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양미술사에서 최초의 여성 직업 화가로 알려져 있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와 그녀의 인생에 관하여 정리를 하겠습니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카이사르(시이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성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자신의 고객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입니다.
수산나는 중세에 읽혔던 구약성경 일부 다니엘서 13장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욕정을 품은 두 명의 늙은 재판관이 수산나를 범하려다 실패하자, 그녀에게 간통죄를 덮어 씌웁니다. 사형에 처해질 상황에서 성령을 입은 다니엘이 그녀의 누명을 벗기고, 늙은 재판관들이 사형을 당한다는 내용입니다.
서양미술사에서 많은 화가들이 이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수산나의 거부 의사가 가장 잘 반영되어 있고, 생생하게 그려진 그림이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그림입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함께 바로크 시대에 활동했던 '귀도 레니'와 '렘브란트 판 레인'의 그림들에서는 수산나의 얼굴에서 강력하게 저항하거나 거부하는 모습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같은 주제의 그림이라도 그리는 화가의 내면적 시각에 따라 완성되는 이미지와 그 이미지에 대한 관람자의 느낌은 판이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무렵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에게 일생 동안 상처로 남을 사건이 발생을 합니다. 그것은 아버지인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와 함께 로마의 궁전 '카지노 델레 뮤즈'의 천장화를 그렸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성폭행을 당한 일입니다.
'아고스티노 타시'는 아버지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미술 교육을 위하여 의뢰한 미술 선생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했을거라 생각됩니다.
이 사건은 고발되어 '아고스티노 타시'가 재판을 받게 되는데, 당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는 젠틸레스키가 '남자를 꾀어낸 여자'로 비난을 받았고,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손가락이 절단될 수도 있는 고문과 산파의 검증까지 거쳐야 했습니다.
결국 아르테미시아가 재판에서 이겼으나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습니다. 아고스티노 타시는 2년의 형량과 로마에서의 추방을 명령 받았으나, 그 마저도 교황과 친분관계가 있었던 이유로 제대로 형벌이 실행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9개월 간의 긴 재판이 끝나고, 이 불평등한 남성 위주의 사회에 항거하여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조용히 붓을 들었습니다. 바로크 미술의 창시자인 카라바조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그녀는 밝음과 어둠의 강렬한 빛의 대조를 통한 자신의 그림으로 사회와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9개월간의 재판이 끝난 후 아버지 오라치오는 피렌체의 평범한 화가 '피에 난 토니오 스티아테시'와 딸을 결혼시킵니다. 아르테미시아는 피렌체에서 '카사 부오나로티'의 작업을 의뢰 받게 됩니다. 이를 발판으로 궁정화가 된 그녀는 메디치 가문과 찰스 1세의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1612년에 그려진 '어머니와 아이'라는 그림은 자신을 성폭행한 '아고스티노 타시'로 해석되는 어린아이가 낸 상처로 고통받는 그녀 자신을 상징하는 여인이 그려져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 서양 미술 관련 책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르네상스 회화가 잘 연출되어 촬영된 사진이라면, 바로크 회화는 영화 속 특정 장면처럼 생동감있게 살아 움직이는 스틸컷 이라는 것인데 저는 이 비유가 매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크 회화는 카라바조의 그림들처럼 어두운 배경을 활용하여 조명을 비추듯 그림 속의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하는 키아로스쿠로(명함)의 극적 대조를 활용하는 그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특정 장면 혹은 무대에서 조명을 받고 있는 주인공처럼 묘사가 됩니다.
‘유디트’라는 주제는 서양 미술 화가들이 많이 그렸던 주제 중의 하나인데, 유디트는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미망인으로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국가가 풍전등화일 때, 적장인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목을 잘라 죽인다는 내용의 그림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적장을 끌어 안고 강물로 뛰어들어 함께 죽은 ‘논개’ 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젠틸레스키와 카라바조가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바로크 미술의 화풍은 같지만, 그림 속 유디트의 얼굴은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젠틸레스키의 그림 속 유디트는 비장한 각오로 왼손은 홀로페르네스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얼굴과 머리를 누르고 있으며, 오른손으로 목을 잔인하게 자르고 있는데 그녀의 손과 팔뚝에서 힘이 느껴지고 얼굴의 표정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반면 카라바조의 그림 속 유디트는 연약한 여성이 연출된 연기를 하는 듯한 꾸며진 모습으로 억지로 행하는 느낌을 주며, 자세히 보면 유디트와 적장과의 거리도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일을 돕는 하녀의 행동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는데요, 젠틸레스키 그림 속 하녀는 주인을 도와 적장을 제압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데 반해 카라바조 그림 속 하녀는 나이가 많이 든 노인으로 그저 잘라진 목을 담을 천을 들고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이렇듯 젠틸레스키의 유디트가 더 결연한 모습으로 그려진 이유는 그림 속 유디트를 자신으로, 또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자신을 성폭행한 미술 선생 '아고스티노 타시'를 상징화하여 그렸기에 그 비장함이 두드러진 것입니다.
젠틸레스키는 피렌체에서 화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립니다. 피렌체 미술 아카데미의 첫 여성 회원이 되고, 당시 최고의 후원가인 '코시모 2세 데 메디치'의 본격적인 후원을 받게 됩니다.
JTBC 손석희 앵커는 2018년 8월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충남지사의 1심 무죄 판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뉴스룸' 앵커 브리핑에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인용했습니다.
손석희 앵커는 "17세기 이탈리아, 그 시절 유럽의 예술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여성이 여성의 몸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조차 금기시됐다. 그러나 젠틸레스키의 작품은 금기를 넘어선 거침없는 표현으로 충만했고, 작품 속 여성들은 당당했고, 아름다웠습니다."라고 시작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검색해 보시면 됩니다.)
다만, 21세기 대한민국의 법체계에서 아직도 특정 분야는 전문성이 없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안희정 전 지사의 최종 판결은 2019년 9월 9일 유죄로 마무리가 됩니다. 지금은 형량을 마치고 출소를 한 상태입니다.
젠틸레스키 그림의 주제로 90% 이상의 여성들이 그려집니다. 당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자신의 그림 속에서만이라도 그 중심에 설 수 있게 하려는 의도적인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분야, 어느 누구든 좋은 의미로 '최초'라는 단어로 쓰인다는건 영예로운 것이라 생각됩니다. 서양 최초의 여성 직업 화가, 최초의 여성 운동가, 최초의 피렌체 미술 아카데미 여성 회원 등 어린 시절 지우고 싶은 시간들을 극복하고, 여러 가지 최초 타이틀을 거머쥔 젠틸레스키의 삶에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