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전쟁속 방산 특수… 반년새 980조원, 작년 1년치 벌어
세계 15개 주요 방산업체 수주 급증
각국, 군사충돌 대비 무기 수입 늘려
“국방비 지출, 30년만에 가파른 증가”
작년 전세계 2.2조달러 사상 최대
韓, 무기수출국 순위 9위로 올라서
“지금이 대규모 군사 허브(hub)를 만들 적기이며 이곳이 적절한 장소다.”
올 9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열린 국제방위산업포럼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0여 개국, 252개 방위산업체 임원들 앞에서 이같이 제안했다. 러시아와 장기전을 치르는 우크라이나로서는 절실한 서방 투자를 유치하고, 방산업체는 이 전쟁이 신제품을 곧바로 실전에서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포럼 직후 19개국 38개 방산업체가 우크라이나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뜻을 밝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전쟁 등 2개의 전쟁으로 지정학적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 방산업체가 수혜를 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7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약 2년 만에 세계 방산업체 수주액이 10%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주요 무기 수출국 순위에서 10위권 중반에 머물던 한국도 동유럽 국가들의 주문 호조에 힘입어 9위(2018∼2022년 합산)로 올라섰다.
● 세계 국방비 1년 새 1360억 달러 늘어
FT가 영국 BAE시스템스, 독일 라인메탈, 한국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비롯한 세계 15개 주요 방산업체 실적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이들 업체 수주 잔액은 7776억 달러(약 1000조 원)로, 2020년(7012억 달러)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특히 올 상반기(1∼6월)까지 15개 업체 전체 수주 잔액은 이미 7640억 달러(약 980조 원)를 기록해 지난해보다 훨씬 좋은 실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FT에 따르면 항공 전문 방산업체인 영국 BAE시스템스 수주 잔액은 2020년 618억 달러에서 지난해 708억 달러로 뛰었다. ‘전차 강국’ 독일의 라인메탈도 지난해 279억 달러 수주 잔액을 기록해 2020년(148억 달러)보다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방산업체가 이처럼 성장한 것은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미중(美中) 갈등이 격화하면서 군사적 충돌 우려가 커지는 등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각국이 국방비 지출을 늘린 데 따른 것이다.
스웨덴 군비·군축 연구기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총 국방비는 2조2400억 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또 최근 5년간 세계 국방비 지출은 전년 대비 연간 적게는 약 100억 달러에서 많게는 약 700억 달러 늘었지만 2021년(2조1040억 달러)에서 지난해(2조2400억 달러) 1년 새 1360억 달러나 늘었다. FT는 “30년 만에 가장 가파른 증가를 보였다”면서 향후 몇 년간은 세계 방산업체 호재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 한국, 무기 수출국 순위 9위로
FT는 특히 2020년 수주 잔액 24억 달러에서 지난해 말 152억 달러로 6배 이상으로 증가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성장세에 주목했다. SIPRI에 따르면 이 같은 방산업체 성장으로 한국은 무기 수출국 순위에서 2000년 31위에서 2018∼2022년 합산 기준 9위로 올라섰다. FT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신규 수주가 가장 크게 늘었다”며 “우크라이나 관련 수주, 폴란드 (물량) 수주로 상당한 수혜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 방산업체의 급성장에 대한 서방 방산업체의 견제도 만만치 않다. 아시아에 본사를 둔 미국 방산업체 임원은 “그들(한국)은 가격 경쟁력과 빠른 납품으로 우리 사업을 빼앗아갔다”고 FT에 말했다. 또 유럽 방산업체 임원은 “국가 차원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산업체들이 유럽에 공장을 세우고 양산을 추진하는 건 단기적으로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이 기업들이 유럽 업체를 앞지를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FT는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한국의 공격적인 세계 시장 점유율 확대가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며 폴란드와의 방산 수출 계약과 인도네시아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의 향배가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이기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