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된장 10킬로그램을 담가 항아리에 넣고 현관 앞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성당에서는 매년 교우 할머니들이 정성껏 담근 된장을 판매하신다. 작은 병은 20달러, 큰 병은 40달러였다. 그 수익은 성당 운영을 위한 귀한 기금이 되지만, 내게는 된장을 사 먹는 일이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자베스 자매님이 직접 담그신 된장을 작은 짜장소스병에 담아 건네주셨다. 시판 된장과는 달랐다. 깊고 구수한 향 속에 손으로 만든 시간과 정성이 느껴졌다.
나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수박 반 통과 내가 만든 춘천식 매운 닭다리살 조림, 싱싱한 로메인 상추 세 포기를 나누어 드렸다.
작은 된장 한 병이 내 삶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었다.
‘내가 먹는 된장은 내가 담가야겠다.’
자매님께 방법을 여쭈었다. 생각보다 재료는 복잡하지 않았다. 기존의 된장에 메주가루와 삶은 메주콩을 섞어 다시 발효시키는 덧된장이라는 방법이었다.
지난주 H마트에서 메주가루와 메주콩을 사 두었다. 어제 콩을 불리려고 김치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오래전 사 두었던 콩이 눈에 들어왔다. 물에 담근 콩은 천천히 몸을 불리며 어린 시절 보았던 장독대의 기억을 불러왔다. 불어난 콩은 8킬로그램쯤 되어 보였다.
메주가루는 1킬로그램, 집에 남아 있던 된장을 꺼내 보니 600그램 정도였다.
고추장도 담가야 하기에 필요한 재료들을 하나씩 준비해야 한다. 내일 미사 가는 길에 장에 들러 작은 고추장 항아리도 찾아볼 생각이다.
콩을 삶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묵은 콩이라 그런지 껍질이 콩나물 콩처럼 우수수 벗겨져 나왔다. 하나씩 골라내다가 지치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이것도 콩에서 나온 것인데, 함께 품어도 괜찮지 않을까.’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 익어가는 것이 발효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집에서 가장 큰 냄비와 압력솥에 나누어 콩을 삶았다. 처음에는 센 불로 끓이다가 불을 줄이며 몇 시간을 기다렸다. 콩물이 몇 번이나 넘쳐 바닥을 닦아야 했지만, 그 시간마저도 된장을 만드는 과정의 일부였다. 스테인리스 보울 제일 큰 거에 삶은 콩을 옮겨 담았다. 매우 뜨거워서 식히면서 절구 방망이로 찧었다. 충분히 식힌 후 집에 있는 가장 큰 플라스틱 대야에 옮겨 메주가루와 기존의 된장을 조금씩 넣고 계속 절구로 으깨는 동작을 반복했다. 그리고 큰 나무주걱으로 천천히 섞었다.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만지는 일이었다.
콩을 삶아서 으깬 것, 메주가루, 기존 된장과 조금씩 간을 보아가며 콩물에 탄 바닷소금을 넣어 충분히 섞어 주고 식힌 뒤, 어머니가 보내주신 항아리를 꺼냈다.
어린 시절 흑석동 집에서부터 어머니 곁을 지켜온 항아리 두 개 중 작은 항아리였다.
오랜 세월을 건너 내 손에 온 항아리를 깨끗이 씻었다. 햇볕 아래 말리고, 다시 집 안으로 가져와 따뜻한 바람으로 한 번 더 정성을 들였다.
어머니의 시간이 담겨 있던 항아리에 이제는 내 시간이 담긴다.
정성껏 섞은 된장을 항아리에 꾹꾹 눌러 담았다. 된장이 공기와 맞닿는 면에는 바닷소금을 조금씩 뿌려 주었고 말린 넓적한 다시마 두 장도 올려 된장의 반 정도의 표면을 조용히 지켜 주게 했다. 그리고 된장 항아리 뚜껑은 얇은 종이로 덮어 통풍이 되게 했다.
이제 두 달 정도 실내에서 기다린 뒤, 10월 말쯤 포치로 옮겨 겨울을 나게 할 예정이다.
긴 겨울을 지나 내년 봄이 오면, 이 된장도 깊고 따뜻한 맛을 품게 되리라 믿는다.
메주를 구하기 어려운 미국 생활이라 메주 대신 메주가루를 사용했다. 완벽한 전통 방식은 아니지만, 이 땅에서 내가 이어가는 작은 한국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된장은 기다림으로 완성되는 음식이다.
콩이 오랜 시간을 지나 된장이 되듯, 사람도 아픔과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깊어진다.
돌아보면 나 역시 긴 시간을 지나왔다.
상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시간들이 천천히 발효되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삶도 된장과 닮았다.
서두른다고 깊어지지 않고, 시간을 견딘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향이 있다.
첫댓글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만지는 일"이었다.
공감함니다.
증학교 때 부터 청년의 때까지 자취생활을 하며,
또 아내의 읔식조리의 공력을 보면서 음식은 정성이다
라고 느끼고 있네요.
스타님에게 된장만드는 일은 많은 의미가 있군요.
하긴, 어느 집이나 된장이 음식의 기본이지요.
잘 익어가길
교장 선생님, 따뜻한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결국 시간을 담고 마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이번 된장 담그기는 저에게도 음식 이상의 의미로, 기다림과 정성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잘 익어가는 된장처럼 저도 삶과 글이 조금씩 깊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늘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는 요즈음 젊은 세대를 위해 된장,고추장 담그는 것
쉽게 잘 나와 있습니다..설명서대로 하면 됩니다..
주로 정월달에 장 많이 담급니다..직접 담근 것이라 더 맛있는 것 같아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