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위대한 trisector 최익곤을 만난 얘깁니다. 제가 얼마나 황당했을지 느껴 보세요.
집에 가려고 가방까지 다 챙겨 들었는데, 연구실에 웬 아저씨가 기웃거린다.
무슨 일이시냐니까, 뭣 좀 물어 보러 왔단다.
"제발 각의 삼등분만은 묻지 마라"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며칠 전 한국일보에 ..."라고 하는 게 아닌가?
"혹시 최익곤씹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날카롭고 지적으로 생겼을 줄 알았더니, 뜻밖에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하게 생겼다.
누구나 다 시작하는 것처럼, "그건 이미 불가능하다고 증명이 되어 있습니다"라고 했더니, "Wantzel의 증명은 대수학으로 했어요. 하지만, 각의 삼등분 문제는 기하 문젭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그 사람 목소리 되게 크더군.)
그러면서, "선분을 이등분하고 또 이등분하고, 이렇게 하는 점과, 그 선분을 삼등분하고 또 삼등분하고 이렇게 하는 점은 만나지 않지요?"하고 묻는다.
"그거야 당연하죠."
"그런데, 그건 대수에서 안 만난다는 거지, 기하에서는 바깥에 있는 다른 점에서 만납니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
"아니, 그게 무슨 말이죠? 각 점들은 처음 선분 위에 계속 있는 것 아닙니까?"
"허허, 그게 바로 대수와 기하의 차이라니까요."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분명히 각 점들이 선분 위에 있다고 했잖습니까?"
"그러니까, 기하 문제를 대수로 푸는 데는 수직 이등분선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는 증명이 안 된단 말이예요."
이쯤 되면, 이 사람 횡설수설하는 게 보일 듯.
몇 마디 얘기를 계속했는데, 모두가 이런 식이다.
"그 광고에 Wantzel의 증명에 대한 얘기가 있던데, 그 증명을 보긴 하셨나요?"
"그 증명은 대수를 가지고 하지요. 그런데, 수직 이등분선을 그리면..."
"제 질문을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Wantzel의 증명이 맞고 틀리고가 아니고, 그 증명을 보신 적이 있냐구요."
"아, 글쎄 학생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 증명은 대수를 써서 한 거고, 이 문제는 기하에서 왔다니까. 난 cos10o - cos30o 나누기 cos30o 한 걸 sin θ라고 했다니까."
이러면서 계산기(!)를 꺼내서 두드리는 거다.
"그건 근사값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데, 내가 이걸 딱 맞게 만들었다니까."
"연필 끝 정도로 맞았겠죠."
"아니, 내가 실제로 계산해 보았다니까."
이런 사람을 상대하는 기본 요령은, 그가 했다는 작도 따위는 입에도 못 올리게 해야 한다는 거다. 수십줄에 이르는 작도 과정을, 틀렸다는 걸 뻔히 알면서 일일이 검사할 수도 없는데, 그 따위 작도가 화제에 올라 봤자 나만 피곤해지는 법. 게다가 그런 사람에게 일말의 희망(?) 따위를 줄 수야 없지 않은가.
"솔직히 전 그 작도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제 질문부터 답하시죠. Wantzel의 증명을 보신 적 있습니까? 혹시 보신 적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되던가요?"
"Wantzel의 증명은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하와 대수라는 두 학문 사이의 전환에서 잘못이 생길 수 ..."
"그럼 다시 질문하지요. 해석 기하가 틀렸다고 생각하세요? 좌표를 써서 도형을 연구하는 게 잘못되었나요?"
"난 순수하게 기하로 증명했어요."
"여전히 제 질문을 이해 못하시는군요. 기하학적 도형을 좌표 평면에 올려놓고, 각 점들 사이의 관계를 따지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시냐는 겁니다."
각을 삼등분한다는 것이 좌표 평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예로 60o를 들었다.
그랬더니 대뜸, "20o는 만들 수가 없지요."
"예? 20o 작도에 성공했다면서요."
"지금까지는 20o를 그릴 수 없었다는 말이지요."
"지금 말하는 건 삼등분의 방법이 아닙니다. 삼등분 방법이야 어떻든, 20o라는 각이 존재하는 건 사실 아닙니까. 그래서 그거 셋을 겹쳐 보면 60o를 삼등분한 거 아닙니까. 이런 삼등분한 각이 존재한다고 하자는 겁니다."
여기서, 최익곤씨 약간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그렇게 가정할 수도 있지요."
보아하니, 60o는 간단하게 작도 가능하지만, 20o라는 건 간단치가 않다.
따라서, 20o라는 각은, 60o를 작도하기 전에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대충 설명을 했더니, 또 딴소리를 늘어 놓는다.
"잠깐요. 계속 질문에 답을 않으시는데, 해석 기하를 인정하세요?"
"저는 해석 기하는 잘 몰라요." 난감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정말로 잘 모르는 게 아닐까, 아니 해석 기하는 전혀, 눈꼽만큼도 모르는 게 아닐까?
"하지만, 학생도 이 도면을 보면..."
신문에 난 그림이 너무 작아서 그려 왔다면서, 자보 용지 반만한 도면을 꺼낸다. 이런 걸 얘기하게 두면 안 된다.
"계속 말을 엉뚱한 데로 돌리시는데,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면 전 더 이상 댁의 말을 들을 필요를 못 느낍니다."
사실 이만큼 들어 준 것도 시간이 아깝다.
"다시 여쭙겠습니다. 해석 기하를 인정하세요?"
"뭐, 그것도 맞죠."
머뭇거리더니 대답한다.
"그럼, 좌표를 나타내는 숫자 사이의 관계를 대수를 써서 연구하는 건 어떻습니까, 인정하십니까?"
"그래도, 그건 대수고 이 도면은..."
이젠 그만 들어도 될 듯하다.
"안녕히 가십쇼." 한 마디만 던지고 나와 버렸다.
얘기해 본 소감은, 이 사람은 수학을 거의 모른다는 점이다.
생각같아서는, "중학교 수학부터 새로 배워라"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이 든 사람한테 그런 말하기도 그렇고...
그리고, 자기가 한 엉터리 작도에 무한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하기야, 수많은 수학자를 상대하려면, 그 정도 자신감이 없고서야 시작도 않았겠지.
정말로 실망스러웠던 것은, 남의 말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람이 대학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자기의 작도가 맞는지 검증을 부탁하는 게 아니라, 자기 주장을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말해 보는 것에 있는 듯하다.
아마도 피해 망상이나 그 비슷한 병으로, 늘 기가 죽어 있다가, 만만한 사람 하나 만나서 "썰"을 푸는 게 살아가는 낙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최익곤씨, 오늘은 사람을 잘못 골랐어.)
그래선지, 연구실에 처음 올 때는 얌전하고 공손하던 사람이, 조금 말이 길어지니까, 목소리도 커지고, 땀까지 줄줄 흘려가면서, 횡설수설이나마 쉼없이 말을 계속한다. 그래 봤자 그 말을 누가 들어 준다고, 쯧쯧...
뒷얘기 조금 덧붙입니다.
제가 가고 난 다음, 다른 대학원생을 붙잡고 또 횡설수설을 늘어놓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황당했던 말은, "중앙청이 경복궁과 4o 틀어지게 지어져 있다"는 신문 기사에 대한 평(?)이었습니다.
4o가 작도 불가능한데 어떻게 4o 차이로 건물을 지을 수가 있냐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일이 있고 나서 몇 달이 지나, 또 신문에 광고가 실렸습니다.
원주율 pi가 유리수라는 새로운 발견이 있더군요. "좌표평면"을 이용한 근사한 증명과 함께.
뭐하러 이 사람에게 좌표평면 얘기를 했던가 싶더군요. -_-;
원본근 ; http://puzzle.jmath.net/math/essay/Ikon.html
첫댓글 ㅋㅋㅋ 진짜 재미있는 글이네요...대학 게시판은 제목조차도 이해 안가서 안들어왔는데...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