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전역에서 무선호출기(삐삐)들이 동시에 폭발, 두 어린이를 포함해 적어도 12명이 죽고 3000명이 부상한 다음날인 18일(현지시간) 워키토키들이 폭발해 적어도 20명이 사망하고 450명 이상 다쳤다고 영국 BBC가 레바논 보건부 발표를 인용해 보도했다. 복수의 소식통들은 전날 호출기 공격이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의 소행이라고 전했으며, 이스라엘 정부는 코멘트를 거부하고 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전쟁에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면서 "중력의 중심이 북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레바논 전역에서 17일(현지시간) 무장단체 헤즈볼라 대원들이 교신에 사용하는 무선호출기(삐삐)가 거의 동시에 폭발하는 일이 일어나 적어도 12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다치는 일이 벌어졌다. 로이터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폭발한 호출기들이 최근 헤즈볼라가 몇 달 동안 구입해 대원들에게 배포한 최신 모델이며 장치를 조작한 흔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는 이런 듣도 보도 못한 공격의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했다.
AP 통신 등에 따르면, 레바논 남부와 동부 베카밸리, 수도 베이루트의 남쪽 교외 등 헤즈볼라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헤즈볼라 무장대원이 사용하는 무선호출기 수백대가 동시다발로 폭발했다. 오후 3시 30분 폭발이 시작해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이 폭발로 9명이 목숨을 잃고 2800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그 중 200여명은 위중한 상태라고 레바논 보건부는 밝혔다. 헤즈볼라는 사망자 가운데 8명이 대원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부상자 중에는 헤즈볼라 저명 인사의 자녀들과 8세 소녀와 11세 소년이 포함됐다. 모즈타바 아마니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도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부상자 대부분은 얼굴, 손 또는 복부 주변에 상처를 입었다. 일부 부상자는 호출이 울려 화면을 확인하는 중 폭발이 일어났다고 증언했다. 식료품점, 카페에 있거나 오토바이를 타다 무선호출기가 폭발해 피를 흘리는 상태로 찍힌 사진들도 온라인에 올라왔다. 손이 잘려나간 부상자도 있다고 한다.
레바논 보건부는 사건 이후 모든 시민에게 호출기를 즉시 폐기하라고 요청했다.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지난 2월 이스라엘이 위치 추적과 표적 공격에 활용할 수 있다며 휴대전화를 쓰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헤즈볼라는 최근 몇 달 사이 통신 보안을 위해 무선호출기를 쓰고 있었다. 비퍼(Beeper)로 불리며 호출음이나 단문 메시지를 주고 받는 통신기기다. 이제 국내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다.
AP 통신은 “무선호출기 폭발 사건이 오랫동안 계획된 작전으로, (배후자가) 공급 과정에서 레바논으로 기기가 배달되기 전 장치에 폭발물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번에 동시 다발적으로 폭발한 호출기들은 최근에 납품을 받아 대원들에게 나눠준 것들이었다고 했다.
일각에선 원격 해킹을 통해 무선호출기의 리튬 배터리를 과열시켜 폭발을 일으킨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헤즈볼라의 한 간부는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 저널에 호출기가 폭발하기 전 뜨겁게 달아올랐다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방식보다 기계에 폭발 장치를 직접 삽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영국 육군 무기 전문가는 익명을 요구한 채 BBC에 10~20g의 군사용 고위력 폭탄을 가짜 전자장비로 감춰 무선호출기 안에 넣어뒀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이버보안 연구원 밥티스트 로버트는 CNN에 “기기가 해킹 당했다기보단 배송 전에 기기가 개조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폭발 규모로 볼 때 조직적이고 정교한 공격”이라고 했다.
헤즈볼라와 레바논 정부는 이스라엘이 원격으로 표적 공격을 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에 전적인 책임을 묻는다”며 “반드시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레바논 시민을 표적으로 삼은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의 테러 공격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은 이날 폭발 사건을 “테러 행위”라고 규정했다.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이날 이스라엘·레바논과 국경을 맞댄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호출기가 폭발해 헤즈볼라 대원 등 14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군은 이번 사건에 대해 별도 입장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일은 이스라엘 안보 내각이 레바논과 접경지역인 이스라엘 북부 주민들의 안전한 귀환을 전쟁 목표에 공식적으로 추가한 지 하루도 안 돼 발생했다.
유엔 대변인은 레바논의 최근 사태가 "점점 더 요동치는 상황으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많은 레바논인들은 전례 없는 규모와 일상을 파고든 공격 양상 때문에 충격과 허탈함, 막막함에 빠져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한 번 문자와 숫자를 짝지은 메시지가 심어지면, 그 장치를 사용하는 다음 사람이 폭발물을 작동시키는 식이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 하우스의 중동 애널리스트 리나 카팁은 "이스라엘은 여러 달 헤즈볼라를 겨냥해 사이버 작전을 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안보 위협은 규모 면에서 가장 크다”고 말했다.
베이루트에 기반을 둔 미국 싱크탱크 어틀랜틱 카운슬의 선임 연구원 니콜라스 블랜퍼드는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전투원 수천 명은 아니더라도 수백 명을 일거에, 어떤 사례는 영구적으로 전투력을 무력화시켰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는 헤즈볼라 지도자들이 이제 "더 무거운 응징을 해야 한다는 부하들과 지지자들의 극심한 압력을 받게 됐다"면서 지난해 10월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갈등이 도드라진 이후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