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수·브·랜·드 (18) 샘표간장
1946년 첫 생산...40여년간 점유율 1위, 58년간 '무적자 경영' 신화
간장·된장·고추장의 ‘원조’ ‘종주국’ 자리를 놓고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지난해 9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아시아지역조정위원회 회의에서 한국의 고추장·된장 국제 규격안이 보류된 데 이어 미국과 일본이 간장의 정의를 놓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 일본이 콩 추출물에 인공색소 등을 넣어 만든 미국식 간장(소이 소스)을 겨냥, 콩을 발효·숙성시켜 만든 것에 한해 간장이라고 부르자는 국제 규격안을 CODEX에 제안하자 미국 측이 반발하고 있다.
서양인들 사이에 동양 소스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주장대로라면 소이 소스는 간장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돼 미국 업체의 타격이 예상된다.
이렇듯 장(醬)이 국제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한국 간장의 대명사 ‘샘표’는 고추장·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외 진출이 주춤했던 우리의 전통식품 간장의 세계화를 위해 분주하다. 간장을 이용, 세계 시장을 정복할 수 있는 ‘한국형 소스’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다.
“간장도 웰빙·기능성을 강조하는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전통의 장맛을 다져온 지 59년. 샘표간장은 정통의 장맛을 현대에 이어 나감과 동시에 ‘우리 맛의 세계화’에 힘쓸 것입니다.”(온종석 샘표식품 마케팅 상무)
올림픽 수영장 750개 분량 생산
1946년 생산되기 시작한 샘표간장은 우리 식탁에 ‘사먹는 간장’이 오르게 한 주역이자 ‘한국 간장의 대명사’로 이름을 올린 브랜드다. 1954년 5월 특허청에 등록한 ‘샘표’ 상표는 1952년 대한민국에 상표 등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오래된 등록 상표로 공인되고 있다.
1954년부터 지난해 8월 현재까지 생산된 샘표간장은 1ℓ들이 용기 기준으로 15억병에 달해, 이를 쏟아부으면 올림픽 규격 수영장 750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시장조사기관 AC닐슨의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1년에 한국인 1명이 먹는 간장은 1ℓ 기준으로 1병 반, 4인 가족 기준으로 6병이다. 이 중 3병은 샘표간장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한 해 5500만ℓ를 생산하는 샘표는 현재 1500억원 정도로 추산되는 국내 가정용 간장 시장에서 53.5%를 점유하며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샘표는 지난해 매출 1200억원(된장·고추장 등 포함)을 기록하며 58년간 ‘무적자(無赤字) 경영’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경기도 이천시 샘표식품 공장. 이곳이 국내 최대의 간장 생산 공장임을 알려주는 것은 정문에 붙어 있는 ‘샘표식품’이라는 로고와 공장 안에 풍기는 ‘구수한 냄새’ 정도였다. 한 해 간장 7200만ℓ를 생산할 수 있는 이 공장은 찐 콩에 볶은 밀과 곰팡이를 섞어 메주를 띄운 다음 소금물을 부어 저장탱크에서 6개월 동안 발효·숙성시켜 얻은 간장액을 짜내 각종 첨가물을 넣고 살균·포장하는 전 공정이 자동으로 진행된다.
생산 라인에 배치된 인력은 60여명이 전부다. ‘간장은 재래시설에서 만든다’는 관념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1987년 이천의 깨끗한 물을 찾아 이 곳에 건립된 샘표공장은 2002년 ‘위해(危害)요소 중점관리우수식품(HACCP)’ 인증을 받아 청정위생시설을 자랑한다.
김진오 생산3팀장은 “일반 가정에서 만드는 간장이 해마다 맛과 질에 조금씩 편차가 있는 것과 달리 공장에서 만든 간장은 맛·향·색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며 “공장에서는 지방이 제거된 콩을 원료로 하기 때문에 콩 속의 단백질 분해가 더 잘 돼 영양도 좋다”고 설명했다.
샘표는 1946년 8월 창업주인 고(故) 박규회(朴奎會) 사장이 서울 충무로에 있던 일본인 소유의 삼시장유양조장(三矢醬油釀造場)을 인수하면서 출발했다.
1954년 사명(社名)을 ‘샘표장유양조장’으로 바꿨다. ‘샘표’는 ‘샘물처럼 솟아라’라는 의미로 박규회 전 사장이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인수 자금은 창업주의 장남인 박승복(朴承復) 회장이 식산은행(산업은행의 전신)을 나오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충당했다.
박 회장은 금융계에 몸담았다 관계(官界)로 진출해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까지 지냈다가 55세가 돼서야 샘표에 입사했다. 현재 박진선(朴進善) 사장이 3대째 회사를 잇고 있는 샘표는 가업 물려주기 방식이 독특하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입사해 실무 부서를 잠깐 거친 뒤 임원으로 고속 승진한 뒤 사장을 맡는 일반 오너 집안과 달리, 샘표에서는 젊은 시절에는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고 경험을 쌓은 뒤 회사를 맡는다.
1997년 사장으로 취임한 박진선 사장은 38세이던 1988년 기획이사로 샘표에 입사하기 전까지 대학에서 강의를 했었다. 박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석사를 마친 뒤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따, ‘간장 회사’ 사장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경력의 소유자다.
샘표는 1959년 서울 도봉구 창동에 공장을 세우면서 대량 생산 체제를 갖췄다. 샘표가 간장을 만들었던 초기, 아직은 ‘사먹는 간장’이 일반화하지 않은 때라 샘표의 출발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편리함과 가정에서 만든 것에 못지 않은 맛을 앞세워 샘표간장은 식탁의 한자리를 차지해 나가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면 맛을 아는 샘표 간장’이라는 CM송을 업계 최초로 내보내면서 샘표는 본격적인 인기 몰이에 나섰다.
1966년 샘표는 ‘진하고 구수한 맛을 가진 간장이라는 의미’에서 ‘샘표 진간장’을 선보였다. 일제 시대 국내에 소개됐던 콩 속성 분해 방법을 이용해 만든 진간장은 하나의 브랜드명이었지만 공장에서 생산되는 간장을 일컫는 보통명사로 통용되고 있다.(추은정 홍보과장)
이후 샘표간장은 간장 시장에서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김영여 마케팅팀 과장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간장 시장에서 점유율이 50% 이하로 떨어진 적도 없고 1위 자리를 내준 적도 없다”며 “수십 년 동안 ‘간장=샘표 간장 맛’으로 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종석 마케팅 상무는 “재료 본래의 맛과 향을 주되 첨가물을 최소화하고 자연적인 맛을 내는 고집스러움이 샘표간장의 가장 큰 장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내 가족이 먹어보지 않은 음식은 결코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창업자의 장인정신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 온 상무는 “맛있고 믿을 수 있다는 샘표의 브랜드 관리도 장수의 중요한 요인”이라며 “일단 샘표간장이 간장 맛의 기준이 된 이후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진오 생산3팀장은 “위해요소 중점관리우수식품 인증을 받는 등 철저한 품질 관리도 샘표간장이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장맛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균류(菌類)의 관리도 샘표만의 노하우”라고 말했다.
샘표의 거침 없는 행진이 잠시 멈칫하던 때가 있었다. 1990년대 초 고추장·된장·간장 제조업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에서 풀리면서 장류 시장에 뛰어든 대상(당시 미원)이 1997년 ‘햇살담은 간장’을 내놓고 거세게 도전해온 것. 대상은 콩을 속성 분해하는 방법을 이용한 ‘혼합간장(진간장)’을 대신해 6개월간 숙성 과정을 거쳐 만든 ‘양조간장’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던 당시 상황을 포착했다.
마케팅력을 바탕으로 ‘간장의 브랜드화’를 내세운 대상은 양조간장에 주력하며 간장 시장 점유율 2위로 올라섰다. 샘표 입장에서는 매출이 감소하는 실질적인 변화가 닥친 것은 아니었지만 소비 패턴의 움직임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우리의 맛’ 세계에 전파할 것
샘표는 새로운 전략을 짜고 적극 방어에 나섰다.
샘표는 우리 고유의 조선간장 맛을 복원한 ‘맑은 조선 간장’(2001), 농약과 화학 비료를 쓰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콩과 밀을 사용한 ‘유기농 자연콩 간장’(2003), 참숯으로 두 번 걸러 맑고 깨끗한 맛과 향을 내는 ‘참숯으로 두 번 거른 양조간장’(2004) 등 신제품을 내놓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참숯 간장’은 2004년 2월 출시 10개월 만에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 건강을 위해 싱겁게 먹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에 맞춰 염분 함량을 기존의 16%에서 12%로 낮춘 ‘저염간장’도 내놓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04년 11월 현재 샘표와 대상의 간장 시장 점유율은 각각 54%와 17%를 기록하고 있다. 김영여 마케팅팀 과장은 “마산(몽고간장), 대구(삼화간장), 부산(오복간장) 등 지방을 제외한 수도권에서는 샘표의 점유율이 78%에 이른다”고 말했다.
샘표에는 몇 가지 숙제가 남아 있다.
먼저 ‘오래 됐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추은정 홍보과장)
젊은층이 샘표를 ‘할머니·어머니 간장’으로 이해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면서 젊은층에게 새로운 이미지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고급화·브랜드화다.(온종석 상무)
간장을 사먹는 가정은 전체의 85%에 이르러 간장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 가정에서 요리하는 비중이 점차 줄고, 식생활 패턴의 서구화로 간장의 사용량이 감소하면서 간장도 차별화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상무는 “간장 업계의 리더로서 간장 시장에서 질적 변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찌개용, 조림용, 찍어먹기용 등 간장을 기능화하는 작업을 지난해부터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인 과제는 간장의 세계화다.(박진선 사장)
박 사장은 우리 전통 식품인 간장을 세계 무대에 내세워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추은정 홍보과장은 “세계적 간장 브랜드인 일본의 ‘기꼬만’이 일본 음식의 세계화에 성공했던 것처럼 샘표는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한국형 소스’ 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샘표가 2003년 말 서양식 조미식품 브랜드 ‘폰타나(Fontana)’를 출시하고 브로콜리 치즈 수프 제조 등 서구식 식품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한 것도 샘표가 추진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김치·고추장조차 종주국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간장의 세계화는 더 큰 노력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간장이 세계에 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맛을 우리 음식 문화와 함께 세계에 전파할 것입니다.”
“간장 하나로 찌개도 끓이고 조림도 하고, 회를 찍어먹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간장도 기능에 맞게 세분화하고 있습니다. 용도에 따라 다른 간장을 써야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죠.”
온종석(47) 샘표 마케팅 상무는 “성숙 단계에 이른 간장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간장의 고급화·브랜드화”라며 이처럼 말했다. 고급화·브랜드화는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기도 하다.
지난해 출시된 ‘참숯으로 두 번 거른 양조간장’도 이 같은 전략의 하나다. 화학물질을 첨가하지 않고, 참숯으로 두 번 걸러 향을 부드럽게 한 ‘참숯 간장’은 웰빙 트렌드를 겨냥한 제품이라고 했다. 라벨도 기존 제품들과 달리 흰색을 사용해 ‘삶의 여유’를 표현했다. 샘표는 회간장·국간장·조림간장 등 기능성 제품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샘표는 장류 전문 업체로서 외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지만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나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오래 됐다’는 이미지는 대부분의 장수브랜드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죠. 현대 소비자의 요구와 샘표의 전통을 잘 조화시키는 것은 샘표가 100년 이상 브랜드로 가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
샘표의 전통은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는 데 계속 활용하면서 젊은층을 겨냥, 이미지를 쇄신한다는 게 샘표의 전략이다. 온 상무는 이를 ‘혁신적인 정통(Innovative Classic)’이라고 요약했다. 샘표가 지난해 4월 이천 공장 2층에 갤러리(샘표 스페이스)를 설치한 것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불어넣는 한 방편이다. 샘표 스페이스에서는 회화전·도예전 등 전시회가 매달 열린다.
온 상무는 “세계 각지에서 태국 음식점이 유명해진 것은 그 나라에 주재하는 태국 관광청에서 관리를 하기 때문”이라며 “간장을 포함한 음식 문화가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감미료를 넣지 않고 순수 간장 원액으로 맛을 낸 샘표간장은 우리 간장맛의 기준으로서 소비자와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맛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게 샘표의 사명입니다.”
간장은 왜간장, 진간장, 양조간장, 조선간장 등 다양한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갑신정변 이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간장공장을 설립하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나온 일본식 간장을 우리 고유의 간장과 구별해 ‘왜간장’이라고 불렀다.
‘진간장’은 왜간장 제조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진간장은 원래 1966년 샘표식품이 내놓은 브랜드 이름이지만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간장’을 통칭하는 보통명사로 굳어졌다. 우리의 재래식 간장인 ‘조선간장’은 짠 맛이 강해 주로 국을 끓일 때 사용한다.
간장은 제조방식에 따라 양조간장과 혼합간장으로 나뉜다. 간장 용기에 양조간장인지 혼합간장인지가 표시돼 있다.
양조간장은 콩과 밀을 섞어 곰팡이를 이용해 발효시켜 만든다. 보통 6개월간 숙성 과정을 거쳐 나온 간장 원액을 짜, 거기에 첨가물을 넣고 처리해 제조한다. ‘자연숙성간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양조간장은 감칠맛이 뛰어난 게 특징이며 6개월간의 숙성을 거쳐 값도 비싸고 고급제품으로 분류된다.
혼합간장은 간장의 주원료인 콩에서 단백질을 속성 분해해 얻은 아미노산액에 양조간장 원액을 섞어 만든다. 혼합간장은 만들기 시작해 열흘 정도면 식탁에 오를 수 있다. 혼합간장은 양조간장보다 빨리 만들 수 있어 대량 생산에 유리하다. 진간장은 혼합간장 제조 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샘표식품 관계자에 따르면 그동안은 혼합간장의 비율이 컸지만 웰빙 추세에 따라 ‘자연숙성간장’인 양조간장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2000년 17%였던 양조간장의 점유율은 현재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샘표 관계자는 “양조간장과 혼합간장의 위치가 뒤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맛이나 질에서 양조간장과 혼합간장이 큰 차이가 없지만 회·초밥 등을 찍어먹을 때는 양조간장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