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옹(和翁)의
동묘(東廟) 단상시(斷想詩)
동묘노상(東廟路上)
안경구매(眼鏡購買)
촉한장수관운장(蜀漢將帥關雲長)
하고해동동묘래(何故海東東廟來)
천고신의충절인(千古信義忠節人)
추존존왕숭군신(追尊關王崇軍神)
굴종역사사대물(屈從歷史事大物)
철거당연방치금(撤去當然放置今)
강군대국무전화(軍强大國無戰禍)
자주국방미침탈(自主國防未侵奪)
화옹(和翁)
촉한의
장수 관운장이
무슨 연고로
해동 대한의
동묘에 모셔 왔는가?
천고
신의가 있는
충절인 이라고
관왕으로 추존하여
군신으로 숭배를 하네.
사대주의
굴종의
역사물인데도
철거는 당연한데
방치하고 지금도 남아있네.
군사 강국이 되면
전쟁의 환란이 없어지고
자주 국방이라야
적도 침탈하지를 못한다네!
팔십(八十) 노옹(老翁)의 나이가 되다 보니, 안경점(眼鏡店)에서 맞춘 안경이 어른거려 눈앞의 글자를 볼수가 없다. 그동안 맞춘 안경을 다 써봐도 글을 읽을 수가 없어서 아침 공양 마치고 전철을 타고 동묘 역에서 내려서 골목 장터로 가는 길에 노상(路上) 가판대(街販臺) 위에 도수별(度數別)로 안경(眼鏡)이 진열(陳列)되어 있어서 눈에 맞는 안경을 하나 골라 사 왔다. 값은 5천원이다. 안경테 쪽 양쪽이 좌우로 움직여 안경을 써도 꽉 끼지도 않고 편안했다. 신문지 글자를 읽어보니 뚜렷하게 잘 보였다. 산 안경을 쓰고 골목을 안쪽으로 접어들어 보니, 옛 궁전 큰 건물이 보여서 들어가 보니 관운장(關雲長)을 모신 사당(祠堂)이었다. 관운장(關雲長)은 삼국지(三國志)에 나온 장수(將帥)다. 관운장은 주군(主君)인 유비(劉備)를 만나기 전에는 시골 마을에서 천자문(千字文)을 가르친 서당(書堂) 훈장(訓)이었고. 유비(劉備)는 전한(前漢) 제6대 경제의 9남중 산정왕 유승의 후예인데 고향인 탁군 탁현 누상 촌에서 마을 집에서 돗자리를 짜서 생계를 유지하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한제국(漢帝國)이 황건적(黃巾賊)의 난(亂)으로 나라가 위급(危急)해지자 한제국(漢帝國)을 돕겠다고 관운장(關雲長)과 장비(張飛)와 세 사람이 도원(桃園) 의형제(義兄弟) 결의(結義)를 맺고 촉한(蜀漢)을 건국(建國)한 이야기가 삼국지(三國志)에 나온다. 촉한(蜀漢)의 장수가 무슨 연고(緣故)로 대한민국 동쪽에 전신(戰神) 군신(軍神) 수호신(守護神)으로 모셔졌는가? 이다. 동묘가 세워진 역사는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92년 일본(日本)의 침략으로 조선(朝鮮)이 위기(危機)에 처(處)하자 조선의 왕 선조(宣祖)는 명(明)나라에 원군(援軍)을 요청(要請)하였다. 명나라 군대는 전쟁에 나설 때 관우(關羽)를 전쟁(戰爭)의 수호신(守護神)으로 숭배(崇拜)하는 풍습(風習)이 있었다. 명나라 장수들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관왕묘(關王廟)를 세워야 한다”고 강하게 요청(要請)했고 조선(朝鮮) 조정(朝廷)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1601년 한양 동쪽에 관우(關羽) 사당(祠堂)이 세워졌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동묘이다. 사대의 상징인가? 역사의 기록인가? 동묘는 분명 조선이 명(明)나라 중심(中心)의 국제(國際) 질서(秩序) 속에 있었던 사대 외교(事大外交)의 흔적(痕迹)이다. 그러나 동시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는 거대한 전쟁 속에서 형성된 역사(歷史)의 증거(證據)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날 동묘(東廟)는 철거(撤去)되지 않고 역사(歷史) 문화유산(文化遺産)으로 남아 있다. 역사(歷史)는 영광(榮光)의 기록(記錄)만 남는 것이, 아니라, 굴욕(屈辱)과 치욕(恥辱) 고통(苦痛)의 기억(記憶)도 함께 남는다. 우리가 동묘(東廟)를 보면서 성찰(省察)해야 할 것 동묘는 단순한 사당(祠堂)이 아니라 자기 나라도 지키지 못하고 강국(强國)의 지원군대(支援軍隊)로 나라를 겨우 지킨 역사(歷史)의 산물(産物)이다. 관운장묘는 고종때에는 북관왕묘와 서관묘를 지었고, 제일 먼저 지은 남관 왕묘는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한 곳도, 아니고 한양 여러곳이 조선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중국 촉한 장수를 사당을 지어서 모시고 제사도 조선왕들은 봉사(奉祀)도 지냈으니 국력이 약하면 사대(事大) 역사는 이러했다. 나라의 수치이고 굴욕이다. 그래서 동묘(東廟)는 우리에게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나라가 약(弱)하면 외세(外勢)의 군신(軍神)까지 모셔야 하는 현실(現實)이 생긴다. 둘째 외교(外交) 질서(秩序)는 시대(時代)마다 다르나 국가(國家)의 자주성(自主性)은 언제나 중요(重要)하다. 대한민국(大韓民國)은 아직도 전시 작전권(戰時作戰權)이 없는 나라다. 다행한 것은 국민정부 이재명 대통령은 전시작전권(戰時作戰權)을 환수(還收)할 의지가 분명하여 마음이 놓인다. 남에게 의존하면 대가가 따른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성찰(省察) 각성(覺醒)할 때다. 셋째 역가(歷史)는 지운다고 역사(歷史)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역사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의 우리는 얼마나 자주적(自主的)인가?” 동묘(東廟)가 남아 있는 이유(理由)다. 동묘는 사대(事大)의 상징(象徵)이기도 하지만 동시(同時)에 역사(歷史)의 교과서(敎科書)이기도 하다. 그곳을 철거(撤去)하기보다 그 앞에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왜 이런 사당(祠堂)이, 세워졌는가? 왜 이런 역사를 살았는가?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역사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역사가 남긴 한 가지 교훈은 역사는 말한다. 나라가 약하면 외세(外勢)에 의존(依存)하게 되고 나라가 강(强)하면 스스로 운명(運命)을 결정(決定)한다. 화옹의 시 한 구절처럼 <軍强大國無戰禍 自主國防未侵奪> 군사가 강한 나라는 전쟁의 화가 없고 자주국방(自主國防)이 있어야 침탈(侵奪)을 막는다. 동묘(東廟)는 사대(事大)의 흔적(痕迹)이지만 동시(同時)에 자주(自主)의 가치(價値)를 깨닫게 하는 조용한 역사(歷史) 교과서(敎科書)이다. 우리 근대사 6,25 민족상쟁(民族相爭)으로 인천상륙작전(仁川上陸作戰) 전쟁(戰爭)의 영웅인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상 (Douglas MacArthur 將軍像)도 인천광역시 중구 자유공원에 있는 1957년에 제작한 청동상(靑銅像)로 세워졌다. 시대만 바뀌었지 강국(强國)의 의존성(依存性)은 여전(如前)한 나라가 대한민국(大韓民國)이다. 자강자존(自强自存) 자약자멸(自弱自滅)이다. 스스로 강하면 스스로를 지키지만 스스로 약자면 스스로 자멸하고 만다. 힘이 법이 되는 세상이다. 세상은 각자도생(各自圖生) 패자독식(霸者獨食)이다. 세상이 온통 전쟁판이다. 약자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세계(世界) 도처(到處)의 전쟁(戰爭) 참상(慘狀)을 보라. 약육강식(弱肉强食) 정글 법칙 동물왕국이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세태(現實世態)이다. 휴일(休日) 나들이하면서 동묘(東廟)를 보고 느낀 단상(斷想)이다. 2026년 4월 16일, 여여법당 화옹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