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유용 근절 어려운 후견인 감독
후견과 신탁 결합해 예방 가능
전문적인 재산 관리도 장점
임의후견, 후견인 미리 지정할 수 있어
윤서정 신한은행 신탁부 변호사Q. A 씨는 요즘 치매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치매 진단을 받은 친구의 아들이 후견인으로 지정됐는데, 후견인 지정 과정에서 자녀들끼리 분쟁이 심했고 지정받은 후에도 후견인인 아들이 친구의 재산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마음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A 씨는 치매에 걸릴 때를 대비한 좋은 방법이 없을지 궁금하다.
A. 고령의 고객들과 상담하다 보면 치매를 걱정하면서 후견인이 선임되더라도 후견인이 재산을 빼돌릴 것을 염려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후견인이라고 해서 아무런 제한 없이 마음대로 피후견인의 재산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견인은 가정법원과 후견감독인에 의해 감독을 받는다. 후견감독인은 임의 기관일 뿐 아니라 비용 문제로 모든 사건에 선임될 수 없다. 가정법원의 후견감독관 역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후견 사건이 몰리는 서울가정법원의 후견감독관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5명에 불과하다. 최근 3년간 서울가정법원에 계류하는 후견 감독 사건이 평균적으로 약 4250건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후견감독관 1명당 약 283건을 감독하는 셈이다.
이처럼 후견인에 대한 감독 제도는 감독기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 감독이 사후적이라는 면에서 후견인의 재산 유용 행위를 근본적으로 근절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를 사전적으로 예방하고 각각의 후견에 맞춰 좀 더 면밀히 감독할 방법은 없을까. 후견과 신탁을 결합한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후견은 피후견인이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게 됐을 때 법원의 절차를 통해 후견인을 지정하는 ‘법정후견’과 피후견인이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게 될 상황에 대비해 자신이 직접 후견인과의 계약을 통해 미리 후견인을 지정하는 ‘임의후견’으로 구분할 수 있다. 후견과 신탁을 결합하는 구체적인 절차는 법정후견인지, 임의후견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법정후견이라면 피후견인과 후견인, 신탁회사가 신탁계약 체결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신탁 가능 재산 및 신탁 재산의 관리·운용 방법을 정한다. 피후견인의 재산을 후견인이 모두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피후견인의 재산을 신탁회사에 맡겨두고 생활비 명목의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피후견인의 계좌로 입금하도록 한다. 의료비, 교육비 등 비정기적 명목의 비용이 필요할 경우 후견인이 관련 증빙자료를 갖춰 신탁회사에 요청하면 신탁회사는 비용을 직접 해당 의료기관이나 교육기관 등에 입금한다.
이 경우 후견인의 비위 행위는 사전적으로 차단된다. 물론 신탁재산의 사용 계획은 건별로 충분한 협의를 통해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 이렇게 피후견인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한 신탁계약서 초안이 작성되면 가정법원에 신탁계약 체결을 위한 권한초과행위 허가 신청을 하고 가정법원이 이를 허가해 주면 후견인과 신탁회사 사이에 신탁계약을 체결한다.
반면 임의후견은 향후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피후견인이 될 본인과 임의후견인, 신탁회사 간에 신탁 가능 재산 및 신탁재산의 관리·운용 방법을 정하기 위해 사전 협의를 하고 그에 따라 본인과 임의후견인 사이에는 후견 계약을, 본인과 신탁회사 사이에는 신탁계약을 체결한다. 이때 후견 계약은 공정증서로서 체결해야 하며 이를 후견등기한다.
신탁계약은 신탁계약 체결 시점부터 효력이 발생하지만 후견 계약은 후견감독인이 선임될 때까지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즉, 본인이 스스로 재산 관리를 할 수 있으므로 직접 신탁회사에 관리·운용을 지시하면 된다. 이후 본인이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사의 소견 또는 진단이 있는 경우 미리 지정해 둔 임의후견인의 청구에 의해 가정법원이 후견감독인을 선임하면 그때부터 후견 계약의 효력이 발생해 임의후견인은 후견사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후견인은 피후견인이 건강할 때 미리 지정해 둔 방법 내에서 후견사무를 수행한다.
이와 같이 피후견인의 재산이 신탁회사 앞으로 이전되어 있으므로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재산을 마음대로 유용할 수 없다. 미리 피후견인이 건강할 때 지정해 둔 방법 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둔 방법대로만 신탁회사에 관리·운용을 지시함으로써 후견 사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후견인의 재산 유용 행위를 사전적,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나아가 신탁회사는 금융기관으로서 자산관리에도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후견인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자산관리 계획도 함께 설계하고 이행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신상 관리에 집중하고 재산 관리는 전문적인 신탁회사에 맡겨 피후견인의 복리 증진에 더 적합한 방향으로 설계가 가능할 것이다.
윤서정 신한은행 신탁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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