 살겠지!
자꾸 보면 정든다. 땡볕이 훅훅거리는 허공을 붙잡고서도 호박꽃은 날마다 한두 송이씩 피어났다. 호박꽃도 꽃이냐고 비아냥거리지만, 밭두덕이나 언덕받이에 혹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꽃초롱 밝히는 환한 주황색 호박꽃은 참 아름답다. 이슬비 내리면 칙칙하고 슬퍼지는 여름 둔덕에서 꽃등불 켜고 부웅 떠오르던 호박꽃. 지난 여름 내내 호박꽃과 눈맞췄다. 호박 한 덩이를 실하게 맺지 못했지만? 얻은 것 하나 없는 내 인생처럼? 뚝뚝 져버린 내 인생의 인연들 같은 수꽃들 헛꽃들을 잠시잠깐 바라보며 마음을 닦았다. 나를 깨우치러 와준 호박씨 한 톨이었다.
해가 바뀌어 퇴비의 흔적도 없는데, 심은 적도 없는데 호박싹 하나 또 돋았다. 잠자는 미녀처럼 오랜 잠을 자고 난 호박싹 하나, 새로 온 이 인연을 버릴까 말까? 아니다. 비로소, 마침내, 겨우 삶을 얻은 것인데 스스로 살게 하자! 호박싹 하나가 눈물겹다. 내 목숨처럼.
햇빛 맑고 초록 잎 밝은 아침. 아기 손목에 달랑거리는 은방울만한 새끼 호박이 커다란 화관을 썼다. 뇌래져서 떨어져 버리는, 사랑 없어 죽어 간 헛꽃 헛열매 같은 요즘 사람들의 관계를 생각했다. 그리곤 수꽃 한 송이 꺾어 꽃잎을 찢어내고 알몸이 된 수술을 암꽃에 인공수정시켰다. 내 손의 중매로 저 호박줄기에 호박 한 알 열리었다. 이미 땅을 향해 고개를 숙였으니 온전한 열매가 될 것이다. 오뉴월 호박 크듯 한다는 말처럼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 크크크.
비라도 줄줄이 내리는 날, 소박하고 솔직한 친구들을 초대하여 애호박전을 부쳐 낼까? 그것도 좋지만, 저 녀석을 토실토실 팡팡하게 늙혀야겠다. 초복 전에 맺은 건 약으로 쓴다는데, 늙은 호박죽, 호박찜, 호박떡 호박차를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이 즐겨 드시는 어머니께 공양해 드리고 싶다.
여름 내내, 호박 한 알은 내 눈빛과 손길과 마음을 차지하리라. 참 많은 얘기를 호박 때문에 나누게 생겼다.
문득 생각 하나가 스쳐 간다. 우리 덧없는 생애에 호박 한 알은 자식인지도 모른다. 자식은 인생을 참을 수 있고 수고하고 이해하게 해준다. 딸애만큼, 나로 하여금 지옥연단을 견딜 수 있게 한 인연은 없었다.
저 어린 호박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얘 호박아, 그 비가 너를 키워 줄 것이다. 땡볕 쨍쨍한 더위가 너를 살찌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