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어떻게 대학을 망쳐왔나
어느 날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에 고물가, 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삼성전자, 현대차는 스마트폰과 신차 가격 동결에 동참해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말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동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고 지원금도 줄인다면. “여기가 평양이냐”는 힐난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이 자유시장경제 원칙이 당연한 듯 배제되어 온 분야가 있다. 대학 등록금이다. 26일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내년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을 5.64%로 발표하며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등록금 동결에 동참해 달라”고 밝혔다. 말은 당부인데, 당사자에게는 협박으로 들린다. 10년 넘게 되풀이 중이다.
땅도 자원도 빈약한 한국은 교육과 똑똑한 인재들 덕분에 이만큼 발전했다. 그런데 그 교육이 대학부터 무너지고 있다. 최근 만난 한 대학 관계자는 현실을 털어놨다. “학부는 스카이(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공계조차 무너졌다. 입학하자마자 반수 시작해서 제주대 약대라도 가려 한다. 메디컬(의약학 계열) 빼고는 초토화됐다. 대학원은 정원도 못 채우고 고도의 학문 연구 기능은 없어진 지 오래다. 국내외 인재를 모셔 오고 싶어도 희망 연봉을 지급할 여력이 없다.”
대학은 교육 기관이지만 다른 기능도 해야 한다. 최정상급 인재를 교수나 연구자로 흡수해서 지식을 재생산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창업에 뛰어들어 기존에 없던 부와 가치를 창조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제품 개발에 쓸 원천 기술, 기초 과학 기술도 결국 최초 생산자는 대학이다. 한 국가의 지식과 가치 창출의 핵심이 대학이어야 하는데, 이는 규모의 자본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대학경영협회 2021년 자료에 따르면 하버드대 기금은 494억 달러(약 63조9927억 원), 스탠퍼드대가 353억 달러(약 45조7029억 원)다. 한국 최상위권 사립대 작년 수입이 6000억∼9000억 원 수준(이월금 포함)이다. 적립금은 5000억∼7500억 원 수준이다. 영유아 영어학원(일명 ‘영어유치원’) 학비가 연 2000만 원을 넘는데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이 그 절반도 안 되는 757만3700원이다. 등록금 싸다고 좋아할 상황이 아니다.
미국이 등록금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미국 연방교육부가 등록금 상한을 정하진 않는다. 대신 장학금 확대, 학비 대출 지원에 주력하고 소비자(학생)가 좋은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덕분에 미국 대학은 자가발전이 가능하다. 최강 기술 강대국의 원천이다. 우리 교육부는 어떤가. ‘표(票) 떨어질 일’이라며 10년 넘게 대학 재정을 묶어놓고, 얼마 안 되는 재정사업으로 대학을 쥐고 있다. 그 결과 모든 한국 대학이 자생력을 잃고 교육부가 꽂아놓은 ‘지원금 링거’로 연명 중이다.
한국 고등교육이 재기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교육부 권한을 유치원 및 초중고교와 국공립대 범위로 축소해야 한다. 사립대에 대해서는 감사, 감독 권한 정도만 남겨야 한다. 등록금이 가계 부담이라면 조(兆) 단위 대학사업을 장학금으로 돌려 직접 학생을 지원하는 편이 낫다. 교육부가 권한을 놔야 ‘돈값’ 못 하는 대학은 자연스레 퇴출되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대학은 나라를 먹여 살릴 것이다. 가장 시급한 교육 개혁은 ‘교육부 개혁’이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