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모습같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은 햇빛의 기울기에 따라서 관능적인 여인의 몸같이 둥실 떠오르기도 하였고 혹은 찾는이 하나 없는 버려진 삭막한 무덤의 홍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곳은 한낮에는 지옥불같이 이글이글 타오르며 생명수를 바짝 말렸고, 한밤에는 사막과 이어진 밤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시퍼런 별들이 냉냉한 공기를 얼리는 날들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심술궂은 어느날은 심한 모래폭풍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눈깜짝할 사이에 냉큼 삼키고 절대 토해내지 않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불시착한 야간비행사와 작은별에서 건너온 어린왕자가 밤새워 세상이야기를 나누던 곳…
선홍빛 사막위로 하얀머플러는 휘날리는 한 여인을 태운 남자가 날고 있었다. 남자는 이제 죽어서야 온전히 자신의 아내가 된 여자를 안고 바람이 흩날리는 모래언덕을 딛고 내려오며 울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동굴벽화가 있는 사막에서 홀로 쓸쓸히 죽은 여자는 바로 그의 세상전부였으므로…
끝없이 막막한 사막위로 폭염에 휩싸인 비행기가 폭발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영국인 여자와 그녀를 살리기 위해 영국인이 되기를 염원했으나 실패한 남자의 이야기가…
2차 대전의 막바지... 이태리 수도원에 마련된 야전병원.
신원을 알 수 없는 화상환자가 불현듯 손때묻은 헤로도투스의 <역사>와 함께 실려왔다.
죽음이 일상다반사인 야전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는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간호사 한나는 ‘영국인환자’라고 불리는 그를 모른체 할 수가 없었다.
어리석은 일일지 몰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모두 떠나보낸 자신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그라면 마치 알아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떠난 엄마는 운명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알거라고 했지만 가족처럼 허무하게 그가 죽는다면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우습게도 겨우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는 ‘영국인환자’가 되었다. 온 세상을 대가로 치르고서라도 얻고 싶었던 이름을 말이다.
그의 이름은 헝가리인 알마시 백작.
부유했고 지적이었기에 세상을 바람처럼 자유롭게 흐르며 사랑도 이념도 이 전쟁조차도 그에게는 중요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국경도 모호하고 이념도 모호한 북아프리카의 사막지역이야말로 그가 좋아하는 지도를 만들며 머물기에 퍽이나 적당한 곳이었다.
어느날 사막과 경비행기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열정적인 캐서린이 벼락처럼 그에게 던져져 오기 전에는 말이다.
물, 물고기, 수영, 목욕.. 을 좋아하고 조금 망설이며 남편도 좋아하며 싫어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대답하는 그녀에게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소유라고 투박스레 대답하지만 이미 그의 소유욕은 시작되고 있었다.
죽음이 얼마남지 않은 알마시.
이제는 유일한 친구인 한나와 그를 증오하며 복수를 위해 찾아 헤매던 카라바지오가 수도원 병원에 나타나자 고백성사를 해나가듯 사랑과 비켜갈 수 없던 비극적 종말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막으로 돌아가야 했소.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았어….
내가 죽인 건지도 모르지.
내가 죽인 건지도… 그래요 그녀는 나 때문에 죽었소.
내가 사랑했기 때문에 그리고 내 이름 때문에…”
북부 사막지대의 지형도를 작성하는 일을 하던 알마시는 경비행기 광인 영국인 귀족 제프리와 그의 아내 캐서린을 만났다.
이미 결혼한 캐서린을 사랑하는 것은 파국을 예고하고 있었지만 그로서도 캐서린도 결코 돌아설 수가 없었다.
이윽고 캐서린의 남편 제프리는 둘의 관계에 분노하고 가장 고통스런 방법으로 그들의 사이를 벌주면서 끝내려고 하였다.
모두의 파멸…캐서린을 비행기에 태운채 알마시를 향해 돌진해 버린다.
제프리는 죽고, 알마시는 크게 다친 캐서린을 동굴로 옮기며 절절한 약속을 건넨다.
“3일을 걸어서 사막을 건너 3시간만에 당신을 데리러 오리다. 꼭 기다려야 하오”
동료 매독스가 "전시엔 사막지도를 소유하는 것이 사막을 소유하는것"라는 말에 "사막을 소유한다고?"하며 콧웃음쳤지만 캐서린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이 따위 지도도 선악도 이념도 수천수만의 목숨도 그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헝가리식 이름때문에 독일스파이라며 그를 외면한 영국군대신 알마시는 독일군에게 자신의 사막지도를 넘겼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캐서린의 생명을 구할 비행기뿐이었으므로…
하지만 겨우 동굴에 돌아왔을 때 그곳에는 죽은 캐서린의 시신과 그녀가 헤로도투스 <역사>에 남긴 편지가 알마시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내 사랑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난 너무 추워요. 밖에 나갈수만 있다면 따뜻한 해가 있을텐데.. 우린 죽어요. 죽어가고 있어요. 많은 연인들이, 사람들이, 우리가 맛본 쾌락들이.. 우리가 들어가 강물처럼 유영했던 육체들이... 두려움이... 이 무서운 동굴처럼 우리가 숨었던 육체들이... 두려움이... 이 모든 자취가 내 몸에 남아 있다면 우린 진정한 국가에요. 강한 자들의 이름으로 지도에 그려진 선이 아니에요. 당신은 날 바람의 궁전으로 데리고 가겠죠.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에요. 그런 곳을 당신과 함께 걷는 것. 친구들과 함께.. 지도에 없는 땅을... |
영국인의 아내였으나 알마시 마음속에서 캐서린은 항상 그의 아내였다.
캐서린의 '쇄골절흔'부분을 '알마시해협'이라고 그녀의 몸에 이름을 붙이는 그 순간부터…
어쩌면 알마시의 자책처럼 영국군에게 영국귀족 제프리의 아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면 캐서린은 살 수 있었을까?
그것은 신만이 아실 일이다.
친구인 한나와 자신을 증오하는 카라바조에게 그들의 마지막에 대해 이야기를 마친 알마시는 한나에게 조용히 부탁을 한다.
뭉그러진 육신을 캐서린에게 데라다 달라고… 자신에게 이제그만 평화를 달라고…
한나는 알마시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녀 역시 알마시를 돌보면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기 때문에… 인도인 킵.
영국인의 전쟁에 붙들려 나와 매일매일 죽음과 폭력을 외투처럼 두르고 살지만 누구보다 따스한 남자…
킵은 한나를 사랑하지만 친구의 죽음에 슬퍼하며 떠날 때가 왔다며 한나와의 미래에서 등을 돌렸다.
그러나 한나는 알마시의 사랑과 종말을 통해 알 것 같았다.
전쟁중의 사랑은 자신의 고집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은 물처럼 흐르는 사랑을 할 것이다.
지금 손을 놓아준다면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인연의 끝에 자신이 서 있다면 킵이 반드시 돌아 올거라고…
“오늘밤 내가 당신을 찾아오지 않는다면?”
“안 기다리려고 애쓸거야...밤 늦게까지”
“당신에게 안 온다면?”
“무슨 일이 있어 못 오겠거니 생각할거야...당신은 낮엔 폭탄을 찾아 다니니까, 밤엔 누군가 당신을 찾아와 주길 바라는 걸 거에요. 그러니 내가 찾아주길 원해요?”
“나를 찾아주길 원해. 한나 당신이 나를...”
10월의 깊은 밤.
그가 4시에 온다면 내 마음은 3시부터 설레이리라 믿었던 시절과 자신에게 올 한나를 위해 하나하나 촛불을 길마다 놓아주던 킵의 마음과 사랑하는 여자의 시체를 안고 울부짖던 알마시 - 랄프 파인즈의 깊히 젖은 눈동자가 떠올려지는 밤이다.
첫댓글 예전에 좋은모습으로 기억되는 영화네요...사막을 가로지르는 프로펠러 비행기가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저도 흰 머플러가 날리던 그 사막위의 경비행기의 비행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요.
물고기자리님~~ ^^ 오랜만에 영화 이야기 올려 주셨네요~~ 정말 덕분에 멋진 영화 감상 아주 잘 했어요~~ ^^
점심 식사 후에 나른 했었는데, 물고기자리님 덕분에 멋진 영화 한편을 잘 보았네요~~ *^^* 고맙습니다~~ ^^
아코~ 크레커님도 아마 보신 영화이셨을 듯... 파란달님이 영화리뷰좀 올리라는 채찍질에...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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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 역시 다정한 댓글...울 정우야님.. 항상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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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투아레그족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대단히 호전적이지만 한번 정을 주면 그 친구에게 신의를 지키고 끝까지 지켜준다네요.
간만에 기다리던 글 읽어봅니다.^^ 역쉬~~~^^
기다려 주시기까지 했다니 감사해요. 좋은 가을날 되세요.
오래전 사랑한 사람과 본 영화네요...^^ 감사합니다...
사랑한 사람과 함께 보셨던 영화면 더 잊혀지지 않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