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깨어 시계를 보니 아직은 한밤중이다.
뒤척 뒤척 할일을 찾아내다가 뉴스를 본다.
세상이 고요히 잠든 시간이다.
어제는 많이 추웠다.
날씨가 추워지니 내 마음도 추워지는 것 같다.
김미화씨가 또 다시 떠 오른다. 뉴스 속의 큰 인물로....
언젠가 내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을 한번 글로 남긴 적이 있다.
지금 나는 또 다시 그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뉴스를 작성한 기자의 글이 얼마나 객관적인가는 별도로 하더라도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녀의 오랜친구와 대질조사라는 말이 왠지 겁이 난다.
그녀를 언급하는 기사 윗부분에 그녀의 사진이 함께 하는데
그 사진 속의 김미화는 왠지 기세등등해 보인다.
그만큼 자신이 당당할 수 있음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대해 화가 난 것인지....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보이는대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녀를 누군가는 오프라 윈프리에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지만
오프라 윈프리의 엄청난 재력과 사회적 위치를 떠 올려본다면 그건 적절한 비유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녀 김미와의 블랙 리스트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으니......
그러나 친구를 찾아 남편의 일을 보도할 수 있도록 부탁을 했다는 것 까지도 애써 이해하려 한다.
막역한 사이이니 그럴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친구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들,
그야말로 오프더레코드에 해당되는 말들을 녹취했다는 부분은 편하게 글을 읽던 나를 깜짝 놀래게 한다.
헉!소리가 나는 것이다.
친구의 동의 없이 몰래 그것을 녹음했다는 사실은 나를 깜짝 놀래키고도 남는 것 같다.
설사, 그 친구가 사실이 그러하니 정말 니가 억울하겠다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기록하여 자료로 노출시킨 부분은 아쉽다.
가까운 친구와 나눈 이야기를 친구의 동의없이 계획하고 녹취한다는 것......
이는 정말 계획적이고 의도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세상만사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관점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를 만들고 생각의 차이가 신념의 차이를 만들기도 한다.
서로 다른 신념은 부딪쳐 소리내고 커다란 충돌을 빚기도 한다.
가끔 나만의 공간인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내 관점의 글을 쓰게 되기에
예기치 않은 타인의 댓글을 통해 깜짝 놀랄 충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건 단지 내 생각이었며 누군가는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음을 생각하며
마음을 담담하게 가질 수 있었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 적 읽던 동화책 속에는 '두친구'이야기가 있다.
오래된 클래식 같은 동화이다.
같이 길을 가던 두 사람이 곰을 만나게 되었는데 한 친구는 먼저 살기위해 도망을 치며
나무위로 올라가버리고 남은 친구는 땅바닥에 엎드려 죽은듯이 있게 되었다.
곰은 바닥에 엎드린 친구 곁으로 와서 흥흥 냄새를 맡다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 곁을 떠나가고, 그 후에 나무에서 내려 온 친구는 곰이 그에게 뭔가를 말한 것으로 생각하고
'곰이 좀 전에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고 묻자
'친구를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친구는 친구가 아니다'고 하더라고...
뭐 이런 이야기이다.
갑자기 그 이야기가 떠 오르고 믿을 수 없으며, 신뢰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친구를 팔아 자신의 길을 찾는 사람으로 김미화의 이미지가 굳어질 것 같아 안타깝다.
그녀는 커다란 신분상승을 꿈 꾼 신데렐라가 열두시가 지난 듯한 느낌을 준다.
왠지 거북한 심정이다.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왔던 어느분은 남편의 사회적 위치에 자신을 맞추어 사는 일이
너무나 가식적이고, 스스로의 모습이 아닌 듯해서 힘겨웠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남편의 아내는 우아하고 품위 있고
박제된 사람같은 미소와 정숙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것을 지켜야 했기에 힘겨웠다고....
그러다 보니 자신을 잃게 된 듯 하다고.....
나 자신이 만들어가는 내가 아니고 타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나로 살아야하는 것은
불편하고 어색한 일이 될 것이다.
자기답게, 스스로답게.... 그렇게 사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 같다.
쓰리랑 부부를 하며 '음메 기 죽어' 하던 그 김미화가 가장 생명력 넘치는 김미화가 아닐까 싶다.
남들에게 자신의 웃음과 애환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꾸밈없이 있는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소탈한 김미화가 그립다.
잘잘못이 가려지거나
아니면 그야말로 간단한 해법으로라도 이 문제에서 벗어나 우리가 기억하고 생각하는
예전의 김미화로 돌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