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인터넷으로 가진 책 중에 벽암록이라는 책이 있지요...
남들은 그 책을 화두집 문제로 보시는데..
사실 화두는 정해진 답이라는게 없고 생각하고 보는 견해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저도 간간이 보기는 합니다만...
사실 몸으로 수행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그 책에 담긴 의미를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하며...
몇개만 제가 가진 견해를 밝혀 볼까 합니다..
처음 책을 펼치면..
금강경이라는 경전해설가로 유명한 덕산선사가 모스님을 찾아나섰다가
주막에 들러 밥을 시키는 장면이 나오지요...
주막에 노파가 과거심 불가득 현재심 불가득 미래심 불가득인데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실꺼냐는 질문이 나오지요...
사실 불교가 가진 시간의 관념적 문제이기도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라는게 어떻게 공부를 해야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포한 문제이기도 하지요...
불교는 시간을 시각으로 보지 않지요...
~~ing 진행형으로 시간을 정의하지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조각으로 쪼개어 보지 않고..시간을 흘러가는 흐름으로 보지요...
그래서 불교 수행을 막 시작하는 성자를 예류 흐름에 든 자라고 해서 성자의 길로 든 사람이라고 하지요...
금강경에 대해서는 머리로 어마무시한 지식을 가지고
금강경을 강의하던 덕산이...지식적인 쌓음이 되는 금강경을 불태우고 흐름에 든 자가 된다...라고 하는게
그 속에 숨겨진 의미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몇 페이지를 넘어가면 전삼삼 후삼삼이라는 소제목이 나오고
법이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 할 때...
이마위 일척안이 없거나 팔꿈치아래 호신부가 없으면...안된다는 구절이 나오지요...
이마위 일척안은
사하스라라라고 하는 챠크라를 의미합니다..
챠크라는 한자로 번역을 할 때 륜 바퀴로 번역이 되었고...
다르마챠크라라는 말이 법륜...부처님이 법륜을 굴리신다고 합니다만...
반야심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님의 상징적인 의미가 사실은 천수 천안...
세상의 소리를 보는 수행자....사실 대중부가 아라한의 목적을 버리고 힌두교에서 차용한 수행자 상입니다만..
사하스라라가 열리면 몸으로 울리는 소리를 보게 되지요..
예류를 지나 일래가 되면 알게 되는 증거가 되지요...
전삼삼 후삼삼이라고 하는 말은 사실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선정이란
이거다 저거다라고 분별할 수 있는 사리분별식이 없다..
선과 악이 없다...는 말로 머리에서부터 울리는 소리를 보는 수행은 고도로 집중이 된 상태라
사리를 분별하거나 선과 악을 분별하는 식이 없고...
하나의 지점에 몰두된 식만 있지요...
뭐 그래서 그런 제목을 붙인게 아닐까 합니다만...그냥 제 소견입니다..
그리고 팔꿈치아래 호신부는...
부동지가 되면 알게 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온몸에 챠크라가 열리게 되지요..
일만팔천 모공이 전부 챠크라가 된다고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구절이기도 하지요...
후대에 만들어진 능엄경과 같은 경전을 보면
부처님이 법륜을 굴리시기 전 미묘한 몸으로 변하신다는 구절이 나오기도 합니다만..
사실 그런 상징적인 모습을 표현한 문장들이기도 하지요..
제가 곧잘 농담삼아 수행을 해서 몸으로 나타나는 흔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수행은 몸으로 하는 것이고...
수행의 과위를 가다보면 몸에 그 흔적이 남게 되지요...
전삼삼 후삼삼이라는게 대충 그런 의미를 가진게 아닐까....
그냥 제 견해일뿐입니다.....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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