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는 썼다. "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과 당신이 한 행동을 잊지만. 당신이 그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했는가는 잊지 않는다". 나 자신이 실제로 누구인가는 감추거나 꾸미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드러내며. 내가 주장하는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행동이 나에 대해 가장 잘 말해 준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인가? 그것이 가장 진실된 나의 모습에 가깝다. 어느 작가가 영국의 시골 마을을 여행하다가 그 지역의 나이 든 농부들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노인들은 열 사람의 농부가 쟁기질을 한 넓은 밭을 둘러보면서 누가 어느 구역을 쟁기질했는지 정확히 알아맞첬다. 조금씩 다르게 쟁기질한다고 해서 수확량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왜 그 점을 중요하게 여기느냐고 묻자. 농부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 이랑의 모습이 그 사람 자신과 마찬 가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가는 그 말의 의미를 단순히 밭이 아닌 삶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신은 우리의 말을 들음으로써가 아니라 행위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를 신뢰한다. 내가 설명하지 않는 것을 내 삶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는 '코람 데오' 를 이야기한다. 즉 '신 앞에 선 단독자인 너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이다. 신 앞에서는 어떤 가면으로도 본연의 모습을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코끼리와 개미가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처음에는 개미가 술래가 되어 코끼리가 숨었는데. 몸집이 커서 금방 발각되었다. 이번에는 코끼리가 술래가 되자 개미는 코끼리가 들어올 수 없게 작은 사원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하지만 코끼리는 쉽게 개미가 숨은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 개미가 평소의 행동대로 신발을 벗어 놓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