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마르세유는 왜 ‘마약 도시’가 됐나
마약 관련 살인사건 올해만 48건
빈곤-교육 저하-인종차별이 키워
올 크리스마스에 프랑스는 ‘노노’라 불리던 남성의 죽음으로 떠들썩했다. 노르딘 아초리(42)는 24일 늦은 밤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15구 거리를 걷다가 차에 탄 괴한의 총에 다리를 맞았다. 달아나려는 그에게 괴한은 여러 발을 더 쐈고 결국 아초리는 숨졌다. 몇 시간 뒤 마르세유 13구에서 괴한이 탔던 차가 불에 탄 채 발견됐다. 현지 언론은 사건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고는 ‘액션영화가 따로 없었다’고 전했다.
아초리는 마르세유 지역 마약 갱단 두목이다. 경찰은 아초리 살해 사건이 올해 마르세유에서 일어난 48번째 마약 관련 살인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올해 마르세유에서만 마약과 연루된 살인 사건이 일주일에 한 번꼴로 발생한 것이다.
마약 범죄는 프랑스 전역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올 1∼11월 경찰에 보고된 마약 범죄자 살인 또는 살인미수 사건은 315건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 늘었다. 특히 유독 마르세유에서 마약 시장을 놓고 대형 갱단끼리 죽고 죽이는 살인극이 잇달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르세유는 어쩌다 마약 도시가 됐을까. 파리에 이어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도시인 마르세유에는 대규모 항만이 있어 선박을 활용한 마약 밀매 역사 또한 길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세계 최대 헤로인 밀매 조직 ‘프렌치 커넥션’이 암약했다. 1971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이 조직을 붙잡으려 애쓰는 형사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영화를 제작할 정도였다. 마르세유 마약 갱단들은 중동이나 동남아시아산 양귀비를 들여와 헤로인을 생산해 미국 캐나다 등으로 수출하며 세를 키웠다. 이후 프렌치 커넥션은 결국 해체됐지만 뿌리째 뽑히지 않고 마약 밀매의 싹을 남겨 뒀다.
이 싹을 현재 상황으로 키운 자양분으로 프랑스 언론은 마르세유 지역, 특히 북부의 심각한 빈곤과 열악한 교육 그리고 인종차별을 꼽는다. 흔히 마약은 더 큰 쾌락을 맛보기 위해 한다지만 이 지역 빈민들은 가난을 잊기 위해 마약에 빠진다고 한다. 실업률이 70%에 달할 정도로 빈곤한 청년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만질 수 있는 마약 밀매에 가담한다. 청년들에게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교육 여건도 부족해 이들은 마약 시장으로 떼밀려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1960년대부터 이 지역에 모여 사는 북아프리카계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이 만연해 교육 및 치안 인프라에서 소외된 영향도 크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21년 마르세유 10대 소년들이 마약 범죄로 잇따라 숨지자 그해 9, 10월 연달아 마르세유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교육에 투자하고 치안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정치인들도 선거철이 되면 마르세유를 찾아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 떠났지만 달라지는 건 크게 없었다. 오히려 마르세유 마약 조직은 더 번성하고 관련 범죄는 더 늘어났다. 빈곤, 교육, 치안, 인종차별 문제를 해소할 근원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서 마약 범죄는 주로 연예인 같은 유명인의 투약 사실 중심으로 부각된다. 유명인이 연루돼야 언론과 사회의 주목을 끌어 수사 성과를 높이기 쉽다는 점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마약 범죄는 대중의 관심에서 먼 지역 소외된 이들에게 더 쉽고 빠르게 뿌리내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최근 10대 마약 사범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마약 범죄를 키우는 빈곤, 교육 같은 사회 문제를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더 큰 화를 막을 수 있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