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건국 과정과 어떤 미망인의 눈물 .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 - 역사를 공부해야 망신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탄생은 유엔에서 찬성48 반대6
기권1로 탄생함, 나라가 건국된 후에는 유엔(UN)에 인준을 받아야만 전 세계에 ''출생 신고''를 하는 셈 입니다.
1948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건국을 합니다. 북한은 이듬해 9월 9일에 건국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북한
은 유엔(UN)에 인준을 받고자 팀을 꾸려서 파리로 향합니다. 그 당시 국무총리 장면 외 4명이 유엔(UN) 인준을 받
기 위해 파리에 도착을 합니다. 1948년 12월 12까지가 마지막 인준이 되는 날입니다. 11일 첫날부터 공산국가들의
''의사진행 방해안''이 시작됩니다. ''미군의 앞잡이 이승만, 독재자 이승만'' 등 등 2시간씩 소련, 헝가리, 동독, 체
코 등으로 시간 때우기 작전에 11일 날은 시간이 다 지났습니다. 다음날 12일에 인준을 못 받으면 우리나라는 출생
신고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장면 총리는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함께 간 팀원들과 함께 교회를
찾아갑니다. 팀원 중 한 사람은 무릎관절이 심각히 아픈 상태였음에도 밤을 새워 4명과 함께 눈물로 기도를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승만 대통령께서 전국에 교회에 기도 부탁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께서도 밤 세워 기도를 합니
다. 다음 날 12일이 되어서 또다시 공산 국가들의 ''의사 진행 방해안''이 시작됩니다. 소련, 헝가리, 동독,
체코 순으로 ''의사 진행 방해안''이 시작이 됩니다. 소련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시작을 합니다. ''코리아
이승만은 미국 앞잡이고 독재자고''라고 하다가 갑자기 목에 결절이 와서 숨을 못 쉬고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갑니
다. 2시간 ''의사 진행 방해안''으로 알고 느긋하게 다른 데 가서 커피 마시고 즐기는 헝가리 대표는 소련 대표가 병원
에 실려간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회자가 ''코리아 건국 인준에 관하여 다시 발언이 없습니까''라고 하였
으나 커피 마시고 있던 헝가리 대표는 깜깜 무소식이었습니다. 드디어 가, 부를 결정하는 표결을 하게 되어 찬성 48
반대 6 기권 1으로 우리나라의 출생 신고 유엔(UN) 인준을 받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반대로 반대 48 찬성 6 기권 1으
로 유엔(UN) 인준에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후 2년 6개월 만에 북한 공산군이 남침을 하게 되었고 유엔이 인정한 나라
이니 유엔이 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짚어보면 참으로 기적적으로 이 나라가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탄생은 눈물의 기도가 있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엔(UN) 인준도 못 받은 북한 공산군이 남침을 하여
동족 간에 수많은 피 흘림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순국 선열과 호국 영령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와 자유 대한민국을 잘
보존하고 사랑하겠다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하느님이 보우 하사 우리나라 만세!!
어떤 미망인의 눈물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비둘기가 날고 성화가 타오른 다음 애국가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을 때 이를
보고 있던 서양 할머니 한 분이 수건으로 눈 가장자리를 닦고 있었다. 왜 한국 애국가를 듣고 서양 할머니가....하는
의문이 생김직 하다. 이유없이 울 수는 없는 법이다. 할머니 나이는 당시엔 70세, 국적은 스페인, 이름은 롤리타 탈
라벨라 안. 1936년 8월 1일, 나치 치하의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이 끝나고 일장기를 단 한국 선수 김용식, 이규환,
장이진, 손기정, 남승룡 등이 모여읹아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재독동포 한 사람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억센
평안도 사투리로 자신이 지었다는 '조선 응원가'를 불러주겠다면서 구깃 구깃한 악보 하나 꺼내 들고 손짓, 발짓,
고갯짓으로 장단을 맞추어 가며 그 노래를 불렀다. 그 조선 응원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그런 일이 있은 지 보름 후에 마라톤의 손기정 선수가 제1착으로 경기장
안에 뛰어들자 스탠드 한쪽에서 돌연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서너 명의 재독 동포 앞에서 미치광이처럼 두 손을 저으며
지휘 하고있는 이는 바로 보름 전에 조선응원가를 불러주던 바로 그 젊은이였다. 그 젊은이가 바로 안익태였던 것이다.
그는 베를린 올림픽 두 달 전에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조선애국가의 작곡을 완성하고 있는데 올림픽에 조선
선수들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응원가로 임시변통을 한 것이다. 이 애국가를 짓게 된 동기는 이렇다.
그가 미국 커티스 음악 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었을 때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인 교회를 들른 일이 있었다.
그교회에서 부른 애국가 곡조가 이별할 때 부르는 슬프디 슬픈 스코틀랜드 민요였다. 슬픔을 이겨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애국가 곡조가 절실하다고 생각한 그는 전세계 40여개 국가를 수집-검토해 가며, 5년 만에 지어낸 것이 베를린
올림픽개막식에서 처음 불렀던 바로 그 애국가인 것이다.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정식국가로 채택되었을 때 안익태
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런 편지를 띄웠다. "이 애국가는 본인이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본인은
다만 하나님의 영감을 대행한 것 뿐입니다." 77년 전 나라 없이 출장한 올림픽 개막식에서 처음 불렀던 그 노래를- 지금
은 별세하고 없는 안익태씨 미망인 롤리타 탈라벨라 안 여사가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어찌 눈물없이 들을 수 있
었겠는가. 개막식의 애국가는 우리 민족 모두가 울먹였어야 했던--- 그때와는 질이 다른 애국가였던 것이다.
이렇게 소중한 "애국가" 대신 "임의 행진곡"을 부르는 놈들과 단체가 있다면서요 ? 빨갱이들 !
ㅡ 이 원 문 님 께서 주신 안내 글 자료 ㅡ
넷 향기(向基) 이사장 : 최종찬 장로 올림 ( HP 010 - 6361 - 2625. ☎ 02) 391 - 2625 )
첫댓글 북한을 인정하는 남한의 좌빨들 대단해요...정신병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