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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시장
아름다운 숙자 씨
고 금 란
늦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팔월. 처녀 불알도 살 수 있다는 구포시장에서 팔월 초사흘 장이 선다. 골목마다 장돌림들과 채소보따리를 이고 온 할머니들까지 자리다툼이 한창이고 그들이 뿜어내는 삶의 열기는 김이 오르기 시작한 가마솥처럼 뜨겁다. 삼팔따라지 인생이라는 말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짓고땡 노름판에서 삼월 사꾸라와 공산 팔 패를 잡으면 끝장이지만 여기서는 숫자의 의미가 확 달라진다. 평일에는 파리를 날리다가도 장날이 되면 한 밑천 톡톡하게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일장이 현대인들의 외면으로 사라져가고 있지만 구포장은 좀 다르다. 낙동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좋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사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지금도 장날이 되면 유동인구가 이만여 명을 넘을 정도다.
그 구포시장 바닥을 휘저으며 아침 일찍 숙자 씨가 간다. 볼 것 다 보고 참견할 것 다 하면서 간다. 잰 발걸음이 바쁜 마음을 따라잡지 못하는 바람에 급하게 화장을 한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리지만 아랑곳없이 가고 있다. 오늘은 장날에다 복날과 일요일까지 겹쳤으니 대목 중에서도 상대목이라 준비할 것이 많은데 며칠 전에 새끼를 낳은 애완견 뽀삐가 자꾸 발목을 잡았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끼만큼 예쁜 것이 있을까. 쥐새끼보다 작은 것들이 눈도 뜨지 못하면서 젖을 빨고 있는 것이나 그 새끼를 내려다보는 뽀삐의 어질디어진 눈길을 보느라 출근이 늦었다. 시장 입구는 갖가지 과일과 채소를 싣고 온 트럭과 손수레와 노점상들이 서로 뒤엉켜 좌판을 펴느라 아귀다툼이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중심거리에 들어서면 트로트에서 발라드 노래로 넘어온 것처럼 분위기가 달라진다.
옷이나 그릇 신발 화장품들을 진열하는 상인들의 차림새도 노점 상인들과는 다르고 화장품 가게 점원들은 탤런트 뺨칠 정도로 세련된 화장술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같은 시장 안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중심거리를 지날 때는 숙자 씨의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채광과 환기가 가능한 유리섬유 소재로 만들었다는 아케이트 뿐만 아니라 낡은 간판과 하수도까지 노후시설을 교체한 중심거리는 치장을 한껏 부린 여자처럼 깔끔하고 산뜻하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재래시장들은 한물간 기생처럼 퇴락해 버린 지 오래고 구포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구포역과 덕천로터리를 연결했던 고가도로가 있을 때만해도 장날이 되면 간선도로변은 모두 노점상들의 차지였다. 특히 인근 김해들판에서 재배한 묘목과 꽃시장이 형성되어 항상 사람들의 발길이 북적거렸다. 그랬던 고가도로가 육 년 전 봄에 완전히 철거되었다.
게다가 육차선 도로 중앙에 분리대가 생긴 뒤부터 간선도로변에는 경찰관과 구청직원이 심하게 단속을 하는 바람에 잡상인들이 얼씬도 못한다. 지하철 3호선이 개통되고 덕천로터리 주변에 대형마트와 폴라렉스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쥐새끼가 소금 물어 나르듯이 손님들을 빼앗아갔다. 구포시장상인회에서 뒤늦게 시설 현대화사업에 들어가고 고객 유치를 위하여 공동 쿠폰발행 사업을 벌이며 마일리지와 서비스에 익숙한 젊은 층을 유입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올해는 봄 내내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열리고 에아이인지 애아버진지 하는 이상한 병이 도는 바람에 나라 전체가 들썩거렸다. 전국에 있는 치킨 전문집은 물론 재래시장에서 날짐승을 잡아 파는 가게는 모두들 단단히 죽을 쑤었다.
장사도 군이 달아야 되는 법인데 사정이 그리 돌아가니 나란히 붙은 개 시장도 덩달아 썰렁했었다. 닭이나 오리 옆에만 가도 모진 병에 걸릴 것처럼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나날이 떠들어대니 시장 상인들은 종일 마수도 못하고 애꿎은 술만 타작내거나 신세한탄으로 그 좋은 봄을 다 보내고 말았다. 숙자 씨는 스물일곱 살 꽃다운 나이에 장사를 시작했다. 무슨 시근이 있어서 시장바닥에 뛰어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통방통한 일이었다. 모든 일은 인연을 따라 펼쳐진다고 개고기를 팔던 시고모가 돈을 많이ㅏ 벌어서 강 건너 대동에 식당을 개업한다는 소문을 듣고 재빠르게 쫓아가서 조르고 졸라 물려받았다.
“젊은 기 기특도 하제. 아무리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어도 권하고 싶지 않구나. 이게 사실 보통 사람이 할 일은 못 되제…. 한 번 잡으면 손을 놓기도 어렵고….”
“고모님요,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습니꺼? 월급쟁이 해서 언제 돈 모아 사람행사 하고 살겠습니꺼? 그냥 저 주시이소, 열심히 해보겠습니더.”
고모는 계속 고추 먹은 소리를 했지만 끝내 숙자 씨의 간청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멋모르고 장사에 손을 댄 지 올해로 25년, 시고님의 말대로 좋건 싫건 한 번 잡은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다. 그래도 한때는 엉덩이에서 바람이 일 정도로 장사가 잘 될 때도 있었는데 그도 잠깐 올림픽을 치를 때 오지게 된서리를 맞고부터는 좀체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숙자 씨는 대체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돌아설 자리조차 없는 좁은 가게에서 연년생으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교대로 젖 물려가며 장사를 했었다. 돈이 조금 모이자 대리천 옆에 난 가게로 옮겼는데 그때만 해도 장마철이 되면 시랑골에서 흘러온 황토물이범람해서 개천가는 시장 안보다 임대료가 쌌다. 그런데 복 많은 과부는 앉아도 요강 뚜껑에 앉고 넘어져도 가지 밭에만 넘어진다더니 이사한 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대리천이 복가가 되는 바람에 자동차가 달리는 길이 되어 버렸다.
대로변에 있으니 시장 안에 있을 때와는 달리 얼굴을 찡그리거나 코를 막고 달아나는 더러운 꼴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오히려 코웃음을 칠 여유도 생겼다. 숙자 씨는 손님들이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를 중앙에 놓고 간판도 ‘에덴보신원’이라고 바꾸었으니 달랑 한 개로 시작했던 중탕기가 일곱 개로 늘어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처녀 때부터 하나님을 믿어온 숙자 씨는 요즘 새삼스럽게도 새벽기도를 올린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저언 고비는 오죽 많았으며 어려운 일들은 또 얼마나 겪었을까마는 은총이라 생각되는 순가니 훨씬 많았으니 감사의 기도가 절로 흘러 나왔던 것이다.
무걸 씨는 종업원 도식 씨와 어제 주문받은 물량을 작업해 놓고 숙자 씨를 기다리고 있다. 평일에는 주로 철창이 실린 일 톤 트럭을 몰고 물건을 구하러 가거나 고기를 배달하지만 장날은 가게에서 일을 돕는다. 월급쟁이 걷어치운 뒤 망치를 들고 처음 작업장에 들어갈 때만해도 속으로 와들와들 떨었던 무걸 씨였으나 우려했던 것보다 숨은 능력이 있어서 칼질도 잘하고 물건 또한 남다르게 구해왔다. 무걸 씨는 전문적으로 개를 사육하는 곳보다는 변두리 동네를 돌아다니며 “개 파소! 개 파소!”를 외치며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가끔은 무걸 씨의 능력이 지나쳐서 낯선 동네 빈 집을 지키고 있는 개를 주인 몰래 실어 와서 숙자 씨의 간을 떨어지게 만드는 때도 있었다. 작업장에서도 고기 중 일부를 슬쩍 흘려놓거나 묘하게 빼돌리는 기술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상 중에 그런 일을 전문으로 한 사람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숙자 씨는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고도 아는 척 넘어갔다. 그러나 낌새가 보일 때마다 그만큼의 이익을 가까운 경로당이나 교회에 성금으로 내놓아 버렸으니 무걸 씨는 억울하고 분해서 가슴을 쳤다.
“시벌! 내가 누구 좋자고 그런 짓을 하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끙끙대던 무걸 씨는 결국 숙자 씨가 하는 짓이 더럽고 아니꼬워서 손을 끊고 말았다. 철창 속에는 무걸 씨가 구해 온 누렁이들이 자리다툼을 하느라 소란스럽다. 겁에 질려 웅크려있는 놈, 벌건 눈을 하고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놈, 독이 잔뜩 올라 무엇이든 물어뜯을 기세로 있는 놈까지 제각각이다.
“아이고 착해라. 자, 내가 맛있는 거 주꾸마, 귀여운 놈들….”
숙자 씨가 막대기로 철창을 톡톡 두들기며 속삭이니 사납게 굴던 놈들이 거짓말처럼 꼬리를 내리고 조용해진다. 사료를 넉넉하게 퍼서 두어 바가지 넣어준 다음 숙자 씨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비닐 앞치마를 입고 빨간 고무장화를 갈아 신는다. 도식 씨가 깨끗하게 손질해 놓은 고기를 부위별로 잘라서 진열대 위에 늘어놓고 통 마리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냉장고 속에 키대로 세운다. 깨끗하게 털을 제거한 것이 잘 보이도록 네 다리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뱃속이 싱싱하게 드러난 놈을 눕혀 놓으니 보기에 좋다.
작업을 끝내고 핏물이 흥건한 바닥을 수돗물로 씻어내는 숙자 씨의 손끝이 분주하다. 가게와 작업장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아무리 작업을 깔끔하게 해도 늘 그렇게 핏물이 흘러들었다. 그 바람에 사시장철 장화를 신고 있어서 발에 생긴 무좀은 좀체 나을 기미가 없다. 숙자 씨는 가끔 생각한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 서너 집밖에 없던 가게가 스물네 개로 불어났지만 다들 자식 공부 시키고 시집장가 보내며 사람 노릇하고 있으니 먹고 사는 길이 다 정해져 있는 모양이라고.
가끔은 밥그릇 앞에 두고 싸우는 개처럼 아웅다웅할 때도 있으나 의논이라도 한 듯 제각기 다른 장사를 하며 벌어먹고 사는 시장 사람들을 보면 서로가 서로의 입에 밥을 넣어주고 있는 것처럼 신기할 때도 있다. 목사님이 그랬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신의 뜻에 따라서 생긴 것이며 하나님은 그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보호해 주신다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와 들판의 짐승은 물론 모든 인간을 자식처럼 먹여 살리고 있다고, 개미 한 마리 풀 한 포기조차 맡은 역할이 있다고, 숙자 씨는 가끔 하나님이 정말 아버지처럼 친근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푸근해졌다.
여름 날씨는 변덕스러워서 일기예보를 믿을 수 없다. 그토록 푸르고 맑던 하늘도 믿을 것이 못된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무렵, 백양산 주지봉 꼭대기에 몰려든 먹장구름이 굵은 빗방울로 변하여 쏟아지는 바람에 노점상 상인들은 난장에 늘어놓은 물건 위에 비닐을 덮느라 제 몸이 젖는 줄도 모른다. 시장을 보러 나왔던 여자들이 비를 피하려고 줄줄이 가게 처마 밑에 서있지만 숙자 씨의 천막 밑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지나가는 비였으면 좋으련만….”
비설거지가 한창인 노점상들을 내다보던 숙자 씨의 눈에 이상한 행렬이 들어온다. 플레카드 양 귀를 맞잡은 청년을 선두로 하여 이십여 명의 젊은이들이 몰려오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구포시장 입구 쌈지공원에서 장날마다 크고 작은 공연을 하고 있다더니 그 공연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잔인한 동물학대 금지하라.”
“대한민국 정부는 개고기 금지법을 개정하라.”
딸아이 또래로 보이는 처녀들과 건장한 청년들이 물에 빠진 생주 꼴을 하고 시장을 몇 차례 돌며 구호를 외친다. 비를 피하고 선 사람들은 물론 지나가던 차량들도 슬금슬금 속도를 늦추며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이 된다. 청년 몇 명이 하필이면 숙자 씨의 가게 앞에 있는 전주에 ‘개고기 시장이 없어져야 하는 이유’를 제목으로 빽빽하게 글이 박힌 판때기를 매달면서 눈치를 살핀다. 숙자 씨는 목을 길게 빼고 글을 읽어나간다.
“우리는 잘못된 문화를 고쳐야 합니다. 개고기 식용은 우리 대한민국이 부끄러워해야 할 악습이지 문화가 아닙니다. 비정하고 잔인한 살인을 어떻게 문화라고 할 수 있는지요. 설령 과거 보릿고개 당시 우리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다고 하더라도 먹거리가 천지에 깔린 현대사회에서 반려동물인 개식용은 없어져야 할 야만적 행위입니다….”
마침 두 남자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아재들요, 탕거리 찾는교? 수육거리 찾는교?”
반색을 하며 손님을 맞이하느라 바깥일은 전혀 관심이 없다.
“한 솥 앉힐라 하는데….”
그들은 철창 안을 기웃기웃 들여다본다.
“옳지러, 오구찌 손님….”
숙자 씨의 몸에서는 엔도르핀이 솟아난다.
“ 계 하는교? 몇 명이 묵을라 하는교?”
“봅시다…. 똥개 있는교?
먹잇감을 고르고 있던 남자들이 갑자기 터지는 확성기 소리에 놀라서 수군거린다.
“와 이리 시끄럽노? 저게 뭐고?”
“개고기 먹지 말라고 데모하는 모양인데.”
“뭐시라! 아니 저 무식한 것들이 식용과 애완견도 구분 못하는 갑제? 소 돼지고기는 아귀아귀 처먹으면서 꼭 개고기만 시비라니까…. 입맛 떨어지게…”
“저런 어중간한 놈들 때문에 나라가 이리 시끄럽다 아이가. 할 일이 없으면 낮잠이나 자든지…. 저놈들, 데모가 끝나면 삼겹살집으로 몰려가 한잔들 하겠지.”
“아이고 그냥 내삐두라 마.”
“진짜 기분 더럽네, 저걸 그냥 확….”
숙자 씨는 무덤덤한데 두 남자는 흥분해서 얼굴까지 벌겋다. 산염소와 고양이 토끼를 파는 옆 가게 김씨가 작업이 끝났는지 비쭉 얼굴을 내밀더니, “나는 개를 취급하지 않으니까…. 뭐¨.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고¨” 하면서 들어가 버린다. 확성기 소리는 빗소리와 어울려 요란한데 정작 상인들은 반응이 없다. 한 처녀가 확성기를 들고 한 손으로 하늘 똥구멍을 찔러대며 구호를 외치니 모두들 앵무새처럼 따라한다.
“동물학대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동물학대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소리를 지르며 선창을 하던 처녀가 갑자기 캑캑 기침을 한다. 마침 무걸 씨와 도식 씨가 손님이 고른 누렁이의 목을 졸라매 작업장으로 질질 끌고 가는 것을 본 것이다.
“아아, 보세요.”
처녀는 얼굴이 파랗게 변해서 이 끔찍한 살육현장을 본다는 자체가 충격이라며 볼멘소리를 하더니 흑흑, 울기 시작한다. 한 청년이 그런 처녀를 달래기라도 하듯 그들이 준비해온 작은 철창 속으로 기어들어가 개처럼 웅크리고 앉는다. 그의 목에는 “개는 가축이 아니라 반려동물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느낍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세요.”라는 팻말이 달려 있다. 숙자 씨가 남자들에게 저제 도대체 무슨 짓인가 물으니, 퍼포먼슨가, 퍼서 먹으라는건가¨. 우린 그냥 구경만 하면 돼요.” 하며 키들키들 웃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언제 나타났는지 신고를 받은 두 명의 경찰관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출동했다며 젊은이들 옆에 지켜 섰다. 상인회장도 나타나서 청년들에게 대충 끝내고 가라며 달랬는데 그들에게 말을 하면서 얼굴은 가게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 경찰관들은 무표정하게 있으려고 노력하지만 속으로는 분통이 터진다.
“시벌¨. 세상이 와 이렇게 시끄럽노?”
촛불집회니 뭐니 벌써 몇 달째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소고기에 이어 개고기까지 말썽을 부리니 죽을 맛이다. 그들은 행여 상인들이 장사를 방해한다며 몽둥이를 들고 몰려나와 젊은이들을 복날에 개잡듯이 두들겨 팰까봐 긴장한 얼굴들이다.
누렁이의 대가리를 내리쳤는지 가게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것을 숙자 씨는 온몸으로 느낀다. 갈수록 빗줄기가 굵어지는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오늘 장사는 글렀다. 모처럼 목돈을 만져보려고 벼르고 있던 숙자 씨는 야속한 하늘에 눈길을 주다가 전주를 붙들고 꽥꽥 구역질을 하고 있는 처녀의 뒷모습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문다. 처녀가 저리도 슬피 우는 것은 필경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면서¨.
“아지매요, 잘해 주세이. 오늘 밤에 고거 묵고 오랜만에 힘 좀 써 보구로¨.”
“아이고, 오늘 여자 하나 죽었다, 동네가 좀 시끄럽겠구마.”
두 남자가 주고받는 농담에 끼어들거나 흔들릴 숙자 씨도 아닌데 이상하게 아까부터 마음이 어지럽다. “아이고, 참말로, 누구 집 자식들인지 시근도 애달프다. 저란다고 여기 가게 문 닫을 사람이 어데 있다고¨. 그나저나 저 처녀는 저렇게 비위가 약해서 시집이나 옳게 가겠나, 불쌍해서 못 보겠다. 여름감기라도 걸리면 우짤라꼬¨.”
마음 같아서는 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개소주라도 한 봉지 갖다 먹이고 싶은 심정이다. 숙자 씨는 처녀에게 비라도 피하게 해주려고 가게 구석에 놀고 있는 자루가 긴 우산대를 양손에 하나씩 움켜쥐고 밖으로 나간다. 경찰관들은 그런 숙자 씨를 바라보며, “아이고야, 저 사나운 아지매가 드디어 열을 받았구나” 하며 손에 잔뜩 힘을 주고 방어태세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