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0. 나무날(목요일). 날씨: 바람은 없는데 쌀쌀하다.
[아이의 속도로 피어나는 배움 – 페레와 방정환]
아침에 차를 끓이는데 어제 남은 비빔밥이 눈에 들어왔다. 남은 밥은 보통 누룽지로 만들어 새참으로 먹곤해서 어제도 누룽지를 만들었다. 아침마다 학교에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아침을 뭐 먹었는지 묻고 있는데, 오전 새참이 필요할듯 싶어 기름을 두르고 누룽지를 만들었다. 모든 모둠마다 배달을 했는데 아이들이 잘 먹어서 좋다. 밥선생님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이 있다. 내려놓은 차를 드리니 반가워하셨다. 교사실에서 감을 깎았다. 1학년 아이들이 모여들어 어찌나 감을 먹는지 깎는 손이 바쁘다. 서아는 부모님과 서울로 여행을 간다고 좋아했다. 모둠마다 공부를 둘러볼수록 한 해 배움을 갈무리하는 손길, 눈길이 야무지다. 애쓰는 어린이들이 자랑스러웠다.
낮에는 2,3학년 통합 수학 공부를 이끌었다. 오전에 2학년 윤건이가 종이접기를 어찌나 친절하게 가르쳐주는지 감동했다. 그래서 종이접기 선생님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더니 해주겠다고 해서 고마웠다. 덕분에 도형 공부가 자연스러웠다. 네모와 세모, 동그라미 이야기를 아는 어린이들이라 종이 접기가 재미난 수학 활동으로 충분했다. 윤건이가 종이접기를 가르쳐준다고 미리 연습을 하는 게 수업 채비하는 선생과 똑같았다. 기다리는 동안 내가 준비한 종이접기를 먼저했다. 사각형을 접어서 삼각형을 찾고, 다시 사각형을 찾았다. 접어서 가위로 오려가며 대칭을 만났다. 위아래 상하 대칭, 왼쪽 오른쪽 좌우 대칭이란 낱말을 익히고 멋진 작품들을 2층 마루 창문에 모두 붙였다. 앙리 마티스 할아버지가 좋아할만한 작품이라고 했더니 누구냐 묻는다. 조만간 마티스 작품 전시로 어린이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야겠다.
두 번째는 멋진 덮개있는 종이 배 만들기가 어린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서로 도와가며 배를 완성했다. 수학의 영역 가운데 대칭과 균형, 도형을 만나는 활동으로 다들 만족했다. 자연에서 줄곧 찾아내고 생활에서 연결하는 활동이 이어져야 한다.
드디어 연습을 마친 이윤건 종이접기 선생님 시간이 되었다. 시간이 부족했지만 소율이 누나에게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모습이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호기심 많고 관심많은 어린이가 집중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깊은 울림이었다. 배움을 스스로 기대하고 스스로 가르쳐보고자 애쓰는 어린이의 모습, 그러한 자발성과 집중의 힘은 누가 시켜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에너지다. 그 에너지에 기대어 수업이 흐르고, 선생은 그 옆에서 조심스레 길을 열어줄 뿐이다.
4학년 마침회를 이끌었다. 하루 공부를 되돌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어린이들 리코더 연주는 늘 아름답다. 고마운 이야기와 부탁하는 이야기는 서로의 생각을 자라게 하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장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풀어내는 마침회에서 어린이들은 말하는 사람 눈을 보고 귀기울에 듣고 부드럽고 뚜렷하게 말하는 듣기와 말하기, 마음 읽기와 마음 나누기의 힘을 쌓아간다. 다른 모둠 교실 들어가는 규칙, 놀이하다 몸 쓰고 사과받은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니 어린이회의때 큰 이야기가 될 듯 하다. 마침회에서 아이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하고, 몸을 부딪히던 놀이 속에서 생긴 감정을 가만히 꺼내어 보는 장면들은 늘 배움을 넘는다. 아이들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듣는 순간은 말로 배운 것이 아니라 살아서 익히는 ‘인간됨’의 공부다.
교육활동을 마치고 교사들이 하루를 되돌아보는 교사마침회는 어린이들을 살피고 관계를 들어다보며 어린이 삶을 가꾸는 선생의 삶을 성찰하는 장이다. 어제 교육공동체 식구들이 들려주신 솔직한 말씀들 덕분에 어린이를 사랑하는 방법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교사의 말과 행동, 눈빛, 태도를 모두 꺼냈다. 안식을 마치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오면서 쓴 교사의 기도를 떠올렸다.
하늘이시여
부디 반성하고 성찰하는 힘으로 교사로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던 스페인의 자유교육 사상가 프란시스코 페레와 어린이날을 만들어 어린이 인권의 감수성으로 어른들의 잘못을 꾸짖은 방정환 선생이 떠올렸다. 페레는 진정한 교육자는 아이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아동 스스로 안에 있는 에너지에 기대어 배움을 돕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라 한 명의 온전한 사람, 그 생각과 감정, 표현을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방정환의 정신을 실천하는 교사로서 과연 그리살고 있는지 현재의 인권감수성을 짚어볼수록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성찰은 반성이고 나를 바꾸어내려는 의지이다. 아이의 속도를 기다리고, 아이 안의 힘을 믿고, 아이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 프란시스코 페레가 말한 ‘강요하지 않는 교육’, 방정환이 꿈꾸었던 ‘어린이의 권리를 존중하는 나라’가 맑은샘의 교육 철학이자 교사의 꿈 아니던가.
아이의 안에 있는 힘을 믿으며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삶이 가장 깊은 교육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