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3. 큐티
여호수아 17:14 ~ 18
스스로 개척하라
관찰 :
1) 큰 민족이 되었거늘
- 14절.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 요셉 자손, 즉 므낫세 반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나아와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하나님을 경외하던 광야 2세대 중에서는 이렇게 하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경외함이 사라진 이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나아와서 자신들의 판단과 생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나안 정복전쟁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생각이요 모습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욕구불만을 토로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가나안 정복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큰 민족”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여기서 '큰 민족'이라는 말은 수적인 많음뿐만 아니라, 능력의 탁월함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들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는 이스라엘 지파들 중 자신들이 가장 위대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교만함은 사사 시대에 기드온과 입다의 행동에 에브라임 지파가 당당히 항의하는 그 위세를 통해서도 잘 나타납니다(삿 8:1-3; 12:1-6). 결국 이러한 교만한 생각은 솔로몬 사후 남북 분열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대표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 앞에서 불평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의식은 결과적으로 에브라임 지파가 북왕국 이스라엘 10지파의 주도 지파가 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삼하 2:1-11; 19:41 ~ 43). 따라서 왕국 분열 시대에 여러 선지자들은 에브라임 지파를 북왕국 이스라엘의 10지파와 종종 동일시하여 명명하기도 합니다(사 7:2; 11:13; 렘 7:15; 31:9; 겔 37:16; 호 7:8 등). 여기서 이들의 불만은 자신들이 제비를 한번 뽑았다는 것입니다. 요셉 지파가 둘로 나뉘어 에브라임과 므낫세로 나누어 졌는데, 왜 분깃은 한번만 주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들에게 주어진 땅은 넓고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그들이 점령하여 살게 되면 부족함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게다가 므낫세 지파의 반은 요단 동편에 땅을 얻었기 때문에 므낫세 지파의 숫자는 이미 반 가량 줄어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욕심으로 판단력이 마비되어서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반기를 들고 불평과 불만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여호수아의 대안 => 스스로 개척하라
- 15절.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 여호수아는 그들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요셉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가 ‘큰 민족’이 되어서 에브라임 산지가 좁다면, 다른 땅을 개척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전 노장이고, 이미 가나안 땅의 형편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렇기에 요셉 자손이 점령하기에 불가능한 땅이 아니라 충분하고, 또 좋은 땅을 허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개척하라”는 말은 ‘황무지를 개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수아의 보기에 그 땅은 요셉 자손이 그냥 들어가서 사용하면 되는 수준의 땅이었던 것입니다.
3) 요셉 자손의 핑계
- 16절.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 요셉 자손은 두 가지의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첫째는 여호수아가 제시하는 산지가 자신들에게 좋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에게 ‘철 병거’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둘 다 타당하지 못한 핑계입니다. 첫째는 그 땅은 그들이 말하듯이 좁은 땅이 아닙니다. 비록 삼림이지만 그 땅을 개간하면 충분히 넓고 넉넉한 땅이 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의 핑계는 자신들이 날로 먹을 수 있는 땅을 내놓으라는 협박에 준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핑계 역시 ‘철병거’가 이제 까지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없었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요단 동편의 바산왕 옥이나 시혼의 경우도 거인이자 철병거 군단이 있었던 적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요단 서편에서도 철기 문명이 발달했기에 언제나 철병거는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다시금 이들은 철병거를 이유로 그 땅을 점령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큰 민족’이라고 주장한 것과는 참 대조가 되는 어린 아이 같은 핑계를 대고 있는 것입니다.
4) 다시금 분명히 권면하는 여호수아
- 17절.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의 불평 불만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을 그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말한 대로 ‘큰 민족’, ‘큰 권능’임을 인정해 주면서 그렇기 때문에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을 가졌기에 큰 숙제도 해야 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18절.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 여호수아는 이미 철 병거부대와의 전투를 여러 차례 경험했었습니다. 철병거는 당대 최강의 신무기로 마병 10여필을 상대할 수 있는, 보병 500여명과 상대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무기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군대에게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이제까지의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수없이 경험했던 바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에브라임과 므낫세 자손들의 대표들은 믿음이 없는 말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여호수아는 추호의 흔들림이 없이 믿음의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들을 쫓아낼 것이다.” 이것이 “강하고 담대하라”는 하나님의 권면을 들은 여호수아의 자세요 태도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강하고 담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그러한 태도를 분명히 가르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끝까지라도 모두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것이 될 것이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큰 권능”을 가진 “큰 민족”이라고 주장하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당돌하고 교만한 태도를 보게 됩니다. 그들이 진짜로 자신들을 그렇게 인식했다면 다른 족속에 비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도맡아서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야말로 날로 먹을 수 있는 땅을 달라고 여호수아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모습이요, 탐욕으로 번득거리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이러한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믿음없는 모습은 이미 이 때부터 이스라엘 분열의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후의 사사 시대, 그리고 사울 왕과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속에서도 이들은 중심에서 다른 족속의 지도자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에브라임 자손 여로보암으로 10 지파를 규합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을 세우게까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탐욕만 보일 뿐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람 모세,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를 대하는 태도가 요셉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에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였기 때문에 그들을 볼 때는 모세나 여호수아 자체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뒤의 하나님을 인식하고 경외함으로 나아갔어야 했습니다. 광야2세대들이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나 두려워서 제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지 말고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엄위를 보았기에 모세가 하는 말, 여호수아가 하는 말에 대해서 두려움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기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있었기에 여호수아에게 나아가서 자신들의 탐욕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나의 탐욕이 나를 주장하게 되어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 반 지파의 실패는 하나님 경외하기를 놓치고 있는 데서부터 연유하고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스스로 개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어린 아이 같은 요구에 대해서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큰 권능”을 가진 “큰 민족”이라면 그에 합당하게 큰 숙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스스로를 높이는 이들은 스스로 큰 숙제를 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이 “큰 민족”으로 대우받기 전에 “큰 민족”이 할 바를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 앞에서 존귀함을 받고 싶다면, 존귀한 자가 감당해야 하는 일을 감당하면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존귀함을 받는 것입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열매만을 얻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잘못된 일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자신들이 신앙 공동체라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신앙보다는 현세적 판단력을 앞세운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믿음의 판단과 자세가 우선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판단으로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을 따르는 삶을 선택하고 추구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스스로 “큰 민족”이라고 하고서는 실상은 “작은 민족”처럼 행동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거지와 왕자에서 왕자는 왕자의 옷을 입었어도 거지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왕자는 거지 옷을 입고 거지 소굴에 거했어도 왕자로 생각하고 왕자로 행동했습니다. 믿음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의지하고 앞으로의 인생을 살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것들을 감사로 여기고 믿음의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