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적 어법으로 씌여진 유대인 영웅의 이야기 - 유앙겔리온
어릴 땐 유독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해서, 지금은 대부분 그 디테일한 내용을 잊었지만, 올림포스 신들의 계보와 영웅들의 이름들을 줄줄 꿸 정도로 빠져 지낸던 것 같다.
지금봐도 재미난 공통점은, 특별한 영웅이나 주인공들은 대체로 '신의 자녀들'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신들의 왕 제우스'가 인간 여성을 유혹하여 잉태/출산시킨 아이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신의 자녀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주로 헤라)이나 인간의 질시와 증오의 대상이되어 비참한 상태에 처하거나 견디기 힘든 고난을 받는다. 이들은 불굴의 의지로 수 많은 역경을 헤쳐나가는 와중에 힘과 지혜를 얻고, 결국 세상을 구원한다. 그리고 비극적으로 죽어서 부활하여 신 또는 반신이 된다. 이런게 항상 뻔하게 반복되는 스토리의 클리셰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뻔한 스토리를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진심으로 감동해서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 자체가 매우 재미있고 아름답고 또 환상적이었기 때문에 꽤 나이가 든 후에도 정신세계에 영향을 지속적으로 남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릴 때 교회에서 교육받은 '신의 아들 예수'의 이야기도 그리스 로마 신화의 틀 안에서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교회의 가르침이라는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되는 이야기라도 내가 구원 받으려면 억지로 믿어야 한다' 뉘앙스의 설득이나 회유였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러웠다랄까? 그들의 우려와 다르게 나에겐 그냥 '그리스 로마 신화' 처럼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들렸다.
시간이 지나서 합리적 사고에 젖어버린 이후에야 예수의 탄생과 죽음, 부활, 승천 이야기에 회의감이 들었던 것인데, 어린 시절 처럼 생각하면 그저 '그리스 신화 속 영웅 이야기의 유대교 버전'일 뿐이었다. 무대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나 이집트가 아닌 1세기 팔레스타인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페르시아 키루스 치하 이후 조로아스터교의 샤워를 수백년간 받다가 또다시 헬레니즘의 샤워를 수백년간 받은 팔레스타인과 그 주변국의 유대인 이주민들도 어쩌면 나처럼 그리스 신화의 세계에 그들의 정신을 깊숙히 빠뜨리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우리가 아는 플라톤, 피타고라스, 에피쿠로스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은 단지 사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가 '신화와 종교'의 형태를 띄고 당대 대중들에게 전파되고 수용됐던 것들이다. 우리나라 판소리 같이 노래와 춤 또는 연극까지도 하는 '재담꾼들'에 의해서... 그런 재담꾼 중 말빨 좀 좋고 글 좀 쓴다는 먹물들이 그리스 비극 스타일의 '유대인 영웅'이야기를 '새로운 그리스도'라는 테마로 쓰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본토의 유대인이 무리하게 일으킨 전쟁으로 말미암아 선조의 거룩한 성전이 로마군의 군화발에 처절히 짙밟힌 절망의 시기에는 그런 영웅이 정말로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임박해보이는 종말에 그들을 구원할 영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