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31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육신에 속한 새 날이 아니라 오늘이 바로 하늘에 속한 새로운 영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아담 안에 있는 옛 사람은 주님이 죽으신 그 십자가에 못 박고 새 사람으로 사는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하여 죄에 대하여는 장애인 판정을 받은 거룩한 불구자가 되게 하시고 영적 하루살이로 주님을 기뻐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이 시간 주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오니 그 생명의 말씀을 홀로 얻어먹는 자 되어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생생한 생명을 취할 수 있도록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도 주님 안에서 거룩한 주의 날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내 안에 있는 거짓과 악한 생각, 음란과 정욕 그리고 방탕과 향락 등 무법한 우상 숭배에 속한 것은 다 지나간 때로 족하오니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주의 나라를 향유하는 하루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상 5:1-12
제목 : 이스라엘을 위하여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게 하심.
1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3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5 그러므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하게 할지라. 그의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8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9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피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10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이르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11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그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 당함을 면하게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 나의 묵상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속한 하나님의 궤를 빼앗은 블레셋은 그 언약궤를 가지고 블레셋의 아스돗으로 갔다.
그들은 아스돗에 있는 자기들의 신인 다곤의 신전에 두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신전의 제사장들이 보니 다곤 신상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처박혀 있는 것이다.
그런 다곤의 신상을 다시 세웠는데 그 다음날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 데다 그 신상의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걸쳐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신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다곤 신전의 문지방을 밟지 않았다.
한편 여호와의 언약궤와 함께 하시는 주의 손이 아스돗 사람들을 독한 종기로 치시자 아스돗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그들 중에 둘 수 없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서 의논 끝에 언약궤를 가드로 옮겼다.
그러자 여호와의 손이 다시 가드 성을 독한 종기로 치셨다.
이에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냈다.
자라 보고 놀랜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에그론 사람들은 어떤 환난도 오기 전에 에그론으로 들어온 언약궤로 인하여 심히 반발하며 부르짖었다.
블레셋의 모든 방백들은 의논하여 결론 내기를, 더 이상 이 언약궤로 인하여 우리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게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사람을 지으셨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원하셨다.
얼마든지 하나님 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 사람들을 통하여 함께 일하시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영생을 위하여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 곧 창세전에 하나님의 아들에게 아버지 안에 있는 생명을 주셨다(요 5:26).
그리고 생명을 받은 아들과 함께 우리가 사람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그 생명을 주기로 약속하셨다(딛 1:2).
이 생명과 약속이 바로 창세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다.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신 아들을 창세전에 인간의 몸을 입혀서 구세주로 이 세상에 보내기로 작정하셨다(벧전 1:20).
아버지와 아들의 창세전 계획에 의해서 사람을 지으시되 아담과 하와를 지으셨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잘 지키면 때가 되어 오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귀의 꾀임에 빠져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말았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죽게 되었는데, 그 죽음은 육신의 죽음을 넘어선 하나님과의 분리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품안에 있을 때는 벌거벗었을지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며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어겨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는 그들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 보여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의 자존심을 내세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옆에 있는 무화과 잎을 가져다가 그들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다.
그것이 바로 죄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이후에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횃불 언약을 맺으셨다.
내가 너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고 하신다.
그에게 주신 횃불 언약은 언약의 당사자가 쌍방이어야 하지만 하나님 혼자서 그 언약을 책임지겠다는 일방 언약 곧 편무언약이다.
아브라함이나 그의 자손이 어떠하든지, 나 여호와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을 넘어 이삭과 야곱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나아가 영원한 언약이 된다.
(시 105:9-10)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고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하여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영원한 언약으로 성취하셨다.
하지만 그 일을 이루시는 과정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자손인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기 원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부르신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애굽으로 들여보내시고 또한 그곳에서 고통과 환난을 당함으로 다시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 시키신다.
그 출애굽 할 때 그들과 시내산 언약을 맺으시며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을 천명하신다.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열방을 구원하기 위한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이 잘 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줄 착각하며 아담과 같이 자기들의 잘남과 의 그리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과 맺은 시내산 언약 등 옛 언약을 폐기하시고 전혀 새로운 새 언약을 체결하신다.
그것이 예레미야에게 주신 새 언약이다.
(렘 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라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옛 언약의 특징은 철저히 언약의 당사자인 내가 그 율법을 지켜야 했다면 새 언약의 특징은 나의 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나를 용서해 주신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누가 여호와를 알라고 하지 않아도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주님을 알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주님을 아는 것이다.
그것이 전제될 때 주님이 우리를 사하시고 영생으로 인도하신다.
주님을 아는 것이 조건이 되는데 주님을 아는 것이란, 날마다 주님과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이다.
주님과의 교제 없이 주님을 알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날마다 주님의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하여 알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횃불 언약의 연장선에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새 언약이 나오고 그 새 언약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우리를 위하여 붓는 잔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하나님이신 아들 그리스도께서 지시고 속량하신 것이다.
이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뜻인 영생을 얻는다.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당신 스스로 일하실 수 있으시다.
하지만 당신의 일에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와 함께 하기를 열망하신다.
거기에 부름 받았던 유대인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고 자존심을 드러내며 하나님을 찾는 것처럼 보였으나 자기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 노릇을 하고, 심지어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이 그런 유대인들에게 죽임 당한 것처럼 보이며 그들의 승리로 보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여자의 몸을 통하여 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공의로 율법 아래 있게 하시어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이다.
그 십자가의 죽음은 마치 세상에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진짜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승리다.
복음의 진수는 유대인들이나 세상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이는 하나님 자신이요 또한 나다.
(행 2:23) 그(예수)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부르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아니라 어기는 자가 될 때 오히려 그들의 대적을 통하여 그들을 심판하기도 하신다.
그것이 애굽의 노예가 된 것이며, 또한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일하실 수 있다.
이스라엘의 손을 빌리지 않더라도 언약궤를 블레셋에 넘기심으로 언약궤를 떠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언약궤로 돌아와 그 언약궤를 통하여 블레셋을 놀라게 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이스라엘을 위함이지, 결코 블레셋을 위함이 아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열정이 그렇게 하시는 것이다.
나는 나의 죄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아주 죽이지 않으시고 염소의 자리에서 양의 자리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사망의 자리에서 구원의 자리로,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신 그 은혜 앞에 그저 머리를 조아릴 뿐이다.
내게 주신 그 은혜가 너무도 크고 귀하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은혜는 너무도 크고 귀하여 측량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하여 허블망원경으로 우주를 보고 관측한다 한들 그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을 어떻게 다 알 수 있으리요?
그저 나는 먼지요 티끌에 불과한 자입니다.
나의 이름은 없음 곧 아벨입니다.
없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내려 놓았떤 아벨은 그토록 사랑하셔서 일찍 불러가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아는 자로 서게 하소서.
오늘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빌 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하지만 이 땅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하여 육신으로 있는 것이 더 유익한 줄 알기에 나를 주님의 뜻대로 행하게 하소서.
나의 남은 날들이 주의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날 받아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