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직 이 카페에서 삼법인에 관한 글을 올리지 않았군요....
우리가 아는 삼법인은 고 무상 무아라고 알고들 있지요...
원래 원어는 듀카 안이타야 안아트만이라는 말이지요...
후대 인도북부에서 세력을 잡았던 대승불교권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삼법인은
일체개고 제행무상 제법무아라는 삼법인이지요..
선불교에서 소설을 만들어 상징적인 것으로 만든 소설이
가랑잎을 타고 큰 강을 건너 소림사 모처의 동굴에서 십년 면벽을 했다는 달마가
한쪽 팔을 짤라 달마에게 자신의 의지를 보였다는 혜가에게 전법의 증표로 주었다는
대승입능가경에 선불교의 삼법인이 자세하게 나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찾아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초기불교의 삼법인에 대해 요즈음 많은 연구들이 있었지요...
듀카는 사실 엄밀하게 이야기해서
수행자가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정신적인 고통을 말하지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생활고나 사회를 살아가며 느끼는 고통을 말하는게 아니지요...
안이타야라는 말은 한자로 무상이라 번역이 되었지만...
세친논사의 말을 잠시빌리면
사실 수행을 해서 알고나면 변하기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손에 닿아 변괴하기때문에 고통을 주는 것이다라고 말해 놓았지요...
알고보니 부끄럽드라...그래서 그게 고통을 준거였드라....그런 의미이기도 하지요..
해서 바르게 살라고 말하는거지요...
그런데 안이타야라는 산스크리스트어는 이천년전에 사용되었던 글자고...
여러가지 의미로 분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여러가지 의미의 말 중에는 적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지요...
일설에 파알리어로 번역되는 니까야에서는 안이타야라는 말을 니르바나....
해탈이나 열반의 의미로 번역되었다고 합니다...
안이타야=적멸=니르바나
제가 보기에는 안이타야는 우리가 흔히 아는 무상 변한다는 막연한 의미보다는
한단어로 줄이면 적멸이라는 말이 맞는게 아닐까 하지요...
제가 앞에 적어 드린 불교공부에서 불교수행자가 그 과위의 수행을 마쳤다고 몸으로 알게 되는 것이
적멸현상이지요..
비상비비상처정에서는 의식이 찰라찰라 적멸하는 현상이 생기고
멸진정에서는 숨과 의식이 찰라찰라 적멸하는 현상이 생기지요...
대중부 수행자는 적멸을 본 후 마하반야바라밀다를 행하게 되고
상좌부 수행자는 적멸을 본 후 사마타 수행을 마쳤다고 스스로 알게 되고...
통찰지를 얻는 조견을 하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이니까요...
적멸현상은 잠시 기절하는 현상이 아니라 눈깜빡 깜빡하는 찰라의 시간동안에 반복해서 일어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어디 놀러다니다보니 수식관을 하며 무리한 호흡으로 기절현상을 겪으면서
적멸이다는 엉뚱한 분들도 계시든데...그런거 아닙니다..
지극히 집중된 자연스러운 선정 상태에서 찰라찰라 끊어짐이 발생하고
선정을 풀고 나오면 일어나지 않는 현상입니다...
안아트만이라는 말은 아트만이 아니다...라는 말이지요..
불교서적에 자주 등장을 하는 말로 아공법공 아공법유가 되는 근본적인 말들로...
사실 안아트만이라는 말은 앞에 써 드린
선정에 들어 오온이라는 것들을 해체하고 봐도 아트만의 것이나 아트만은 없다...
나라고 하는 것에는 아트만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혹자들은 그 말은 나는 없다 공하다는 말들로 하시는데...원래 그런 의미의 말들이 아닙니다..
아트만은 없다 아트만은 공한 것이다...라는 말이지요...
안아트만은 사실 사마타수행을 한 후
조견 통찰을 통한 깨달음의 말이기도 하지요...
사실 우리가 살아가며 하는 고통을 일으키는 일들 중 대부분의 일들이...
아트만이 실제한다는 취온이 자기를 어리석은 고통으로 끌게 하는 일이 많기는 하지요...
듀카 안이타야 안아트만...
고 무상 무아....
이것저것 찾다보니 그런 의미들로 찾아지더군요....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