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용산구 남산 바로 밑, 급격한 경사지에 위치한 해방촌은 1945년 해방 지후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 6.25전쟁으로 인한 피란민들이 모여 판잣집 촌락을 이루고 이윽고 ‘해방촌’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곳이다. 교통의 접근성에 있어 불리한 이 지역은 대표적인 서민촌이 되었고, 산비탈에 위치한 무질서한 ‘달동네’의 한 지역이었기에 항상 재개발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해방촌시장으로 불리던 이곳 ‘신흥시장’은 1953년부터 지역 주민들을 위한 생필품 시장으로 역할을 하다, 1990년대 이후로는 한참 쇠퇴의 길을 걸었다. 어둡고 좁은 골목으로 형성된 이곳을 사람들이 가기 힘든 우범지대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도시재생사업 및 시장 상인들의 노력과 새로운 세대들을 위한 가게들의 이입으로 오래된 가게와 새로운 가게들의 상생과 혼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었다. 현재는 뉴욕 타임즈에서도 을지로지역과 함께 꼽는 서울 속 숨은 명소이자 ‘너무 아늑하고 매력적이어서 비밀로 하고 싶은’ 곳이 되었다. ☞ Seoul’s Best Hidden Restaurants and Bars(The New York Times)
골목골목과 곳곳에 있는 편하게 앉을 자리
시장의 골목이 대개 1자형으로 시작과 끝이 있는 긴 골목의 형상인 반면, 이곳 신흥시장은 ㅂ자를 그리며 루프(Loop)형태로 끊임없이 돌고 도는 순환 동선이 특이하다. 길과 길이 교차되는 공간이 마당처럼 여유로운 공간을 갖거나 휴게벤치 등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친절한 공공공간으로 형성되어 있어 그 쉼이 아름다운 곳이다.
어둡고 낡은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혁신적인 디자인의 아케이드, UIA 위진복 건축가의 ‘서울챙’은 이곳의 활성화를 더욱 더 도왔다.
특히 신흥시장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골목인데, 위를 올려다보면 투명한 ETFE막구조(Ethylene Terra Fluoro Ethylene, 초극박막 불소수지)로 열린 지붕이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조성되어 있다. 보행통로의 주요길을 인식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하늘로 열려있어 항상 햇빛이 골목 깊숙히 들어올 수 있고 언제나 밝은 내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밤에는 조명으로 인해 오히려 아름다운 야간경관을 발산하는 곳이 되었다.
2018년 공공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설계 공모를 추진하여 모자의 ‘챙’과 비슷한 형태로, 이름도 ‘서울챙’이라는 디자인이 당선되어 공모안 그대로 지어진 결과가 이렇듯 지역의 활성화를 견인하게 되었다.
기존의 깊은 건축의 물성과 공간감과 더해(역사성), 시장상인들의 의지로 새롭고 힙한 가게들이 모이고(주민 공동체), 거기에 더해 공공의 역할(관의 역할)을 다하는 우수한 디자인(건축가)으로 공공공간을 빛나게 되어, 그야말로 모두가 참여한 성공적인 사례가 탄생한 듯하다. 사실 신흥시장의 성공은 ‘이태원 인접지역’이라는 지역성에 의한 지역문화영역의 영향력 내 생성된 컨텐츠 측면(지역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필자의 동네에 위치했던 시장 두 곳은 재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주거지 내 소규모 동네 시장은 이렇듯 취약하다. 서울 도심 내 특성화된 전통시장과 산업화 시장 등은 접근성과 경쟁력으로 여전히 어쨌든 작동하고 있다. 우리 도심 내 ‘시장(Market)’의 미래에도 잘 작동할 수 있을까?
열린 공간, 머무는 공간
시장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흐르고 점적으로 멈추다 다시 흐르기를 반복한다. 본래 시장은 사람들이 머무르면서 많은 시간을 쓰는 장소는 아니다. 급하게 생필품을 값싼 가격에 사기에 바쁜,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머물기에 친절한 공간을 마련하는 시장이 대세다. 그러나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어느 가게의 안쪽으로 들어가 숨겨지는 장소를 말하기보다 밖으로 훤하게 보이거나 오픈스페이스가 커서 서로가 보이는 장소, 오픈된 공간이 시각적 재미를 이끌어내고 결과적으로 공유하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게 되는 공공성에 귀결되는 열린 공간을 선호한다.
‘시장(Market)’의 역할을 유지한 채 상업성과 공공성을 더한 사례,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페닉스 푸드 팩토리(상단 첫번째), 로테르담 마르크트할(상단 두번째), 스위스 취리히 비아둑트의 마르크트할레(하단)
오래된 건축과 혁신적 새로운 디자인의 결합
시장의 건물이 오래되고 낙후되기 마련일 터. 기존 시장건축물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건축물을 고쳐 다시 쓰는 푸드홀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마켓’이란 프로그램의 생명력을 대변한다. 오래된 건축물과 새로운 혁신디자인의 결합은 언제나 옳다. 기존 오래된 층고가 높은 산업시설(창고, 기지창 등)의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고 시장형 푸드홀과 대공간의 결합은 무수한 사람들을 포용하고 많은 이벤트를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기존 건축물을 재활용한 푸드홀들. 네덜란드 로테르담 푸드할렌(첫번째), 암스테르담의 더 할렌(두번째), 프랑스 파리의 스테이션F 내 라펠리치타(마지막)
외부공간의 임시성과 의외성
노천 시장은 대개 임시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난전(사실상 합법적 시전이지만)’의 자유로움의 성격을 지니며 쉽게 설치하고 바로 철거할 수 있어 역동적인 시장에 적합하다. 쓰이지 않는 대지의 임시적 활용을 위해 집합적 팝업스토어의 형태로 들어서 대지의 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도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포장마차나 5일장, 3일장 등 시간의 한계를 가지는 시장은 그만큼 매력적이다. 외부공간을 활용한 노천시장의 임시성과 의외성은 기존 시장과 함께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면 이벤트성 프로그램으로 설치가 가능할 것이다.
노천 시장, 대부분 지역 재생을 이끌기 위한 팝업 스토어의 형태. 덴마크 코펜하겐의 레펜(Reffen)(위), 노르웨이 오슬로의 살트(Salt) (아래)
시장은 더 이상 단순한 ‘소비’의 공간이 아니다. 만남과 즐거움을 향유하는 문화의 공간이며, 도심에서 시민 모두에게 열린 공공공간이다. 가치를 더하는 건축가의 혁신적인 디자인과 트렌드를 따르는 변화무쌍한 세련된 프로그래밍으로 고전적 시장을 넘어서 지역의 생산망을 연결하는 허브이자 문화생산자로서의 ‘생산’의 영역까지 넘나드는 장소가 현재의 시장(Market)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