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평도 평화트레킹 #2
10:35 평화공원(추모공원)
연평도 평화공원은 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 당시 전사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한 곳으로
북녘하늘과 맞닿은 작은 언덕위에 평화를 갈망하는 그들의 큰 뜻이 담겨 있다.
입구에는 대잠헬기, 상륙장갑차, M47 전차 등이 전시되어 있고, 조형 추모비 ‘용치’는 제1, 2차 연평해전에서 희생된 25명의 군인정신을 새겨 25개로 설치됐다.
그중 6명의 전사자들을 구분하기 위해 6개는 두랄루민으로 만들었다.
연평해전과 포격전 당시 희생된 군인들의 직급과 이름, 얼굴 부조가 늘어서 그날의 참상을 말하고 있다.
퇴역한 M47 전차
공원 중앙에 전시된 조형물 추모비는 피라미드 형상으로 25개의 용치를 조성하였고
용치는 치아를 표현한 방어시설로써 국토방위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담고 있다.
연평포격전 전사자 위령탑
연평도 포격전은 2010년 11월 23일 우리 측의 정상적인 사격 훈련을 중단해달라는 북한의 요청을 거절하자
포격 훈련이 종료된 10분 후 아무런 선전포고도 없이 대연평도로 포격을 해서 피격 직후
북한을 향해 대응사격을 가한 사건으로 이로 인해 전사한 해병대원 2인의 위령탑이다.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부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서정우 병장은 말년휴가를 가기 위해 연평도 앞 부두에서 인천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 포격전이 발생하자
부대로 복귀 중에 인근에서 터진 포탄 파편에 맞아 전사했다.
사망 직후 1계급 추서돼 최종 계급은 대한민국 해병대 하사이며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서 하사가 전사한 자리에는 그의 모표가 소나무에 박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포탄이 떨어졌던 자리는 움푹 파여 그날의 참상을 대변했다.
문광욱 일병은 이등병으로 근무하던 중에 북한의 기습적인 포격으로 전사했다.
대전현충원에 안장됐고 일병으로 추서됐다.
우리팀 모두 조국 수호를 위해 희생한 전사자들께 경건한 마음으로 묵념을 한다.
평화공원에서 바라본 조기역사관
1999년 6월 15일과 2002년 6월 29일, 2차례에 걸쳐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을 무시하면서
북한 경비정이 침범 및 철수를 반복하자 이를 선체 뒷부분을 부딪쳐 막는 일명 '밀어내기 작전'으로 대응 중
북측이 먼저 기습적으로 사격을 개시하고 남쪽이 대응사격을 하면서 양측이 전사자와 부상자를 낸
제1, 제2연평해전의 시간대별 교전 상황이 상세히 적혀 있다.
<연평도 평화공원 내에 미디어 홍보관>
미디어 홍보관은 1억여원의 사업비를 들여 길이 8m, 높이 3m 규모로 중앙의 멀티비전(2X2m)과
좌우 끝 쪽 각각에 50인치 디지털화면, 중앙을 중심으로한 좌우에 각각터치스크린 모니터로 구성되었다.
중앙의 멀티비전은 동영상으로 구성되어 제1, 2차 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포격에 대한 영상물로 제작되었으며
디지털액자 화면 및 터치 스크린 모니터는 각 사건에 대한 주요내용 및 사진으로 구성되었다.
10:50 조기역사관으로 이동한다.
조기역사관은 연평도 역사와 함께하는 조기잡이 풍물을 재조명하여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장소로 활용하고자 건립했다고 한다.
10:56 가리칠기해변 전망대
전망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가래칠기해변
알록달록한 자갈과 굵은 모래알들이 발에 밟히는 천연해변이다.
군데 군데 넓적한 바위들이 터를 닦고 있어 아무데나 걸터 앉으면 그곳이 쉼터가 된다.
섬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절벽으로 이어지는 해변이 마치 갈매기가 나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한다.
가래칠기해변에 위치하고 있는 병풍바위는 기암괴석이 많은 연평도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해안을 따라 병풍을 쳐놓은 것과 흡사하여 병풍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1:00 연평 8경 조기역사관
연평도 조기잡이배 조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