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wu bona(사우보나) : 아프리카 줄루족의 인사말.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뜻
그날은 정말 땅으로 꺼져 버리고 싶었다. 일은 처음 의도와 다르게 흘러갔고 그 와중에 마
음을 다친 사람들이 나에게 원망을 퍼붓고 있었다. 남탓하지 말라고 대거리를 해주고 싶었
으나 그들의 감정 또한 이해 가능한 범주의 것이라 들끓는 내 감정은 혼자 삭혀 내며 모두
가 조금씩 손해 보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정말 모든 인간관계망
에서 나를 도려내서 낯선 곳에 떨어뜨리고만 싶었다.
그래서 덜컥 주말에 일본으로 떠나는 항공권을 예약했다. 쭈뼛거리며 가족 행사 핑계로 연
차를 썼다. 2박 3일간 오사카 교토 여행. 혼자 국내 여행을 떠나본 적도 없었는데, 해외라
니. 이전까지는 나에게도 든든한 여행파트너가 있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인데, 그 녀석이
결혼과 출산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버려 이전과 같은 동행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과연 내가 혼자 잘 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복잡했지만, 모든 관계에서 단절되고자 떠나는
여행마저도 함께 할 누군가를 찾는다는 것이 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혼자라는 이유로 시도조차 못한다면 스스로가 한심해서 더 우울해질 것만
같았다.
혼자 떠났던 그 여행에서 나는 외로운 순간들을 맞기도 했지만, 주로 행복했다. 나를 갉아
먹던 부정적인 생각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한결 평온해졌다. 나는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이후의 여행은 때로는 홀로, 때로는 함께였고
양쪽 다 나에게 각기 다른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한국인들(특히 중장년층)이 혼자 여행하는 나를 참 용기 있다며 추켜세
워줄 때가 가끔 있다. 사실 시작이 어렵지 막상 그 매력을 알고 나면 특별한 용기 없이도 떠
날 수 있게 된다. 어려운 점이 있다면 여행지 및 맛집에 대한 정보를 찾고 선택하는 일이 고
스란히 나의 몫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래서 신이 나지만 그러다 쏟아지는 정보들에 정
신이 없어지기 십상이다.
현지에서 진행하는 반나절 투어에 참여하면 이런 나 홀로 여행의 부담감이 반쯤은 줄어든
다. 코스는 주로 도시에 짧게 머무는 사람들이 꼭 봐야 하는 명소 중심으로 채워져 있고, 도
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설명들도 함께 들을 수 있다. 현지에서 살고 있는 가이드들만이
해줄 수 있는 맛집 추천이나 여행 꿀팁들도 제공되기도 한다. 영어 능통자가 아니라면 한국
인 가이드가 진행하는 투어를 예약하면 된다. 나는 주로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날 5시간 이
내의 도시 걷기 투어를 선호한다.
사실 한 도시에 길게 머무는 것을 즐기는 여행자에겐 짧은 시간 안에 관광 스팟을 훑는 투
어가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낯선 도시와 친해지는 워밍업 같은 거
라고나 할까. 언젠가부터는 가이드북의 무게가 벅차게 느껴지기도 하고, 기껏 멀리 떠나와
서는 정보를 찾느라 내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보일 때도 있다. 그
럴 땐 그 동네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도시를 소개받고 싶
어진다. 바쁘게 스쳐 지나가 아쉬운 장소는 나중에 다시 방문해 느긋하게 즐기면 된다. 난
시간이 많은 느린 여행자니까.
거기다 한국인 가이드분들은 투어 참가자들에게 인생샷을 남겨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실 나는 일상에서도 인증샷 개념의 사진은 잘 찍지 않으며, 나의 일상을 SNS에 전시하지
도 않는다. 어쩌다 찍은 사진들을 자주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는 내가 겪은 일들을 함께 추억해 줄 존재가 없으므로 사진으로라도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
이 평소보다 강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소매치기에 대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유럽에서 삼각
대를 놓고 사진을 찍기는 어려워 결국 풍경 사진과 셀카만 남게 된다. 그럴 때 이런 투어에
가게 되면 대표 코스들을 들를 때마다 가이드가 선정한 최고의 스팟에서 최상의 구도로 찍
힌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혼자 참여한 사람의 사진을 각별히 더 신경 써 주시는 느낌이긴 한
데, 여럿이서 놀러 온 사람들의 단체 사진을 찍어주시는 데도 진심이시다.
[AFTER]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는 "마이리틀트립"에서 나의 일정에 맞고 평점과 후기가 훌륭한 투
어를 찾아 예약했다. 리스본과 포르투 모두 운 좋게 입담이 좋은 다정한 가이드분들을 만나
전반적으로 만족도가 높았다.
리스본에서 한 반나절 걷기 투어는 3시쯤 시작해서 7시 조금 넘어 마쳤는데, 겨울이라 해가
빨리 져서 석양과 야경을 함께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원체 관광 명소도 많고 이야깃거리도
풍부한 리스본이라 가이드님도 시간을 꽉꽉 채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그날 들었던
정보들은 이후 리스본 여행에도 영향을 끼쳐 도시 곳곳을 조금 더 친숙하면서도 깊게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보조배터리 파손이라는 작은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이
드님께 도움을 구했는데, 친절하게 정보를 알려주셔서 매우 감사했다. 이미 끝난 투어의 고
객에게 다정하게 안부까지 물어주시는데, 든든하고 감사했다.
자그마한 도시인 포르투에서는 사실 투어가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명소가 많지 않아 리스본보다는 투어가 느슨하게 진행되었고, 심지어 가이드분의 추천 카페에 들러 음료를 마시는 시간까지 코스에 포함되어 있어 좀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포르투가 맞이하고 있는 변화나 현지 생활인으로 겪고 있는 고충 등 살아 있는 생활인으로서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by. 가름끈 https://brunch.co.kr/@nosweat/78
(위 글은 작가님께서 행복한가에 기부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행복한가 이 외의 공간에 무단 복제 및 도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