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VB
에는 속죄염소(scape-goat)로 표기되었는데 ‘scape’는 ‘escape’로 ‘달아나다’ ‘도망하다’ ‘탈출하다’란 뜻인데
이것을 ‘scape goat’로 표기하면 속죄염소라고 표기한다. 히브리어의 ‘아사셀’이란 뜻은 ‘미치’(Mitch)의
글(레위기의 3대절기-생명의 서신 출판)에는 ‘에즈’(ez)라는 글로 ‘양’이란 뜻과 ‘떠나다’ ‘내쫓다’라는 뜻의
‘아젤’(Azal)의 결합어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과거 고대 성경들중 셉투긴트(Septuagint) 성경과
벌게이트(Vulgate) 성경 등은 ‘아사셀’을 문자 그대로 ‘떠나는 양’으로 표기를 하였다. 또 다른 학자들
브라운(Brown)이나 드라이버(Driver), 브릭스(Briggs)등은 아람어의 ‘추방하다’ ‘제거하다’의
‘아젤라’(Azala)와 아사셀(Azazel)을 연계시킨다. 그러므로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곧 ‘내어보내는 염소’ ‘제거하는
염소’라는 뜻이 된다. 여기에 KJVB에 속죄 염소(scape goat)로 표기되었으나 정확히는 Escape goat 즉
‘도망시키는’ ‘쫓아내는’ 즉 ‘제거하는 염소’, ‘내어보내는 염소’ 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제 ‘아사셀’(제거하다) 염소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의 피흘린 후에 행할 규례였는데 “피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히9:22)는
법칙에 따라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한 마리의 흠 없는 염소가 첫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둘째는 “죄의 형벌을
위해” 즉 “공의로움의 성취”를 위해 피흘려 죽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전 인류가 저지른
죄값의 형벌로 “공의로움의 성취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희생하셨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온 인류는 함께 정죄받아 함께 죽어
장사됨으로 죄에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형벌은 완전하고 만족하게 성취된 것이다.
예
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으로 모든 죄의 사망을 끝내셨다.(고전15:45) 하나님의 형벌을 모두 담당하셔서 세상의
죄(요1:29)에 대한 형벌이 종결되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뜻이 충족되었기 때문에 이제 두 번째 ‘아사셀’ 즉 백성들의 죄를
제거해버리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를 위한 염소”에게는 죄를 넘기는 안수나 죄를 고백(confess)하다는
명령이 직접적으로는 주어지지 않았다. 반면 ‘아사셀’ 염소에게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와 죄들을 아론이 살아있는 ‘염소’ 머리
위에 두 손으로 안수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불의(the iniquities)와 허물들(transgressions)을 고백한 후
미리 정해놓은 사람에게 맡겨 광야 (시나이 사막) 무인지경에 풀어놓아버린다.
그
러므로 두 번째 ‘아사셀’ 염소는 결코 죽어서는 아니된다. 왜냐면 이미 여호와를 위한 염소가 죽었기 때문이다. 죄의 삯으로 죽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백성들은 같이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죄의 삯인 사망이 지불되었기 때문에
죄값으로 두 번 죽을 수는 없다. 우리의 죄들이 시내산 같이 많고 높이 쌓여있을지라도 그 값의 몫은 목숨이 한 번 죽음으로
갚아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모든 인류의 죄값을 충분이 짊어지고 형벌을 받으신 것이다. 때문에 두 번째 아사셀 염소는 죄를
넘기되 피흘림은 없기 때문에 멀리 내어보내어 죄를 제거(아사셀)하게 되는 것이다.
“아
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있는 염소의 머리 위에 안수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범죄들과, 그들의 모든 죄들 가운데 저지른
그들의 죄악들을 그 염소에게 고백하고, 그 죄들을 그 염소의 머리 위에 얹어서, 한 적합한 사람에게 맡겨서, 그 염소를 광야로
보낼지니, 그 염소가 그들의 모든 죄악들을 짊어지고서,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풀어줄지니라.”(레16:21-22)
아사셀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는 ‘제거되었다’는 그림자이며 교훈이였다.
아
사셀로 제비뽑힌 염소는 다른 염소가 비명을 지르고 죽을 때도 살아있다. 그 다음 피를 뿌린 후에 살아있는 염소의 머리에 대제사장
아론이 두 손으로 ‘안수’한다. 안수는 피안수자(염소)와 백성의 대표자인 아론과 동일성(Identity)을 의미한다. 즉 하나가 된
것이다.
세
례 요한은 레위지파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이였다.(눅1:5) 요한의 나이 30세에 광야에서 사역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고,
예수님께서 30세 시작 때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다.(눅3:3-23) 침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육개월 먼저 출생하였다. 마지막
율법으로 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이신 예수님에게 안수하여 세상 죄를 고하기 위함이였다. 그리고 둘이 물에서
올라올 때 세상의 모든 죄는 예수님께 넘겨졌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의 죄를 지고 가져가신 하나님의 그 어린양이시로다.”(요1:29)
그
죄 때문에 희생하셨던 예수님은 죄인들을 ‘의롭다’ 선언하시기 위해 부활하심으로 예수님 안에서 모든 인류의 죄는 찾을 수 없게된
것이다. 왜냐면 백성들의 죄를 짊어진 아사셀 염소가 무인(無人) 지경으로 사라졌기(아사셀-제거되었기에) 때문이다. 피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지성소에 일곱 번 뿌려졌고(레16:14-16) 부활하신 예수님은 죄를 짊어지고 사라져버린 아사셀이 되신 것이다.
무인지경으로 사라진 염소는 어떤 사람의 눈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골고다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정녕 하나님의
아들이셨고(마27:54) 정녕 의인이셨다.(눅23:47) 그러나 부활하신 이후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기에(벧전1:3) 우리는 정녕
의인이 되었다.(롬3:25, 28, 3:24, 5:1-9)
우
리의 죄가 사해진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였다. 그러나 우리가 의인된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두 염소, ‘여호와를 위한 염소’와 ‘아사셀’(죄를 제거한 염소)을 위한 염소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속에서 완전히
성취된 것이다.
이
제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죄를 짊어지고 사라졌기 때문에 죄가 보이지 않아서 의로워진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위한 염소가 피를 흘렸기 때문에 아사셀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셔서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죄들이 제거된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여호와를 위한 염소가 속죄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첫댓글 설교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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