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자'
울리 회네스
"
회네스는 선수시절 10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경영자가 된 이후에는 40회 이상 우승의 기쁨을 맛 볼정도로 경영자로서 더 빛난다.
운동선수에서 경영자로서 변신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이다.
"
한델스블라트
(독일 경제일간지)
키커지 랑리스테
1970 considered_ [12/70] [Midfielder]
1971 considered_ [07/71] [Midfielder]
1971 considered_ [07/71] [Central Forward]
1971 broad circle [12/71] [#9 Midfielder]
1971 Internat. Cl. [12/71] [#4 Central Forward]
1972 Internat. Cl. [07/72] [#3 Midfielder]
1972 Internat. Cl. [12/73] [#3 Midfielder]
1973 broad circle [07/73] [#5 Midfielder]
1973 Internat. Cl. [12/73] [#1 Midfielder]
1973 Internat. Cl. [12/73] [#2 Central Forward]
1974 World Class [07/74] [#2 Central Forward]
1974 Internat. Cl. [12/74] [#4 Central Forward]
1975 considered_ [07/75] [Outside Right]
1975 not considered [12/75]
1976 broad circle [07/76] [#2 Outside Right]
1976 broad circle [12/76] [#3 Outside Right]
1977 considered_ [07/77] [Outside Right]
1977 not considered [12/77]
1978 considered_ [07/78] [Outside Right]
1978 not considered [12/78]
1979 not considered [07/79]
월드클라스 : 1회
인터내셔널 클라스 : 6회
(포지션때문에 중복되는 부분이있어 해외 그레고리악 아저씨 글을 그대로 올립니다.)
(중복되는 기간중 가장 좋은결과만 남기고 제외해도 월클과 인터내셔널 횟수는 똑같습니다.)
팀 커리어
챔피언스리그 3회 우승
분데스리가 3회 우승
포칼 우승
인터컨티넬 컵 우승
월드컵 우승
유로 우승
바이에른 뮌헨 경영자 시절
1975년 챔피언스리그 리즈유나이티드와 바이에른 뮌헨 결승전 전반 42분 회네스는 부상을 입고 교체당한다.
당시 율리 회네스 나이 24살 너무나 큰 부상을 당한다.
율리 회네스는 결국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27살 창창한 나이에 선수생활을 은퇴한다.
바이에른 뮌헨 보드진은 이른 나이에 은퇴하여 슬픔에 잠겨있는 회네스를 바이언 보드진에 받아준다.
그는 27살의 나이로 구단역사상 최연소 이사진에 오른 것이다.
1975년 우승 후 급격히 팀은 쇠락해갔다. 유럽축구 무대 정상을 한 번도 밟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분데스리가에서도 보루시아뮌헨글라드바흐, 함부르크SV 등에 챔피언 자리를 내줬다. 팀은 750만마르크에 달하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비라도 오면 경기장 관중은 수천 명 수준으로 줄어 경기장이 텅텅 비었다. 구단 수입의 85%를 티켓 판매에 의존하고 있던 때라 타격은 더 컸다.
회네스는 주변 기업들과의 스폰서쉽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구단 팬샵도 열었다.
이 또한 미국 스포츠 클럽들의 마케팅에서 배워온 것인데, 당시 회네스는 "바이에른이 우표나 엽서 쪼가리 팔던 조그만 매장을 갖추고 있던 시절, 미국 농구/야구 팀들은 구단 전용숍에서 티셔츠나 스카프, 모자, 가방 등을 팔고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회네스는 곧장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겼고, 구단 로고가 들어간 각종 스포츠 용품을 팔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어느 구단이나 흔히 갖추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유럽에선 매우 생소한 "팬샵"을 도입한 것이다.
이러한 회네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바이에른 뮌헨은 유럽에서 가장 모범적인 재정으로 손꼽히게 되었고
차츰 옛날의 명성을 되찾아갔다.
특이사항
1. 동생 디터 회네스는 당대 독일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명이며 바이에른 뮌헨 명예전당에 소속되어있다.
2. 소세지 공장을 운영하며 탈세를 저질러 뒤늦게 자수했지만 실형을 선고받아 현재 옥살이 중이다.
3. 바이에른 뮌헨 일부 선수들은 회네스를 아버지처럼 여긴다고 한다.
4. 과르디올라의 영입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회네스라고 알려져있다.
과르디올라는 회네스의 부재를 굉장히 아쉬워했다고 한다.
회네스가 석방될때까지는 바이언에 남고싶다고 인터뷰 한바 있다.
5.과거 리베리와 펩 과르디올라는 회네스 면회를 종종 간 바있다.
6. 지금은 낮에는 바이에른 뮌헨 유소팀에서 일하며 밤에는 교도소로 들어가고있다.
7. 선수 은퇴후 알콜중독자가 되어 히모코모리가 되어버린 동료이자 친구인 게르트 뮐러를 베켄바워와 마이어등과 찾아가
구출해냈고 바이에른 뮌헨에 직책을 주며 갱생시켰다. 게르트 뮐러 여전히 바이언에서 코치직을 하고있다.
8.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에 '창조자'라는 별명과 함께 들어가있었으나 탈세혐의 이후 스스로 반납하였다.
율리 회네스의 어록
(하그리브스 사가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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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롭고 젊은 클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하그리브스같은 선수를 팔의도는 절대 없습니다.
뮌헨은 절대 빅클럽에 선수를 뺏길만한 구단이 아닙니다. 엄청난 돈을 제시한다해도 절대로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일단 그렇게 굴복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명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는 법이죠.
"
"
우리는 하그리브스에게 입을다물고 있으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렇지않으면 저는 분명히 화가 날것이고 그래서 하그리브스에게 좋을건 하나도 없죠.
우리가 맨유의 제의를 거절했는데도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뮌헨은 어떤경우에도 하그리브스를 놓아주지 않을것입니다.
그는 구단의 결정을 받아들어야하고 팀에대한 존중을 보여야합니다.
"
"
만약 우리가 하그리브스의 대체 선수를 찾았다고 생각될경우 그를 팔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은행이 아니라 축구 클럽입니다. 최우선은 팀을 강하게 만드는것입니다.
축구클럽에게 3천만 파운드가 은행에 있다해도 무슨 소용히 있겠습니까?
"
(바이에른 뮌헨은 티켓값을 왜 올리지 않냐는 질문에)
"
물론 우리는 시즌 티켓 가격을 120 유로보다 더 높게 책정할 수 있다.
우리가 시즌 티켓 가격을 350 유로로 올려도 여전히 팬들은 경기를 보러 올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250만 유로의 추가 수입을 얻게 되지만, 이 250만 유로로 구단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팬들에게 있어 120 유로와 350 유로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우리는 팬들을 우유를 짜내야 하는 젖소로 보고 있지 않다. 축구는 모든 이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와 잉글랜드의 가장 큰 차이이다
"
(트레블 뒤 선수들 이적설에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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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뮌헨은 선수를 사는 구단이지 파는 구단이 아니다.
"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로부터 리베리 이적설이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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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우리는 바이에른 뮌헨이다. 만만치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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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