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든 그림이든 조각품이든 음악곡이든 작가가 영감을 얻어 갈무리해서 그것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여 세상에 내놓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자 복일 것이다. 하지만 독자나 감상하는 사람 혹은 수집가가 그런 작품을 만나서 독서와 감상과 완상에 빠지는 것도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류연복 화백의 목판화 작품 가운데 <부활의 십자가>라는 작품이 있다. 일명 <빛의 십자가>로도 불리는 그 작품은 기운이 무척 강렬한 작품이다. 내가 그 작품을 만난 것은 3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그 작품은 좀처럼 내 수중에 들어오지 못했다.
3년 전 서울의 인사동에서 류화백의 목판화 작품 전시회가 열렸다. 예전에 류화백으로부터 몇 점의 소품을 그냥 얻은 것이 못내 죄송하고 미안해서 '언젠가 전시회가 열리면 보란 듯이 당당하게 값을 치르고 작품 한 점을 사야지.' 하면서 1년 동안 비자금을 조금씩 모아 두었던 터였다. 비자금을 싸들고 온 가족이 전시회 관람과 나들이를 겸해서 서울로 올라갔다. 류화백의 작품은 대작일수록 보는 이의 눈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전시회에서 만난 작품들이 나의 눈을 휘어잡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단연 나의 두 눈을 사로잡은 게 <물의 십자가, 春夏秋冬>과 <부활의 십자가>다. 얼핏 보아도 <물의 십자가, 春夏秋冬>은 십자가를 한국의 산야와 물줄기로 녹여낸 수작, 토착화된 십자가였고, <부활의 십자가>는 고난을 잘 갈무리하면 그 고난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부활의 십자가>는 빛나는 고난을 십자가로 형상화한 작품인 셈이다. <동강전도> <서강전도> <서운산전도> <청룡지> <외암골전도> 등 마음을 잡아끄는 대작이 많았지만, 나는 그 두 작품 앞에서 좀처럼 걸음을 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목사 축에 끼었나 보다. 십자가를 다룬 두 작품을 마주한 채 좀처럼 다른 작품들에 눈길을 돌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작품에서 뻗쳐 나오는 기운이 대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나 목사가 구입하지 않으면 일반인이 엄두를 내지 못할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두 작품을 모두 구입하기에는 비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던 거다. 두 작품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해야 했다. 아내와 의견을 교환한 끝에 <물의 십자가, 春夏秋冬>을 구입했다. <부활의 십자가>는 나중에 구입하기로 하고서.
"김 목사, 조만간 <물의 십자가>를 싸들고 내려갈 게. <부활의 십자가>도 같이 싸갈 생각이야."
"아니, 형님, <부활의 십자가>는 아직 구입할 형편이 안 되는데요."
"가난한 김 목사가 작품을 사준 게 고마워서 그러는 거야."
"그런 식으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작품을 공짜로 주시면 형님은 어찌 먹고 사시려고요? 예술가는 땅 파먹고 사나요?"
"허허허,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그때 보세."
형님의 너털웃음이 수화기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형님은 남도를 만행할 목적으로 작품을 싸들고 우리 가족을 찾아 오셨다. 그런데 형님이 내려놓은 작품은 <물의 십자가> 한 점뿐이었다.
"<부활의 십자가>는 안 싸오셨어요?”
"으응, 싸오긴 했는데 도중에 새버렸어."
"그 귀한 게 어디로 새버렸을까요?"
"아니, 여기 오는 도중에 온양 채희동 목사 집에 들렀는데, 거기서 새버렸지 뭐야. 채 목사 내외가 보더니 여간 마음에 들어 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 어떻게 해. 내려놓고 오는 수밖에. 김 목사 것은 나중에 보내줄 게."
"그 작품이 희동 형 차지가 되었다면 정말 잘 된 일이지요. 주인을 제대로 만난 셈이네요. 제 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나중에 구입할 게요."
"아니야, 내가 주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 아무 부담 갖지 마."
그 일이 있고 1년이 지난 뒤에 새로 찍어낸 <부활의 십자가>가 내 앞에 도착했다. 예전에 보았던 작품과 다른 점이 없었다. 원판이 같으니 찍어낸 그림도 같을 수밖에. 액자에 들여앉히기 위해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표구점을 찾아갔는데 여수 시내 어디서도 그 작품을 액자에 들여앉힐 수 없다는 거였다. 마름모꼴 구도를 하고 있는 <부활의 십자가>를 소화해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표구점 주인이 광주에도 전화를 해보았지만 전라도 권에 있는 표구점 가운데 그런 작품을 소화할 수 있는 표구점이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서울로 가져가 액자에 앉히기로 하고 그 작품을 둘둘 말아서 한동안 고이 모셔두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둘둘 말린 채 빛을 보지 못하던 <부활의 십자가>가 드디어 빛을 볼 기회를 만났다. 지난해 7월 초 서울에서 출판 사역을 하는 몇몇 지인이 여수를 찾아와 어우러진 적이 있었다. 친척 가운데 서울에서 표구점을 운영하는 분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그들 가운데 한 형에게 <부활의 십자가>를 맡기고 표구를 부탁했다. 하지만 그 작품은 내 수중에 들어오지 못했다. 중간에서 또 새버린 것이다.
그 형은 지난해 11월에도 여수를 찾았지만 <부활의 십자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동백꽃이 막 붉은 입술을 내밀기 시작하던 올해 3월초에 그 형의 방문이 다시 이루어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이 얘기 저 얘기 오가는 중에 나는 느닷없이 물었다.
"형, 표구는 어떻게 되었어요?"
"표구? 했지."
"가져왔어요?"
"아니!"
"그럼 어떻게 했어요?"
"벽에 걸었지."
"어느 벽에요?"
"우리 집 벽에!"
"아니, 그걸 형님 댁에 걸면 어찌해요?"
"그렇게 해도 김 목사가 이해해줄 것 같아서."
능청스런 형의 대답에 나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격이네요. 감사헌금이나 두둑이 하고 가세요."
그 작품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빛나는 고난"을 얼마나 품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나도 거저 받은 것이니 저이도 거저 얻는 게 마땅한 거야, 속으로 생각하면서 차마 되돌려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달리 어찌하겠는가? 모질지 못한 내 성격을 탓할 밖에. 지금 생각해보아도 "부활의 십자가"가 그 형 차지가 된 것은 잘 된 일이지 싶다. 제 주인을 찾아간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 예술가의 작품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인연이 따로 있지 싶다. 그토록 소장의 기쁨을 맛보려고 애썼건만, "부활의 십자가"는 내게 그런 기쁨을 안겨주지 않았다. 그러면 어떠랴? 작품이 내뿜는 정신만은 내 가슴속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빛나는 고난"은 삶을 통해 도모하는 것이지 소장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1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사순시기를 미리 앞당겨 보낸 것 같다. 그 기간은 "빛나는 고난"을 만나는 여정이었다. 에버하르트 베트게(Eberhard Bethge)가 쓴 평전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를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본회퍼의 제자이자 절친한 벗 베트게가 쓴 것이니 본회퍼의 생애에 정통한 평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체는 상상을 불허할 만큼 남달랐다. 역자의 입장에서 굳이 평가하자면, 베트게의 문체는 역자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애쓴 사람이 아닌가 싶다. 독일 사람들에게는 그의 책이 술술 읽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의 문체는 난해하기 그지없었다. 직역을 불허하는 문장이 너무 많았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졌고, 잘 풀리지 않는 문장들로 가슴앓이를 하다가 설사를 만난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빛나는 고난"을 살았던 본회퍼의 생애를 품는 일은 그토록 힘겨운 일이었다.
전에 본회퍼의 [옥중서간](유고집), [나를 따르라], [신도의 공동생활]을 몇 차례 읽으면서 그의 신학사상과 그의 생애에 흠뻑 매료되었지만, 내가 그의 전기를 번역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를 전공한 신학자도 아니고, 그에 대해서 이렇다 할 논문이나 글을 써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본회퍼가 탄생한 지 100주년, 서거한 지 61주년이 되는 해다. 베트게의 [디트리히 본회퍼]가 나온 지는 30주년이 되었다. 본회퍼를 전공한 신학자가 국내에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의 전기가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사실이다.
출판사로부터 번역 청탁을 받고서 가슴이 쿵쿵 뛰었지만, [디트리히 본회퍼]가 나를 찾아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출판사에서 나를 역자로 선정하기 전에 명망 있는 다른 분을 역자로 선정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출판사와 그분 사이에 흔히 말하는 "코드"가 서로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출판사에서 또 다른 번역자를 물색하던 차에 내가 걸려든 것이다. 나는 뜻밖에 찾아온 기회를 잡고 싶었다. 나 역시 본회퍼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그렇지만 먼저 선정되었던 분에게는 여간 죄송한 게 아니다. 본의 아니게 그분의 몫을 내가 가로챈 셈이 되고 말았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한다.
본회퍼의 전기를 우리말로 옮기면서 예전에 몰랐던 사실들을 하나 둘 발견하게 되어 한없이 즐거웠고, 그의 치열한 신학적 고투에 진한 감동을 받았으며, 나치에게 체포되는 장면에서는 바짝 마음을 졸였다. 그리고 그가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가는 대목에서는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서 눈물짓고 울먹이기를 여러 차례 했다.
1906년 2월 4일 브레슬라우에서 팔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나 유복하고 전통 있는 가문에서 행복한 유년기를 보낸 사람,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로서 형제들과 자주 협연하고 베트게와 함께 [후고 볼프 가곡집]을 발굴해낼 만큼 음악을 사랑한 사람, 1923년 17세의 나이에 튀빙겐대학교에 입학하여 1927년 21세의 나이에 베를린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하고 1929년 23세의 나이에 대학 교수 자격을 취득한 천재 신학자, 대학 강단(이론)과 목회현장(실천)의 조화를 구현하기 위해 힘쓴 사람, 히틀러의 하수인이 되어가던 독일교회에 맞서 싸운 교회 투쟁가이자 세계교회일치 운동에 매진한 에큐메니컬 운동가, 전쟁에 몰두하는 히틀러 치하에서 평화를 입 밖에 낼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힘차게 외친 평화주의자, 신앙의 영역과 정치 영역의 일치를 꾀하여 목사의 신분으로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한 사람, 1943년 4월 5일에 체포되어 갖은 옥고를 치르다가 안타깝게도 히틀러가 항복을 선언하고 자살하기 보름 전인 1945년 4월 9일 어수룩한 새벽에 39세의 나이로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져간 사람, 수감 생활을 하면서도 시종일관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살았던 사람,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본받아Nachfolge]를 쓰고 신앙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어야 함을 역설하고 그대로 살았던 행동가 디트리히 본회퍼.
디트리히 본회퍼는 당시의 엄혹한 상황에서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누구인가?"를 묻고 고난의 길을 자처하여 예수처럼 "빛나는 고난"을 살았던 분이다. 그는 자신의 고난 속에서 만난 하느님, 곧 고난당하시는 하느님을 이렇게 묘사한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십자가로 내쫓으시네.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무력하시고 연약하시네. 하느님은 그런 식으로만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네. 마태복음 8장 17절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전능이 아닌 자신의 약함과 고난으로 우리를 도우신다고 분명히 전하네. 바로 여기에 모든 종교와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네. 인간의 종교성은 이 세상에서 곤경에 처한 인간에게 하느님의 능력에 호소하라고 지시하네. 그런 하느님은 기계로 이루어진 신에 지나지 않네. 반면에 성서는 인간에게 하느님의 무능과 고난에 호소하라고 지시하네. 고난당하는 하느님만이 도우실 수 있네."
그의 공적인 생애 대부분은 교회력의 사순절기에 해당하고, 그의 말년은 특히 수난주간에 해당한다. 안타깝게도 그는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갔지만, 온갖 종류의 억압과 차별이 있는 곳, 전쟁을 부추기는 곳, 종교적 획일화가 획책되는 곳, 종교 장사꾼들이 판을 치는 곳, 그리스도를 본받는 값비싼 제자의 길을 역설하지 않고 싸구려 은혜만을 팔아 자기 배를 불리는 장사꾼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의 정신은 "빛나는 고난"으로 부활하여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묻게 한다.
"빛나는 고난"을 품는 것은 한무릎공부론 안 될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한무릎공부를 한 셈이다. 이제는 그것을 품고 갈무리하는 기나긴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머뭇거리거나 도망치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도록 그가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해주기를 바란다.
우리말로 옮기면서 감명 깊게 읽은 그의 시 한 편, 그가 갖은 심문과 취조를 받고나서 감방에서 쓴, 그의 천성과 그의 영향력과 그의 좌절과 그의 신심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시 한 편이 계속 내 귓전을 아프게 울리며 따라다닌다.
나는 누구인가 / 디트리히 본회퍼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간수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사근사근하고 밝은지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내 모습이
어찌나 한결같고 벙글거리고 당당한지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는데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을 쉬려고 버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따스한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는 나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인데
나는 누구인가?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둘 다인가?
사람들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자신 앞에선 천박하게 우는 소리 잘하는 겁쟁이인가?
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미 거둔 승리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패잔병 같은가?
나는 누구인가?
고독한 물음이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오, 하느님!
woodcut/ 1. 부활의 십자가, 2. 물의 십자가 by 류연복 b.g.m.: Spiritual/Radhika Miller
|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오늘 하루도 이 좋은 글로 시작하니 기쁩니다ㅣ. 나도 본회퍼 좋아하거든요 .
아차 너무도 중요한 작품 부활의 십자가가 나를 압도합니다. 이 시간에............
본회퍼를 좋아하는 분을 만나다니 가슴이 뜁니다. 그렇지요? 그림에서 뻗쳐나오는 기운이 대단하지요? 저도 압도 당했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다른 친구들과 나누고 싶어요.. 허락하시겠죠?
그럼요. 나눠주시겠다니 제가 고맙지요.^-^**
자신 안에 분명히 중심이 잡힌 사람은 어디서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나의 근원을 안다는 것이리라...좋은글 감사해요~
맞아요. 그저 끄덕끄덕입니다.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하지요. "실로 하느님을 바르게 소유한 사람은 자신이 거리에 있건, 사람들 틈에 있건, 교회 안에 있건, 빈들에 있건, 암자에 있건 간에, 모든 자리에서 하느님을 소유한다. 그가 하느님을 바르게 소유한다면, 아무도 그러한 사람을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류현복 화백의 십자가에 대한 김순현목사님의 기상글 넘 감동있게 읽었구요. 아울러 "성경 옆에 논어 놓고 논어 옆에 성경 놓고"란 책을 구했네요 어렵게시리.. 그런데 아직 읽어 보질 못했네요. 암튼 좋은 책 소개를 받아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즐겁게 읽어주셔서. "성서 옆에 논어 놓고..."는 아직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조만간 구입해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류현복 화백이 아니라 류연복 화백입니다.^-^**
불의십자가, 물의십자가 춘하추동과 빛나는 고난(본회퍼)의 만남으로 고난과 부활의 의미을 다시 한번 되돌아봅니다 ..
심각한 삶의 고민에 지난 한달을 추스리기 힘들만큼 괴롭게 보냈습니다. 본훼퍼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면서, 다시한번 마음을 정리하게 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중심으로 이루어질 일을 기대하면서...조용히 기도하겠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어 다시 찾아와 귀한 글들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퍼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