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존경하는 XXX 교수님.
저는 오는 XX월 XX일 X시에 선생님께 외래 초진을 예약한 XXX입니다.
진료 전에 이렇게 선생님께 편지를 드리게 된 것은, 외래 진료시에 제 여자 친구를 동반할 가능성이 있어서, 그 자리에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을 다 못 드릴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점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1. 저는 제 여자친구(XX세)가 얼마 전 경찰에 의해 즉결심판에 회부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여자친구가 받은 혐의는 서너 달 동안 백여 차례에 걸쳐 거짓 112 신고를 했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저는 지금 즉결심판의 대상이 된 제 여자친구의 행동이 환청과 망상으로 인한 현실검증력 손상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 여자친구가 겪고 있는 환청과 망상의 내용은 “과거 자신을 스토킹하던 홍 아무개의 친구들 여러 명이 한꺼번에 또는 번갈아가면서 자신을 찾아와서, 자신의 뒤에서 몸을 밀착하거나, 자신에게 ‘왜 홍 아무개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았는지’ 따지면서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3. 즉결심판 출석통지를 받은 후에는 이러한 환청과 망상이 더 심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2021. X. XX.과 2021. X. XX. 여자친구와 외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지하철 객차 안이나 버스정류장 등에서, 옆에 서 있거나 지나가는 다른 사람들에게 갑자기 심한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따지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제가 진정시키고 왜 그러는지 물어보면, 그 사람이 자신이 홍 아무개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았다면서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저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즉결심판을 받아야 하는지 화가 난다고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4, 이 사건으로 인해 저는 제 여자친구가 망상증이나 조현병에 걸린 것으로 의심하게 되었고, 꼭 치료받게 하려는 생각에, 여자친구의 가족들과 연락을 한 결과, 여자친구의 가족들도 저와 같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5. 여자 친구의 가족들에 의하면, 여자 친구의 현실검증력에 문제가 생긴 것은 10여년 전부터이고, 그동안 병원치료를 권유하고, 심지어 사설구급차를 통해 보호입원을 해보려고도 해봤지만, 여자 친구의 거센 저항에 의해 실패하였던 것 같습니다.
6. 여자 친구의 가족들과 저는, 여자 친구에 대해 전문의의 치료가 꼭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고, 함께 힘을 합하여 이 친구를 설득한 후, 병원치료를 받게 하자고 결정하였습니다. 자발적으로 통원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최선이긴 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하더라도 혹시 그게 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보호입원 가능성도 모색해보기로 하였습니다.
7. 제가 제 이름으로 선생님께 진료 예약을 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고, 지금은 제 여자친구도 “저의” 외래진료에 동반하겠다고 합니다. 지금 여자친구는 제가 제 문제로 인해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고, 지금은 제가 진료를 받는 모습을 본 후, 자신도 진료예약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합니다.
8. 저는 단골식당 사장님의 소개로 이 친구와 만나서 2년 반 정도를 교제하였습니다. 그 동안 이 친구가 불안과 강박이 남들보다 좀 심한 측면이 있고, 틱으로 의심되는 조금 이상한 습관이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친구가 배려심이 많았고, 이 친구와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그런 행동 쯤은 저에겐 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 동안 이 친구에게 환청과 망상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은 거의 없었습니다.
9. 제가 그동안 틱증상으로 의심했던 “조금 이상한 습관”이란, 아무 이유 없이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첫 데이트는 영화를 보는 것이었는데, 세월호 유가족 얘기가 나오는 꽤 슬프고 우울한 영화였습니다. 모두 다 침울한 맘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가운데, 느닷없이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 친구 때문에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때는 저는 그저 영화 보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0. 그런데 그 후로도 이 친구는 아무 이유 없이 뜬금없게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왜 웃었어요? 같이 좀 웃어요." 되묻는 제 앞에서 이 친구는 그저 소리 내 웃기만 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물어봤습니다. "여친님. 여친님이 별 이유없이 웃고있으면 내가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세요?" 이 친구는 걱정스려운 눈빛으로 되물었습니다. "혹시 무서우세요?" "아. 무섭다고 한 사람이 있었나요?" "네". 저는 이 친구가 이 문제로 오랫동안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걸 그 때 알았는데, 특별히 현실검증력을 의심할만한 다른 사건은 없었기 때문에, 저는 단지 일종의 틱 증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1. 같이 길을 걷다가 혼잣말로 심한 욕을 하는 경우는 있었는데, 제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아니다. 괜찮다”고 말하여서, 그 또한 일종의 틱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2. 이 친구는 고집이 센 편이고, 의심이 많습니다. 저랑 처음 만날 처음에는 구형 피처폰을 사용하고 있어서, 제가 스마트폰을 하나 선물해주었는데, 피처폰을 계속 사용하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제가 선물해준 스마트폰을 개통하여 사용하게 될 때까지 1년 넘는 시간 동안 집요하게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13. 저와 처음 만날 때, 이 친구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역시 굉장히 오랜 기간 설득을 해서, XX병원 가정의학과 금연클리닉을 통하여 챔픽스를 처방받고 담배를 끊었습니다.
14. 보통사람은 잘 하지 않은 의심을 하고, 그 의심을 해소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노력합니다. 가령, 편의점 영수증에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현출되면, 매번 편의점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합니다.
15. 이 친구는 위와 같이 보통 사람에 비해 불안과 강박이 심한 편이지만, 기본적으로 남에 대한 배려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친구는 파출노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실하고 일을 할 때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식당 사장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편입니다. 또한 자신이 학비를 벌어가며 사이버대학교 XX과에 진학한 후 열심히 공부하여, 2020년 2월에는 학사학위를 취득하기도 하였습니다.
16. 상술한 사건을 계기로 저는 여자 친구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리게 되었고, 지난 추석 때는 여차 친구가 저희 가족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다행히 저희 가족들은 조현병에 대한 이해가 보통 사람들보다는 높은 편이라서, 여자 친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향후 저는 여자 친구와 결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외래 예약이 된 XX월 XX일 XX시에 찾아뵙고, 선생님의 가르침을 얻고자 합니다. 여자 친구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여자 친구도 “저의” 외래진료에 동반하겠다고 하니, 그 때까지 여자 친구의 마음이 바뀌지 않고, 함께 찾아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혹시 방문 전에 제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면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010-XXXX-XXXX)
첫댓글 정말 대단한 남친이군요.아름답게사귀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