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무슨 일로 광주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망월동에 처음 가보았다
그 정말 하늘도 땅도 바라볼 수 없었다
망월동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망월동에서는 묵념도 안했는데
그 진작 망월동에서는 못 본 것이 보여
죽을 일이 있을 때는 죽은 듯이 살아온 놈
목숨이 남았다고 해서 살았다고 할 수 있나
내 지금 살아있음이 욕으로만 보여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
/ Exemplum in memoriam Kwangju
(표본, 광주를 추모하며)
제작시기 : 1981년
작곡가: 윤이상(Isang Yun, 1917~1995)
초연 : 1981년 5월 8일 쾰른, 와카스기 히로시 지휘, 쾰른 서부독일방송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 작품은 1981년에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해 작곡된 교향시이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소식을 접한 윤이상
작곡가 윤이상은 냉전의 시기에 한국과 같이 분단의 문제를 겪고 있던 독일에서 활동한 작곡가이다. 그는 1963년 고구려 고분 벽화를 직접 보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가 1967년 한국정보부에 의해 서울로 납치되는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으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윤이상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는데, 유럽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과 독일연방공화국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항의하여 복역 2년 만에 석방되었다.
1968년 11월 동백림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이상(사진의 맨 오른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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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가토우에 있는 윤이상의 묘/ⓒ Assenmacher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오늘날 한국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민주화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사건은 1980년 5월 18일 오전 9시 경 전남대 정문에서 학교 출입을 저지당한 학생들과 전남대에 진주한 7공수여단 33대대 병력 간의 충돌로 시작되었다. 곧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시위대 1천여 명이 광주 시내 금남로에 집결하자, 이들 시민세력을 저지하기 위한 시위 진압의 과정에서 군의 무차별 폭력이 가해졌고, 수많은 시민들이 군사 정권의 폭력에 목숨을 잃었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를 모를 만큼 광주는 그렇게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아픈 기억을 가진 도시로 남게 된 것이다.
이후 당시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인의 자유를 정치적인 이유로 탄압하는 한국정부를 맹렬하게 비난했고, 이 사건은 윤이상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평소 자신의 조국,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깊은 관심과 한국의 전통문화로부터 자신의 예술세계에 강렬한 뿌리를 두고 있었던 윤이상에게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은 그가 곧바로 이 곡을 쓰게 했던 원동력이 되었다. 윤이상은 서독 쾰른의 WDR 방송의 위촉을 받아서 이 사건을 음악작품으로 형상화시켰다(1981). 당시 세계적인 작곡가 반열에 오른 윤이상은 예술작품을 통해 전세계에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상을 알렸던 것이다.
광주 망월동 묘역 /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민중의 분노와 슬픔
〈광주여 영원히〉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체 20여분에 이르는 이 작품에서 8~9분 정도에 해당하는 길이의 첫 부분은 민중들이 서서히 분노로 봉기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전체 오케스트라는 유니즌으로 이 거대한 힘을 제시한 다음, 미끄러지는 음들과 트릴을 가진 음형, 금관악기의 리드미컬한 셋잇단음표와 격한 움직임을 보이는 목관악기가 곡의 전반부를 이끌고 나아간다. 계속해서 음악은 힘을 응축하게 되는데, 여기에 이들을 억압하는 세력이 개입하게 된다. 이 장면은 결국 군부 정권의 대량 학살 장면으로 이어진다. 공격적인 리듬으로 된 무질서한 슬라이딩 톤이 이 부분의 특징이 된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군인들의 무차별 총기 난사와 폭발음들을 묘사하는 듯한 음향을 듣게 된다. 작품의 두 번째 섹션은 ‘라멘토소’이다. 이 부분은 긴 지속음과 리듬적인 파동으로 시작하여 그 위에서 관악기들이 하나의 톤 클러스터(tone cluster)를 형성한다. 여기에 때때로 첼로 솔로가 가세하기도 하고 현악기 전체 역시 하나의 클러스터를 형성하며 참여한다. 이 악기들의 미끄러지는 듯한 ‘한숨음형’은 죽은 자들을 위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과 애도를 표현한다. 음악은 다시 호른 콜과 행진곡 리듬을 통해서 단호하고 저지할 수 없는 힘으로 성장하여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민중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면서 마치게 된다.
'윤이상 등굣길'에 소리나는 피아노 계단 설치됐다.
(통영=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경남 통영시 명정동 서피랑 언덕에 실제로 소리가 나는 피아노 계단이 들어섰다. 2017.3.20 [통영시 제공=연합뉴스]
이를 계기로 벽화로 유명한 동피랑과 함께 서피랑도 통영의 명물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서피랑 일대는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등굣길로, 피아노 계단은 그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면서 관광자원화한 것이다.
서피랑의 144계단을 활용해 '높은 음자리표'를 형상화한 곡선형 계단으로 이 가운데 36계단은 5옥타브를 실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건반으로 만들어졌다.
시 관계자는 "서피랑 일대는 소리나는 피아노계단을 비롯해 '윤이상과 함께 학교가는길', 박경리 생가 일원의 서피랑문학동네, 서피랑공원 등 특색 있는 골목길과 공원으로 통영의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영(충무)은 박경리, 김춘수, 윤이상, 유치환, 전혁림(화가)등을 배출한 예술의 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