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세자르 프랑크 등 작곡가와 상관없이 피아노5중주는 모두 아름다운 곡들입니다. 인간의 내면을 닯은 현악 4중주의 선율 위에 신의 소리인 피아노의 가락이 얹어지면 그 자체로도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 피아노 5중주는 가장 효율적인 악기 구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5중주 또한 빼어놀 수 없는 최상의 실내악 작품이죠. 이 곡은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5번과 6번의 성공 이후 1940년에 작곡하여 전작의 두 교향곡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보여집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거센 도전에 직면해서 그것을 극복했을 때 다가오는 존재론적 고민과 내적 정서를 스코어로 과감하게 옮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넘은 것은 산이 아니라 작은 언덕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겸손한 마음으로 고전양식에 천착하게 됩니다. 곡의 곳곳에 숨겨놓은 위대한 선배 음악가의 흔적이 이를 반증해주고 있죠.
<1악 장: 전주곡>
피아노의 장중하고도 엄숙한 연주로 시작되다가 점차 주제가 변형을 이루며 작품의 외연이 확장되어갑니다. 특히 각 악기의 특성을 살려 독주, 2중주, 3중주 등을 연속 배치하는 기법은 말러와도 비슷합니다. 청자에게는 파레트의 여러 색깔들이 혼합 비율을 달리하며 펼쳐지는 수채화 같은 느낌을 선사합니다.
<2악장 : 푸가>
2악장은 바흐에 대한 오마주로, 인류의 위대한 유산 중 하나인 푸가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푸가를 재현하고 모방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변형하고 뒤틀어서 시대적 반영을 투영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2성부, 3성부, 4성부가 겹쳐지면서 엄격한 작곡기법 안에 비인간적인 혼란과 인간적인 슬픔을 동시에 나타내는 정서적인 특징이 모두 담겨 있죠. 팽팽하고 밀도높은 긴장감으로 곧 터질 것 같은 현들의 선율이 점점 잦아들면 자연스럽게 우리를 명상의 길로 인도합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20세기 푸가는 그렇게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3악장: 스케르쪼>
아마도 이 악장이 없으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멈추지 않은 화려한 리듬의 행진. 악상이 전개되면서 기계적이고 혼란스러움이 증폭되지만 한편으로는 음표를 완전히 장악한 작곡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절대성과 안정성을 느끼게 해줍니다. 앵콜곡으로도 자주 연주되는 악장이라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4악장: 인터메쪼>
4악장은 서정성이 돋보이는 느린 완서악장의 특징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간단하고 단순한 고전양식처럼 보이나 그곳에는 보석과 같은 러시아 민요가락이 숨겨져 있다는 점도 특이하죠. 첼로의 피치카토와 통주저음 위에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애잔한 선율이 깔리고 피아노가 눈부신 햇살을 뿌려놓으면 쇼스타코비치의 고독감과 비통함을 공감하기에 충분합니다. 들을수록 4악장은 누구보다 그 자신을 위해 작곡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5악장: 알레그레토>
쇼스타코비치는 마지막을 희망으로 종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 악장보다 경쾌하고 부드러운 선율을 많이 사용하고 있고, 익살맞은 풍자와 장난기어린 위트를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나 맑고 영롱한 피아노 선율로도 그의 미소 뒤에 웅크리고 있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풍자와 유머 뒤에 있는 슬픔을 발견할 때마다 눈물이 나고 안타까워지니 말입니다. 불멸의 위대한 작품은 고통과 고뇌 속에서 탄생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엄중한 진실입니다.
첫댓글 원래는 보로딘퀘텟+리히테르 버전을 더 좋아하나 오늘은 보로딘퀘텟+ 레온스카야 버전으로 들었습니다. 이 음반은 깊고 묵직하며 음과 음 사이를 사색으로 이어주는 느낌이라 좋습니다. 탈리히퀘뎃+ 카스만도 좋은 음반이라 생각되어 추천드립니다.
이 글을 앨범 내지에 그대로 담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좋을것 같네요. 덕분에 상대적으로 못 들었던 곡을 관심갖고 감상할 것 같습니다^^
ㅎㅎ 고맙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세계가 참으로 넓은 것 같습니다. 제게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많이 남아 있고, 들을수록 놀라운 곡이 많습니다.